[Review] 단독전다운 단독전 - 로이 리히텐슈타인 展 [전시]

공간까지 작품으로 보이는 순간
글 입력 2021.12.2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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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모작할 작품을 찾다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처음 알게된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그.. 그 있잖아 작품마다 매번 땡땡이 무늬 (그때는 망점 패턴이라는 용어를 몰랐다) 그려 넣는 화가!'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름 또한 그때의 내가 외우기에는 너무 복잡해서 ‘로이 리히 어쩌구’라고 불렀었다.


내가 모작하겠다고 고른 작품은 <차 안에서>였다. 나는 한참 동안 A3용지에 인쇄된 <차 안에서>를 관찰했다. 눈동자를 움직이며 봐야 할 정도로 크게 인쇄해서 보니 모니터를 통해 작게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성격을 추측했다. 원색에 가까운 채도 높은 색과 망설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올곧은 직선이 마치 나를 그린 사람은 호쾌하고 대담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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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내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가장 오랫동안 들여다본 첫 경험이다. 나는 왜 그의 작품을 골랐을까? 작품 선정에 정해진 규칙 같은 건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냥 좋아서’ 그의 작품을 고른 것 같다. 분명 그의 작품 어느 구석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좋은 것일 텐데 굉장히 무논리적인 이유이다. 그런데 사실 이번 그의 단독전을 보러 가기로 결심한 것도 그 궤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인터넷에서 여러 키워드로 검색해보다가 내 눈에 띈 한 글의 일부를 가져왔다.


 

‘…이와 같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익숙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 실험에서 참여자들에게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 중 어떤 것은 여러 번 보여주고 또 어떤 것들은 적게 보여줬다. 그리고 나서 어느 그림이 더 좋은지를 질문했다. 그 결과 참여자들은 더 많이 보았던 작품을 더 좋다고 평가했다. 사람들은 단순 노출로 인해 익숙해진 사물이나 대상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익숙한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보다 안전성이 입증된 것이다. 때문에 익숙한 것은 우리를 편하게 하고 우리의 뇌는 그것을 인식하게 됨으로 인해 익숙한 것을 택하도록 설정돼 있다. 바로 쉽고 편하고 친숙한 것을 선호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들은 그런 단순함을 갈구하고 있다. 복잡한 것보다 좀 더 단순하고 친숙하고 익숙한 것들이 편한 것이다.’

 

-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삶과 문화] 리히텐슈타인이 그린 대중심리, <한국일보>, 2014.10.20

 

 

내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 왠지 모르게 끌린 이유는 작품의 특징과 크게 맞닿아 있다. 그의 작품 특징으로는 선명한 색과 두꺼운 외곽선, 벤데이 닷이라고 부르는 망점 패턴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가장 큰 특징은 ‘차용’이다. 말 그대로 어디선가 본 것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가져온다.


그가 활동하던 1960년대의 미국은 산업화로 인해 굉장히 풍요로운 시기였다. 시위와 폭동 등으로 사회적으로는 불안정했으나, 물질적으로는 풍요롭다 못해 넘쳐흘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일상용품이 무한정 생산됐고, 미디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중이 그것들을 소비하도록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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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이 없거나 구체적이지 않은 그림, 하지만 화가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거나 포착한 것을 표현하는 순수한 추상표현주의와 성장했으나, 결국 그가 붓을 잡게 된 시기는 대중적 소비문화가 확산된 시기였다. 주위엔 온통 ‘물질’ 뿐이니 어쩌면 그 시기에 예술을 개인에서 대중으로 확장한 ‘팝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사조가 등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

 

- 로이 리히텐슈타인


 

대개 팝아트 화가들은 TV나 잡지 광고 이미지를 작품의 소재로 사용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의 삶에서 마주치는 친근한 일상 사물에 관심을 가졌다. 앞서 말한 작품의 특징들(선명한 색, 두꺼운 외곽선, 벤데이 닷, 대화 풍선) 역시 만화를 차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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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일관된 그의 스타일이 묻어 있었으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 다른 무언가 (예컨대, 만화책의 한 장면과 같은)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점에서 그는 끊임없이 비판받았다.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미국의 유명 잡지 라이프(LIFE)는 그를 미국 최악의 미술가 중 한 명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가히 단독전다운 단독전이었다. 무려 8개의 테마로 전시를 구성할 만큼 작품의 수가 많았다. 나는 130여 점의 작품을 보며 연속적인 이야기인 만화의 한 장면을 차용하던 그의 작품처럼, 그의 작품 모두가 마치 빠르게 흘러가던 그 시대의 한 장면을 붙잡아 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의 묘사를 중시하던 시기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 시대를 포착하여 적나라하게 표현했기에, 어쩌면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라는 사람이 가진 자아의 가장 순수한 부분을 표출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픽 이미지로 보일 정도로 깔끔하고 선명한 그의 작품 특징마저도 1960년대라는 그 시대에 만연하던 복제품 중 일부로 보이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건지 궁금하다.

 

나는 전시 관람에 조예가 깊지 않다. 때문에 그동안 내가 봐온 전시는 '전시장에 걸린 작품'이 위주였다. 의도된 동선이라든지 전시 자체를 꿰뚫는 브랜딩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처음으로 전시 전체를 거시적인 시점에서 보게 되었다. 의식한 것은 아니었다.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품이 담긴 공간이 함께 보였다. 공간까지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의도한 작품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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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작은 벽의 한 면을 통째로 사용하여 작품 주변에 넓은 여백을 만든다. 동시에 벽을 쨍한 색감의 색으로 깔아 관람객이 어쩔 수 없이 특정 작품에 집중할 수 밖에 없도록 유도한다. 흐름을 함께하는 작품들은 복도같이 긴 벽면에 간격을 두어 배치하여 같은 호흡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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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를 잇는 통로 하나까지 밋밋하지 않다. 그의 전반적인 작품과 결을 맞추어 관람객의 집중도가 한시도 떨어질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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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끄트머리 즈음, 반 고흐의 작품 <아를의 침실> 을 리히텐슈타인의 기법으로 재해석한 포토존이 등장한다. 테마와 테마 사이에 있어 다음 테마를 관람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 포토존을 지나쳐야 하는데, 지나가는 통로가 좁아 관람객이 몰리는 시간의 병목 현상이 걱정됐다.


여덟 번째 테마까지 모두 감상하면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들어왔던 입구로 나가야 한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앞서 서술했듯 전시 전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에 이런 식으로 관람객의 여정 경험을 망치게 되는 것인지 우려됐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입구와 출구가 같은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감상했던 작품들을 다시 지나쳐 가다가 나의 발길을 붙잡는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이 작품 앞은 그냥 지나치질 못 하는구나. 몰랐는데 내가 이 작품을 마음에 두고 있었구나.


전시에서 아쉬웠던 점을 굳이 꼽아보자면, 오디오 가이드를 들 수 있다. 지금 기억에 3,000원을 내야 했던 것 같은데, 전혀 그 가격 값을 하지 못하는 퀄리티였다. 그저 전시장 벽에 쓰여있는 설명 글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다시 읽어줄 뿐이다. 더불어 대개 오디오 가이드라면 설명해 주는 작품 간의 맥락에 대한 내용도 일절 없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면 도슨트 일정을 확인하여 방문하길 바란다.


또한 내가 방문했을 때만 해도 전시장 옆에 위치한 굿즈샵의 준비가 부족한 상태였다. 같은 층에서 앤디 워홀의 단독전도 진행하고 있었는데,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굿즈는 포스터뿐이었고(차차 추가 입고될 예정이라고 한다), 전부 앤디 워홀의 굿즈였다. 물론 팝 아트 사조의 팬이라면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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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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