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그렸다 - 게르니카의 황소 [도서]

글 입력 2021.12.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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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주인공은 한국계 미국인 화가 케이트. 그녀는 정신이상자 어머니가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고 본인은 겨우 도망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인도 언젠가 살인자가 되지 않을까 두려움을 품고 자란다. 이후 정신병원 원장 칼 번햄의 가정에 입양되어 살던 중, 케이트도 그녀의 어머니처럼 측두엽뇌전증에 시달린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매료된 나머지 그림 속 황소가 튀어나와 본인을 공격하는 환각을 보게 된다. 정신과 약을 먹게 되지만 화가를 꿈꾸던 그녀는 약을 복용하면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스스로 투약을 중단한다.

 

하지만 화가로 성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꿈 속에서만 걸작을 그리고 현실은 텅 빈 캔버스만 마주보기를 반복하다 그녀는 꿈이 본인의 그림을 훔쳐갔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꿈과 현실의 혼동 속에서 그녀는 병원 비밀 병실에 갇혀 광기로 천재적인 작품을 그리던 에린을 발견한다.

 

꿈 속의 에린이 그리던 그림을 현실에서 재현한 케이트는 단숨에 스타 화가로 부상하게 된다. 하지만 그 동안의 일들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의심이 불현듯 케이트를 잡아먹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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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그렸다.”

 

1940년, 독일의 한 장교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물었다. 당신이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냐고. 이에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그린 것이라고 대답한 피카소의 일화는 유명하다. 피카소는 왜 이런 답을 했을까?

 

그림을 그린 사람은 분명 피카소가 맞다. 하지만 당시의 폭력사태와 무고한 희생을 낳게 한 것은 당신들(프랑코 정부를 지원하는 독일군)을 의미한다. 이 공습으로 바스크 지역의 무고한 주민 1/3이 희생된 사실 말이다.

 

이런 무자비한 폭력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게르니카>. 이 그림에 매료된 케이트 또한 폭력의 피해자임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작가가 이야기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설정한 것도, <게르니카>의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과 아이였기 때문이 아닐까.

 

*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던 케이트와, 감옥 같은 비밀 병실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에린. 두 사람이 부딪치는 모습은 억압과 폭력으로 인해 분열된 인간의 심리를 무서울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해냈다. 또한 둘의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그 동안의 폭력을 인지하고 직접 복수를 감행하는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느꼈던 감정은 분노와 좌절과 혼란이었다. 케이트가 묘사하는 상황과 그녀의 심리는 나 또한 이야기 속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했던 말을 반복하고, 번복하고. 현실과 꿈과 망상이 한데 뒤섞여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케이트의 환각 속에 있는 가죽 향과 감귤 향의 정체를 알게 된 결말은 그야말로 어지러웠다. 심리스릴러라는 장르적 매력을 잘 살렸다.

 

알려졌다시피 ‘대한민국 컨텐츠대상’을 한이리에게 안겨 준 작품이다. 작가는 15년 동안 순수문학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방송가에서 글로 ‘먹고 살았다.’ 그러나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먹고만 살았지’ 소위 대박을 친 적도, 작품적으로 성공한 적도 없어 방황하다가 응어리진 ‘똘끼’를 풀기 위해 쓴 작품이 이 작품이다. 하지만 그의 첫 소설로 나오기까지는 또 4년이 더 걸렸다. 개고하는데 4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로서는 불편함이 느껴지는 지점을 자주 만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그 반전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설정’이 필요했다. 설정은 곧 다양한 트릭과 장치를 말한다. 그러다 보니 독자 입장에선 한번 손에 쥔 소설의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오기 비슷한 게 생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모든 것들의 실체가 명확해지는데 소설을 덮고 나서 다시 앞 부분을 읽으면 이 트릭과 장치들이 얼마나 촘촘하게 사전 설계되었는지 감탄하게 된다.

 

“오히려 이런 강한 인상을 주는 배경에 주인공이 묻히지 않을까 고민했다”는 작가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이런 장치들 속에서 케이트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끌어내는 게 개고의 거의 모든 과정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읽다가 옅게 잠든 것 같은 순간이 있었는데 깨고 나니 꿈인지 현실인지 몽롱했던 경험이 있다. 그만큼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강제성’이 이 소설에는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니 마치 짠 것처럼 띠지에 인쇄된 추천사가 눈에 들어왔다.

 

“최종장에 이르러 심리스릴러의 트릭이 벗겨지고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아닌 한이리의 <게르니카의 황소>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다혜 <씨네21> 기자, 작가)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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