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학도 모르면서 펼쳐 든 파리리뷰, 그 후기 -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글 입력 2021.12.2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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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_표지.jpg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문학 실험실’이라고도 불리는 세계적인 문학잡지 파리리뷰에 실린 단편 중 몇 작품을 선별하여 꾸린 책이다. 단편을 선별한 것은 열 다섯 명의 작가들로, 이들에게 파리리뷰가 발표한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고르고 이유를 전해달라고 했다. 덕분에 이 책은 훌륭한 열 다섯 명의 작가들이 고른 양질의 작품과 그들의 감상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나는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고, 문학에 깊은 조예를 가진 사람도 아니라 파리리뷰가 얼마나 대단한 문학잡지인지 알지 못한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의 작가들과 이 작품을 고르는 데에 참여한 작가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 지도.

 

이 책의 원제가 ‘Object Lessons‘, ‘실물 교육’이었다는 점을 떠올린다.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좋은 교육서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렇지 않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에게는 이 책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에 답하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작성해보려 한다.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


 

나의 얕은 독서 생활에 약간의 깊이를 더해보고 싶었다. 나는 취미로 책을 읽는다. 그때마다 상황에 따라서 꽤 여러 권의 책을 읽을 때도 있고, 거의 읽지 못할 때도 있다. 어쨌든 책 읽는 습관을 아주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책을 읽는다. 취미로 읽는 책은 굳이 다양할 필요도, 어려울 필요도 없다. 한동안 독서를 꽤 오래 그만두고 나서 다시 독서를 시작할 때 스스로 붙였던 변명도 그런 거였는데, 책이 지루하면 독서를 습관화하기가 너무도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정말 가벼운 책들 위주로 읽었다. 덕분에 즐거웠고 마음도 가벼웠다. 출퇴근길 잠깐 짬이 나는 동안에도 책을 읽기도 했고, 사실 속으로 아주 뿌듯했다. 그러다 보니 금세 욕심이 났다. 욕심이 점진적이었으면 좋으련만 지금 생각해보면 좀 급했다. 좀 더 그럴듯한 책과 깊이가 있는 독서에 관심이 갔고, 그러던 중에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라는 책에 눈이 갔다. 파리리뷰가 얼마나 대단한 잡지인지도 모르면서, 괜히 그 이름에 눈이 사로잡혔다.

 

 

 

이 책을 다시 집어 들게 된 이유


 

내가 나의 성급함에 확신을 가지는 이유는,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글자가 술술 읽히는, 평소에 읽던 책들과는 달랐다. 나는 하필 세계문학 같은 경우, 낯선 이름이나 배경을 읽고 기억하는 데 엄청 애를 먹는 편이라 더 쉽지 않았다. 평생 달고 부드러운 쌀밥만 먹다가 난생처음 현미밥을 입에 넣은 사람처럼, 당혹스럽고 약간은 민망한 경험이었다.

 

이 책의 첫 소설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에 바로 책의 제목인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단편은 짧고 강렬했지만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해제를 읽고 다니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한다. 비가 오는 날, 비극적인 자동차 사고에 대한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고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 중 하나인 화자가 이 장면을 묘사하는데, 아무래도 이 사람의 의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아리송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었다. 첫 시도는 거기에서 중지되었다.

 

신기한 것은 덮여 있는 책장을 문득문득 쳐다볼 때마다, 소설 속의 비 내리는 사고 장면이 본 것처럼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하필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여서, 이 제목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표지 디자인이 덧입혀져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장면이 장면인 만큼 마냥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소설 속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책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금 생겼다. 이 책을 읽는 방법은 평소와 조금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새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표현들, 이 이상한 인물들을 그냥 구경하는 마음으로 마저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머지 소설들을 완벽히 이해하기보다 구경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해가 가지 않을 땐, 분명 해제에서 또 ‘원래 그런 것’이라고 적혀 있으리라 예측을 하면서. 덕분에 해제의 작가들과 마음이 통하는 듯한 기분도 조금 들어서 재밌었다.

 

 

 

해제에 숨어있는 공감의 문장들


 

가끔은 정말 무슨 맛인지 가늠을 할 수 없는 소설도 있는데, 그럴 때는 해제의 존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의 해제에는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풀던 국어 문제집처럼 명쾌한 해석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해제가 있어서 빛나는 순간은, 낯선 소설을 두고 쓴 말들에 조금이라도 공감 가는 부분이 있을 때다.

 

역시 작가들이라 그런지 자신의 감상을 순순히 털어놓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열심히 파고들어 공감 가는 부분을 찾았을 때, 내 감정을 대신 설명하는 기가 막힌 표현을 만났을 때, 해제까지 꼼꼼히 읽은 보람을 느꼈다. 아래에 내가 메모까지 해 둔, 보람을 느낀 표현들이다.

 

 

<춤추지 않을래>

위대한 이야기는 영원한 가려움

좋은 이야기는 역설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는 듯하면서도 완벽하게 충만하지는 않다. 주어진 거라고는 조금 더 큰 존재의 작은 조각, 사소한 것들의 집합체, 관점의 전환, 몇 주 늦게 듣는 진술이 전부다.

 

p.107


 

<방콕>

최고의 대화는 말하는 두 사람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이 거기 있기를 원치 않아야 이루어진다. (중략) 우리는 홀리스가 대화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한 층 더 긴장감 넘치는 대화를 읽게 된다.

 

p.247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을 꼽아보자면


 

책을 고르던 나의 얄팍한 허영심을 꿰뚫어 보듯이, 이 책에는 그런 방면으로 바보 같은 인물들이 몇몇 나왔다. 이 책이 나에게 자꾸 그런 인물들을 비웃게 만들어서, 그들이 등장했던 소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브리지 부인의 상류사회> 에 등장하는 브리지 부인은 무지하지만, 무지함에 순종적이고, 마음이 약하지만 동시에 위선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투표권을 손에 쥐고 있지만 자신의 결정을 믿지 못하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세탁부에게 무례를 저지른다. 자신의 위선을 자각하지도 못하고, 무지함에서 나오는 의존적인 성향을 극복하지 못한다. 대놓고 부인을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묘사를 덧붙여 가며 비판 거리를 늘려가는 묘사가 인상 깊었던 소설이다.

 

<궁전 도둑> 에서는 억압적인 정치인 아버지를 두려워해, 학교 퀴즈 대회에서 컨닝을 하는 소년 세지윅이 나온다.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며 다시 나타난 그는 세월이 지나도 비겁한 본모습을 버리지 못한다. 게다가 정치인이 되어 억압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는 모습이 비극적이다. 그를 가르치던 교사가 교육자로서 신념과 권력자의 압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어린 학생의 비극적인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인상적이다.

 

*

 

이 책을 완독한다고 하여 갑자기 깊은 안목을 가지게 된다고 광고할 수는 없다. 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된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새로운 맛을 한 가지 더 보게 되는 것이다. 매일 먹던 메뉴 말고 다른 메뉴를 시킨 날의 기쁨처럼. 즐길 수 있는 가짓수가 하나 더 늘어나는 기쁨이다.

 

책을 읽는 것이 꼭 쉽지만은 않았지만, 이 괴로움과 즐거움과 흥미로움과 찝찝함을 같이 나누면 좋겠다. 문학을 공부하고 깊이 즐기시는 분들께는 당연히 좋은 선택일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나처럼 구경하는 독자가 될 수 있다. 박학다식 대단한 나를 기대하지 않고서, 지금의 눈높이에서 올려다보는 문학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박경원 컬쳐리스트.jpg


 

[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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