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가족이 힘든 사람들에게 - 오히려 최첨단 가족

글 입력 2021.12.1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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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문제다?


 

나만 잘한다고 유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직장처럼 안 맞는다고 때려치울 수도 없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인데도 오랫동안 내게 큰 영향을 미친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경우라고 해도 이것 때문에 괴로운 순간이 흔하다. 가족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단어에 막연히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가족 때문에 힘들어한다. 가족만큼 모순적이고 애증으로 가득한 관계가 또 있을까.

 

이쯤 되면 가족이라는 제도 자체에 회의를 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족과 같이 혈연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는 그 형태만 바뀌었을 뿐 계속 유지되어 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가족의 형태 또는 가족구성원들 간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오히려 최첨단 가족>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뼈 빠지게' 희생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어릴 때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고 자라서는 나이 든 부모를 봉양하는 자식. 서로 희생함으로써 사회에서 더 높은 성취를 해내기 위해 애쓰는 가족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그런 가족이 세상을 헤쳐나가기에 효율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구성원들이 행복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모두가 답을 알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의 전형적인 핵가족이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최소단위로 기능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결과, 사회의 경쟁과 평가기준이 가족 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저자는 이러한 가족의 형태를 회의하며 조금 다른 가족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힌트는 원시 부족사회에서 얻었다. 원시 부족사회의 구성원들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행동으로 얼마나 공동체의 존속에 기여하느냐가 생존에 직결된다. 각자도생이 어렵고 재산의 축적과 상속도 불가능한 사회에서 이들은 오히려 문명인보다 자유롭게 살아가고, 공동체에 강한 소속감을 가진다.

 

저자의 가족 역시 함께 사는 집이 유지되기 위해 꼭 필요한 집안일을 각자 공평하게 분배한 다음, 나머지 부분에서는 자유를 누린다. 조금은 낯선 이 새로운 가족의 면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함께하되 '나'를 지우지 않아도 되는 가족


 

  

나는 아이를 낳아 또 다시 핵가족을 만들기 위해 결혼했는데,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서로에게 더 나아지거나, 더 채우거나 더 좋은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 없이 관계가 저절로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이해만으로 가족을 지탱할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 싶었다. 행복을 구하지 않고, 의무도 없으며, 더 발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냥 현재의 나로도 충분한 관계가 가능할지 궁금했다.

 

- 48쪽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받았던 사람이라면 서로 배려하고 맞춰주며 갈등이 최소한으로만 존재하는 가족관계를 이상적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예상과 달리 저자의 가족은 끈끈함과는 거리가 있다.

 

부모 자식 관계를 살펴보면 일단 부모가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다. 부모는 자녀가 자라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의식주를 제공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자식도 마찬가지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 희생하지 않기에 희생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전형적인 부모-자식 간의 '거래'가 사라지면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가 가능해진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는, 일반적인 가족의 논리역시 이 가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사회적 성공이나 부와 같은 추상적인 공통의 목표 하에 뭉치는 대신,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각자의 행복을 위해 애쓴다. 이를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 행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그 행복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짚고 넘어가는 일은 필수적이다. 그 과정 속에서 가족 구성원 각자의 고유함이 발현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모습은 구체적이고,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 가족구성원은 서로에게 섣불리 개입하는 대신, 묵묵히 상대방이 자신만의 목표를 이뤄내는 것을 지켜봐준다.


 

 

싸움과 대화로 숨 쉬는 가족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은 어떤 주의도 따르지 않지만 삶을 기회주의자처럼 헤쳐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풍요롭고 좋은 것들을 더 많이 누리겠다는 방향으로 멈추지 않고 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주어진 기회를 알아채고, 실험해보고, 진화하고, 새로운 무언가에 항상 열려 있어서 이 과정을 반복한다. 또 이 과정은 결코 혼자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 가족 안에서 '대화'로 실천한다. 이 대화는 일상적인 수다를 포함하지만, 결국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살아 있는 가족의 구조물이 되어간다.

 

- 283쪽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미국에 살아서, 저자를 비롯한 가족구성원들이 모두 남들보다 배려심이 깊고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라서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 이 가족이 처음부터 이러한 모습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 부부가 처음 결혼할 때의 목표는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돈을 아껴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혼을 생각할 정도로 남편과 자주 싸우기도 했다. 자신과 완전히 다른 성향의 첫째 아이를 볼 때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면이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가족이 계속 유지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싸움에 있다. 이 가족은 싸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갈등이 생겼을 때 억지로 참고 넘어가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갈등을 드러내놓고 싸움을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를 권장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최대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게 좋다는 통념을 깨는 발상이다. 중요한 건 싸우는 규칙을 정해두는 것이다. 싸움은 어디까지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지 한 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 쪽을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스포츠 경기를 하듯 사전에 규칙을 정해둔다. 그렇게 싸우면 서로를 잘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 가족이 싸움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대화이다. 아이들의 취침 시간이나 저녁 식사 메뉴와 같이 아주 사소한 것을 정하는 데도 짧지 않은 대화를 거친다. 이때 대화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자신의 뜻대로 설득하기 위함이 아니다. 결정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인지하기 위한 것이다.

 

 

 

다르게 보기, 다르게 살아가기


 

 

가족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준다. 나와 같고, 나와 다른 모습으로. 물론 나를 아는 일은 때로 상처가 되기도 할 수 있겠지만.
 

- 277쪽

 

 

저자는 자신의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하지만 그게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가족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면, 좀 더 행복하게, 우리가 가족의 순기능이라 믿는 것들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몇 가지 태도와 관점을 보여줄 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모두 다르고, 그런 개인이 모여 만들어진 가족 역시 모두 다르다. 저자의 방식을 무조건 따르기보다 싸움과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가족을 만들어가면 된다. 저자의 가족이 그러했듯이.


모든 가족구성원이 이 책을 함께 읽으며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물론 사회면에 나올 정도의 심각한 가족관계는 예외임을 책에서도 명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읽고 나서 가족에 좀 더 관대해진 나를 느낀다. 물론 사람인지라 책에서 느끼고 배운 것들을 금방 잊어버리겠지만 읽기 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이 힘든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기를 권하고 싶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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