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이한 것을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는가? - 초현실주의 거장들

사실 기이한 것만이 아름답다.
글 입력 2021.12.1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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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기이한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사실 기이한 것만이 아름답다.

 

앙드레 브르통, 1924, <초현실주의 선언> 中

 

 

기이한 것은 아름답다?

 

머리가 갸우뚱해지는 문장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람. '기이하다'라는 말은 살면서 겪기 힘든 신비한 경험을 했을 때, 이를 적절히 표현하려는 형용사의 일종 아니던가. 보통 우리가 생각할 때 '기이하다'라는 것은 낯설다, 혼란스럽다, 이질적이다 등의 의미를 띠고 있는데, 이런 것을 두고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앙드레 브르통은 무슨 생각에서 기이한 것을 아름답다고 표현한 것일까. 그가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지금부터 다소 기이한 작품 몇 가지를 살펴보며 '기이한 것은 아름답다'라고 이야기한 브르통의 심정을 이해해보도록 하자.

 


 

아름다움 1 : 연관성 적은 물체를 연관시켜 새로운 아름다움 발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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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삽화가 된 젊음

 

 

초현실주의자들은 우연적 요소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재봉틀과 해부용 탁자 위의 우산이 우연히 마주치는 것처럼 아름다워..."라는 <말도로르의 노래>속 구절을 좋아했던 초현실주의자들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무언가의 조합으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고자 했다.

 

르네 마그리트의 <삽화가 된 젊음>은 그런 구절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흙길 위에는 조각상, 사자, 당구대, 트럼펫, 신호등, 자전거 등 전혀 연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각 요소들이 특정 연관이 있는 것일까? 르네 마그리트의 과거와 연관 있는 오브제들인 것일까? 어떤 큰 의미를 품고 있는 연장선인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우연일 뿐이다. 우연이라는 것은 인과 관계가 없다는 의미다.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도 있다, 하나의 현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건이 얽혀있다, 라는 이성적 가치관에 정면으로 반하는 이 작품은 우연성에 기대하여 창조된 작품 또한 하나의 미적인 기준을 충족한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이 초현실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아름다움이라면서 말이다.


 

 

아름다움 2 : 작가의 의식을 최소화하여 순수한 아름다움 발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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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에른스트, 나뭇잎의 관습

 

 

막스 에른스트는 사물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문질러 새로운 상을 얻는 프로타주 기법을 작품에 처음 도입한 인물이다. 프로타주 기법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작가의 의도와 노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냥 대고 문지르면 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작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법이기도 하다. 아마 다들 100원이나 500원 동전을 종이 밑에 깔고 연필로 문질러 동전 모양의 그림을 종이로 쉽게 그려낸 적이 있을 것이다('그리다'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그리다' 용어 자체에 의식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초현실주의회화의 대표 기법인 프로타주이다.

 

작가의 의식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이보다 더 우연적인 작품은 없을 것이다. 그냥 대고 그리기만 하는 것에 작가가 개입될 여지가 어디 있겠나. 더불어 이보다 순수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대상이 되는 사물에 작가의 어떠한 해석도 들어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물 형태가 종이에 담기기 때문에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아름다움 3 : 질서를 깨부수는 파괴적 아름다움 발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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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레이, 선물, 대담함

 

 

여기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다리미가 있다. 본래 다리미의 목적은 옷을 깔끔하게 잘 다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만레이의 <선물, 대담함>은 바닥에 못이 박혀있다. 언뜻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고 날카로워 보인다. 만약 이 다리미로 옷을 다렸다가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위험한 다리미를 과연 다리미로 봐야 할까?

 

초현실주의는 사물에 부과된 원초적 특성을 뒤흔들어 우리의 사고관념을 마비시킨다. '다리미는 옷을 보존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그의 작품으로 인해 더이상 당연한 것이 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으로 인해 다리미는 옷을 해칠 수 있는 위험천만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사실, 다리미가 옷을 손상시키는 경우는 꽤 있다. 옷 위에 다리미를 너무 오랜 시간 올려두어 옷이 까맣게 그을린다던지, 원단에 맞지 않는 온도로 다림질해 되려 원단 신축성에 영향을 준다던지 하는 일은 꽤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것은 질서가 아니라 무질서이며 이성적인게 아니라 비이성적이다. 다리미가 본래의 목적에 맞게 쓰이지 않으면 그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고 무질서한 것이며 비이성적인 것이다. 다리미만 그럴 것인가? 우리는 특정 사물에 대해 '당연히 이러할 것이다'하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 TV는 방송 프로그램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책상은 무언가를 올려둘 받침대 역할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TV가 받침대 역할을 하지 못할 이유는 뭐가 있고 책상이 의자 역할을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담?

 

그렇게 전통적 사고방식을 뒤트는 행위로 우리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아름다움 4 : 폭발적인 욕망을 드러냄에서 오는 원초적 아름다움 발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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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레이, 복원된 비너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욕망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경우는 결코 많지 않았다. 욕망은 줄곧 숨겨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성적 욕망은 더더욱 엄격하게 대해졌는데 초현실주의가 등장한 1900년대 초반, 인간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이성의 산물인 과학에 의해 인류가 멸망 직전까지 가는 극단적인 경험을 하고 나서 이성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관측되기 시작했다.

 

에로티시즘에 기반한 초현실주의 작품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이성중심주의가 안락한 삶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하여 원초적 욕망을 재조명하기 위한 시도들이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며 이는 결국 얌전한 체 하는 성 인식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폭발적으로 끓어오르는 욕망과 육체를 묘사한 작품을 선보였으며 만 레이의 <복원된 비너스> 또한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는 결국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 아름다움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름다움 5 : 꿈 속 세계를 표현한 작품을 통해 기이한 아름다움 발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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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금지된 재현

 

 

거울을 보는 한 사내가 있다. 저것이 우리가 아는 그 거울이 맞다면 필시 사내의 얼굴이 보여야 할 것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사내의 뒷모습만 보인다. 사내 옆에 놓인 책은 우리의 상식과 같은데 사내의 모습만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다. 상식을 뒤엎는 수준을 넘어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 내지는 현실을 초월한 일이다. '초현실주의'라는 명칭에 가장 잘 맞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금지된 재현>이라는 제목따라 위와 같은 것을 재현하는 것은 현실에서 금지되어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있다면, 그래서 각 세계에서 금지된 것과 금지되지 않은 것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면, 거울을 비췄을 때 자신의 뒷모습이 보인다는 것은 명백히 현실 규정 위반일 것이다. 현존하지 않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기이함의 정점을 찍은 작품을 보고, 그런 낯섦에서 오는 불가피한 두근거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이한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

 

*

 

기이한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키는 다섯가지 작품을 살펴보았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런 기이함이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아름다움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표현했지만, 모든 미적 기준이 위와 동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름을 인정하는 예술의 한 방편이라는 관점에서 위 작품들을 관람한다면 새로운 것을 발견해낼 수 있지 않을까.

 

전시 <초현실주의 거장들 :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 뵈닝언 박물관 걸작展>은 22년 3월 6일까지 진행된다. 초현실주의 작품 원화를 관람할 몇 안되는 좋은 기회이니만큼 시간이 된다면 꼭 한번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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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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