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2021년을 낭만으로 마무리하는, 김상진 & 문지영 듀오 리사이틀

글 입력 2021.12.1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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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리사이틀 로망스 포스터 (최종).jpg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일상이 팍팍해지다보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낭만인 것 같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어야 낭만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데,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쁘게 되면 낭만도 사치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 점에서 낭만을 더 느끼지 못하고 정서가 메마르게 된 것을 느낄 때면 서글퍼진다. 이 때 메마른 정서에 단비를 내려주어야 한다는 갈급한 필요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여전히 코로나가 창궐한 상태라 2021년도 마음 편할 새 없이 바쁘게 살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모저모로 다양한 일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을 무사히 나름대로 살아낸 스스로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선물 같은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찾게 된 것이 바로 김상진 문지영 듀오 리사이틀이었다. 공연 제목부터 로망스인 이번 무대는 하나같이 아름다운 작품들로 선곡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 기대되는 것은 이 낭만적인 작품들을 뛰어난 두 비르투오소들이 연주해줄 것이라는 점이었다. 어디서건 앙상블 가운데서 항상 조화와 안정을 이루어 주었던 비올리스트 김상진, 솔리스트로서 화려하게 빛나지만 앙상블로서도 스며들어 자연스러움을 전해줄 줄 아는 피아니스트 문지영. 각기 떼어놓고 보아도 뛰어난 이 연주자 두 사람이 만나 보여줄 로망스 무대는 2021년을 마무리 짓는 공연으로 아주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들은 기대 이상의 무대를 보여주었다.


 



PROGRAM


Robert Schumann Adagio & Allegro for Viola & Piano, Op.70

Adagio

Allegro


Jeajoon Ryu Sonata per viola e pianoforte(World premiere)

I. Allegro amabile

II. Scherzo

III. Ninna nanna

IV. Finale


INTERMISSION


Sangjin Kim Romance for Viola & Piano


Rebecca Clarke Sonata for Viola & Piano

I. Impetuoso

II. Vivace

III. Adagio

 




첫 곡으로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피아니스트 문지영은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를 연주했다. 로망스라는 공연 타이틀에 걸맞게, 시작부터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 연주되었다. 그저 아름다운 서주가 아니라, 그 자체로 깊은 감정과 풍부한 서정성이 담긴 아다지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낭만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격렬한 알레그로는 열정적이었다. 그들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선율 하나하나가 대담했다. 아다지오 그리고 알레그로 속에 담긴 각각의 드라마는 그 간극이 매우 크지만 슈만은 이 놀라운 작품을 하나로 엮어냈다. 그리고 김상진과 문지영 역시 이 아름다운 작품을 하나로 온전히 들려주었다.


개인적으로 아다지오 구간이 정말 압도적이었다. 드라마틱한 알레그로도 좋았지만 아다지오가 연주되는 동안 순간적으로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공연장에서 말을 하진 않지만, 머릿속으로도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충만하고도 내밀한 감정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섬세한 두 연주자의 손끝에서 만났기 때문에 더욱 심금을 울리는 하모니가 되어 와 닿은 것 같았다. 이번 공연의 타이틀과 부합하는 동시에 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첫 곡이었다.


*


이를 뒤이은 두 번째 곡은 류재준의 신작이었다. 바로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였다. 이번 무대에서 세계 초연되는 이 작품은 레퍼런스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저 공연장에 일찍 도착해서 프로그램 북을 읽으며 어떤 곡일지 상상해보는 게 전부였다. 매번 참신했던 그의 신작이 어떤 작품일지 매우 궁금했기에 1부의 두 번째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엔 연주자인 것처럼 긴장감이 들었다. 류재준의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 김상진은 인상적인 붉은 포켓치프를 착용하고 무대 위로 나섰다. 그제서야 그가 여태 행커치프를 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첫 곡 떄엔 대체 무슨 색을 하고 나왔을까 놓친 것이 새삼 아쉬웠다.


류재준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악장은 알레그로 아마빌레, 빠르면서도 우아하고 사랑스럽게 연주하기를 주문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랑스러움보다는 고아한 느낌이 더 강조되는 악장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1악장의 시작은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는데, 이 선율이 마치 아스라이 먼 은하를 그리는 듯 매우 신비하고 기묘하다. 그리고 이 동기는 점차 확장되어 1악장 전반에 걸쳐 분위기를 형성했다. 선율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닌데 특히 피아노가 매우 오묘한 음향적 효과를 내면서 울려 퍼지기에, 이를 넘나들며 대화를 나누는 비올라 선율이 아주 유연하게 와 닿았다.


이어지는 2악장은 스케르초, 하지만 익살스러움이 느껴지기보다는 치열함이 느껴지는 악장이다. 피아노가 추격하는 듯한 선율로 시작하고, 비올라가 이를 이어받으면서 전개되는데 이 일련의 흐름 속에서 피아노의 역할이 매우 크다. 프로그램 북에서 묘사한 것처럼 2악장이 '철저히 현실의 영역'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피아노가 그 전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격하는 듯한 선율이 2악장 전반에 걸쳐 반복될 때마다 피아노의 강렬한 터치가 동반되고, 무엇보다도 카덴차처럼 아주 화려한 프레이즈도 들어가 있기 때문에 다른 악장보다 유독 피아노의 역할이 강조되는 악장으로 느껴졌다. 이는 피아니스트 문지영의 손끝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스케르초 악장에서, 문지영의 손끝을 보면 그는 거의 에튀드를 연주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치밀하게 연주되는 악장이었다. 이에 대응되는 김상진의 비올라 역시 맹렬하게 파고 들며 그 치열함을 극대화시켰다. 짤막하지만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 악장이었다.


이어지는 3악장은 노래악장을 할 법한데, 류재준은 이를 자장가로 대체했다. 자장가 악장이니만큼, 빠른 리듬이 치고 들어오거나 강렬한 선율이 압도하는 악장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노래악장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악장은 자장가라는 표현만 보고 기대하면 다소 놀랄 것이다. 자장가라고 되어 있으니 보통 아이들을 위한 부드러운 자장가를 생각할 법하지만, 류재준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자장가를 그린 듯했기 때문이다. 아주 조용하게 시작되는 3악장은, 온화한 밤공기를 그리기보다는 사색과 번민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을 그리는 것 같았다. 몽환적이면서도, 그것이 동화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이어서 굉장히 신선한 악장이었다.


마지막 4악장은 확장된 규모의 론도 악장이었다. 여러 주제를 다루면서 그 속에서 다양한 텍스쳐를 보여주면서 화려하게 연주되었다. 말미에 이르러 첫 대목이 다시 짧게 재현되고 극적으로 끝나는데, 아주 재치있는 피날레였다. 그 끝에서 뜨겅누 박수가 쏟아졌다. 그리고 이 비범한 작품을 작곡한 류재준이 무대 위로 나와 연주자들과 함께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1.jpg

 

 

2부의 첫 곡은 김상진의 로망스였다. 비올리스트이자 연세대학교 교수인 그는 작곡, 편곡, 지휘, 음악 해설 및 피아노 연주 등 굉장히 다양한 음악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가 2016년 발렌타인데이 때 초연한 이 작품은 아주 낭만적이고 감미롭다. 각 악기의 소리를 잘 들어보면 정말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밀어를 속삭이는 듯이 비올라와 피아노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유튜브에서 검색해보면 미리 들어볼 수 있는 작품인 데다 길이도 짧아서 자주 듣기에 정말 최적이었기에,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 중 가장 많이 들은 작품이기도 하다.


비올리스트 김상진은 이 작품을 연주할 때에 보라색 포켓치프를 착용하고 나왔다. 이번 무대의 시그니처 색상이 보라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연 포스터나 프로그램 북 등에서 보라색을 활용한 것을 두루 볼 수 있었는데 이번 무대에서 가장 짧은 곡이지만 사실은 가장 핵심인 곡이라고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연주영상만 보아도 아름다웠던 선율은 음악홀에서 들으니 배로 아름다웠다. 그리움과 사랑, 애틋한 정서가 골고루 느껴지는 로망스는 김상진과 문지영의 손끝에서 더욱 호소력 짙게 와닿았다. 녹아내릴 듯이 아름다운 선율 속에 느껴지는 사랑의 감정은 목요일 저녁 가슴 한 켠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었다. 짧지만 여운이 강한, 정말 아름다운 곡이었다.


*


이번 로망스 무대의 마지막은 레베카 클라크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장식되었다. 영국 출신의 작곡가이자 비올리스트였던 그는 여성이라는 점이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데에 제약으로 작용했던 시기에 여성 음악가로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활동해왔다. 최초의 오케스트라 여성단원 중 한 명이기도 했고, 전문연주자였으며 또한 작곡 콩쿠르에서 준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작품이 이번 공연의 마지막 작품으로 선곡된 것은 아주 인상적이다.


레베카 클라크는 이 작품의 서두에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 알프레드 뮈세의 시 '5월의 밤' 일부 구절을 기재해두었다. "시인이여, 류트를 들어라. 젊음의 포도주는 이 밤에 신의 핏줄에서 발효된다."라는 그 문구는 클라크의 작품을 들어보기 전부터 이 작품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키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작품에 걸맞게, 비올리스트 김상진은 하늘색 행커치프를 착용하고 무대에 나섰다.


클라크의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이지만 서주가 있다. 피아노의 지속음 위에 비올라가 카덴차처럼 자유롭고 격정적으로 연주하는 이 서주는 모든 편견을 깨고 음악 그 자체만으로 인정받았던 레베카 클라크의 영웅적 기개가 느껴진다. 피아노의 강렬한 터치와 비올라의 화려한 연주로 시선이 집중된 후, 1주제와 2주제가 제시되면서 1악장은 전환점을 맞는다. 기상과 절개가 느껴지는 도입부에서 제시부의 주제들을 통해 악장이 매혹적으로 발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을 아련하게 장식하는 아르페지오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2악장 비바체는 스케르초 악장이나 다름없다. 생동감 넘치는 구성에 흥겨운 리듬과 민속풍의 선율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스케르초를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2악장을 스케르초풍으로 만드는 또 다른 큰 요인은 리듬감과 속도감이 아니라 텍스쳐의 변화였다는 생각이 현장연주에서 강하게 들었다. 피치카토, 글리산도, 하모닉스 등 다양한 주법들을 활용함으로써 레베카 클라크가 2악장 음향의 변화를 다양하게 꾀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참신한 변화들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악장이었다.

 

이를 뒤잇는 마지막 3악장은 아다지오로 느리게 시작했다. 섬세한 두 개의 주제가 제시된 후 1악장의 주제가 재현되는데, 여기서 다시금 개척자 정신이 느껴지는 1악장의 서주가 재현되었다. 그 당당한 귀환과 함께 악이 끝맺어지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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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 나와 인사한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피아니스트 문지영은 두 곡의 앵콜 곡을 연주해 주었다. 먼저 첫 곡은 김상진의 발라드였다. 이번 프로그램에 있었던 로망스 외에 김상진이 작곡한 다른 작품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앵콜로 들은 발라드도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였다. 녹을 듯이 아름다운 첫 곡에 이어, 김상진은 또 다른 자작곡인 피치올라 센세이션을 연주해 주었다. 피치올라는 피치카토와 비올라를 합쳐 만든 합성어라고 한다. 즉 타이틀만 보아도 피치카토로 연주될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김상진은 비올라를 마치 기타 치는 듯한 자세로 잡고 현을 뜯기도 하고 스트로크를 하기도 했다. 이 피치올라 센세이션은 이번에 그가 악보를 낸 작품이기도 했다. 그래서 공연장에서 김상진의 자작곡 악보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를 감안하면 아주 센스 있는 앵콜 선곡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뛰어난 연주자 두 사람이 만나 선보인 무대가 뛰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기대한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무대였다. 특히 다인 구성의 앙상블로만 만나보았던 비올리스트 김상진을 듀오 무대로 만나면서 그의 연주에 좀 더 귀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이 정말 만족스러웠다. 때로는 부드럽게 그리고 때로는 강렬하게 관객들을 사로잡는 김상진의 연주는 역시나 믿고 들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김상진과 끊임없이 음악적인 대화를 나누며 순수와 열정의 세계를 넘나들었던 피아니스트 문지영 역시 인상 깊었다. 올해 연이 닿지 않아 내내 그의 무대를 보지 못하다가 연말에 이번 무대를 통해 겨우 연주를 들을 수 있었는데, 솔리스트로서도 빛나는 문지영이 얼마나 실내악에도 뛰어난 지를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매번 자연스러운 음악을 향유하게 해준 피아니스트 문지영 덕에 로망스 무대가 더욱 낭만적이었다.


바쁘게 흘러갔던 2021년을 김상진 문지영 듀오 리사이틀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무언으로 전해 준 낭만과 사랑의 감정은 12월 16일 공연을 찾은 관객들의 마음 속에 아주 오랫동안 깊게 각인될 것이다. 이 매혹적인 정서를 그 누가 잊을 수 있을까. 내년 그리고 그 이후의 무대에서도 이들이 다양한 연주활동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주길 기다려야겠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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