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반오십 INFJ의 인턴 일지 Ep 3. 꿰뚫는 팀장님과 어린 사수

글 입력 2021.12.1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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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3-1. 재밌을 것 같아요?


 

출근 이틀 차, 난데없는 영상 제작 업무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영상 촬영 기술도, 편집 기술도 없는 나에게 무작정 영상을 제작하라는 임무가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영상 팀에게 전달할 밑그림을 제작하는 ‘보조’ 업무에 가까웠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그날 오전(아니, 오후였던가?), T님께서는 업무용 메신저 슬랙(Slack)을 이용해 나와 J님을 회의실로 부르셨다.

 

전날 인수인계를 받을 때 외에는 처음으로 입장해본 회의실, 과연 무슨 얘기를 나누게 될지 은근히 두근거렸다. 지금껏 대외활동과 공모전을 거치며 알게 된 사실은, 나는 나의 의견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을 수 있는 회의 시간을 즐긴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맞이한 첫 회의 시간. 하지만 T님이 말씀하신 영상 이야기는 나에게만큼은 뜬금없는 것이었다.

 

 
“이번에 대표님께서 새로운 영상 광고를 하신대요. 그래서 영상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우선 전에 제작했던 영상을 보여드릴게요.”
 

   

바로 전날 인수인계를 받고 업무를 익히기도 바쁜데, 갑자기 영상을 하라니.

 

조금은 당황했지만 잠자코 보여주시는 영상을 감상했다. 참고로 지금 보여주는 영상은 지난 광고에 사용했던 것으로, 좋은 레퍼런스가 아닌 효율이 좋지 못했던 ‘실패 사례’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어서일까(사실 그렇지 않아도 내 생각은 변함없었겠지만), 해당 영상은 퀄리티는 좋지만 ‘광고’로 쓰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홈페이지와 SNS에 게시될 홍보 영상으로 쓰이는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임팩트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와 관련한 생각을 말씀드렸고, J님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T님 또한 우리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셨지만, 문제는 ‘그래서 새 영상은 어떻게 할 것이냐’였다.

 

그러자 그때부터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남이 만들어놓은 영상에 대해 왈가왈부할 줄만 알았지, 실제로 영상을 만들어본 경험은 없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당시는 출근 이틀 차였으니, 출근 첫날 작성했던 포스트가 게시되지 못했던 것처럼 회사의 색, 방향성에 대해서도 아는 게 전무했다.

 

그렇게 리액션봇이 되어 T님과 J님이 나누는 이야기에 열심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다 T님이 나에게 장난스레 말을 거신 것은 회의가 마무리 될 쯤이었다.

 

 
“재밌을 것 같아요? 눈빛이 변하는데ㅋㅋ”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앞이 깜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새로운 업무에 도전 의식이 생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출근 이틀 차였으니 아직은 열정이 불타올랐기 때문일까.

 

T님은 그런 나의 표정 변화를 캐치하셨던 건지, 당시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넘겼지만 당황했던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지금은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당시는 속을 들켰다는 사실에 불편한 감정이 차올랐다. 나는 남들의 표정, 행동을 관찰하면서 속을 꿰뚫어도 굳이 말하지는 않는데, T님은 면접 때부터 그것을 가차 없이 짚어내시곤 했고, 이후 이어진 업무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훤히 아는 것 같은 사람 앞에서는 불편함을 느끼는 게 정상인 걸까? T님과 조금만 더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다면 계속 불편했을지, 아니면 익숙해질지, 오히려 솔직한 어투에 편해졌을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아마 다음 편에서 작성하겠지만, 애석하게도 T님과의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Ep 3-2. 몇 살...이세요?


 

그로부터 며칠 후, 마케팅 팀에 새로운 팀원 W님이 입사하셨다.

 

이로써 우리 팀은 팀장님인 T님과 콘텐츠 마케팅 직무인 나와 J님, 그로스 마케팅 직무인 E님과 W님으로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비록 나와 J님은 인턴이었기에 정직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날 점심은 W님의 입사 기념으로 T님께서 팀원 다 같이 먹자고 제안하셨다. 평소 T님과 E님은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다른 팀원 분들과 따로 드시는 것 같았기에, 오랜만에 팀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들뜨기도 했다(물론 새로 오신 W님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으로 팀 전체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발목을 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5인 이상 집합 금지’였고 우리 팀은 하필이면 딱 5명이었다.

 

어쩔 수 없이 팀장님과 E님, W님이 한 테이블에 앉으셨고 나와 J님은 따로 앉게 되었다. 아쉬웠지만 J님과 점심을 먹을 때도 늘 다른 팀의 팀원 분들과 함께한지라, 업무 외 개인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기에 입사 후 근 일주일 만에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둘 다 인턴인 데다 아직 학생의 신분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대화는 학교 관련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 J님께서 조심스럽게 질문한 것은,

 

 
“실례지만, 혹시 몇 살...이세요?”
 

   

바로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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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도 궁금했지만 차마 속 시원히 물어볼 수 없는 주제였다. 내 또래일 것이라 예상은 해도 J님이 반 년 먼저 입사한 데다 업무도 능숙해 보였으니, 나보다 1~2살쯤 많을 거라 짐작할 뿐이었다.

 

 

“아, 저 스물다섯이요. J님은요?”

“스물다섯이요? 아, 저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J님은 스물다섯이라는 내 답변을 듣고 살짝 당황한 듯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질문에는 대답 대신 조그맣게 손가락을 펴서 정답을 알려주셨다.

 

 

“네? 스물셋이요?”

“그렇게 안 보여요?ㅋㅋ 친구들이 너 입사하고 나이 들어 보인다고 놀려요ㅠㅠ”

 

 

솔직히, 엄청 놀랐다. 충격 받았다고 말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되니 그제야 아직은 앳된 얼굴이 눈에 보였다. 사실 2살 차이면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는데. 편견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고, 또 J님에게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후배인 내가 불편하진 않을지 새삼 걱정이 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이가 업무에 지장을 준 것은 없었다. 당연한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와 J님은 나의 인턴 생활이 끝나는 내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가며 나름대로 좋은 시너지를 발휘했으니 말이다.

 

다만 서로 엄격하게 선을 지켰을 뿐이다. J님은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다른 팀 분들과는 친구처럼 지내면서도 거의 하루 종일 업무를 함께하는 나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차렸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흐르며 처음보다 서로가 편해지기는 했지만, 결코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며칠 전, 취업 카페의 글을 읽던 중 문득 나와 J님의 관계를 다시 떠올리기도 했다. 우수한 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수가 될 직원이 본인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지원자를 탈락시켰다는 썰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이가 업무에 주는 지장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랬다. 하지만 우린 몇 개월 후면 헤어질 사이이니 완전히 편한 사이가 되지 못해도 괜찮은 것이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그렇지 못한 걸까.

 

관계 맺음에 있어 나이라는 것이,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아직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문득 씁쓸해지는 순간이었다.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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