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제된 시간 [미술/전시]

시간이 눈에 보인다면
글 입력 2021.12.1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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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지나간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말은 시간이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시간은 거꾸로 흐르거나 잡아둘 수는 없는 것일까?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시간의 개념을 낯설게 바라보게 된 것은 스무 살 때였다. ‘MMCA 올해의 작가상’에서 만난 <전날의 섬 내일의 섬>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인간 문명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퍼포먼스 영상으로 보여준다.

 

구민자 작가는 날짜변경선이 있는 피지의 타베우니 섬에 간다. 타베우니에서 날짜 변경선을 기준으로 동쪽은 오늘, 서쪽은 어제가 된다. 즉, 한 사람이 날짜변경선 동쪽에서 하루를 보내다가 다음 날 날짜 변경선의 서쪽에서 하루를 보낸다면 그 사람은 하루를 두 번 살게 되는 것이다.

 

이날의 경험은 시간의 형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지구의 자전으로 만들어지는 자연현상에 인위적으로 측정 도구를 개념화해 ‘시간’이라는 추상을 만들고 그걸 다시 가시화하려는 시도가 인상적이었다.


시간이라는 개념에 사랑을 더한 작가도 있다. 주인공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그는 쿠바 출신으로 스페인의 고아원에서 청소년기까지 자랐다. 이후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에이즈로 동성의 연인을 잃고 자신도 결국 같은 병으로 39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한다.

 

생전 그는 길거리 옥외 광고판에 자신의 침실 사진을 보여주거나, 사탕을 전시실 공간에 쌓아 놓고 관객들이 사탕을 가져가게 하는 등 개념미술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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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 Torres), 무제 - 완벽한 연인(untitled-Perfect lovers),1991>

 

 

<무제-완벽한 연인>이다. 그는 초침까지 동시에 움직이도록 설정된 동일한 제품의 시계를 벽에 걸어두는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무제라는 제목에 ‘완벽한 연인’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동성 커플을 상징하듯 같은 모양의 시계는 같은 시간을 가리킨다. 완벽하게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또는 함께 했었던 시간을 작품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두 시계의 운명은 8년을 사랑했던 토레스와 연인 로스와 같아졌다. 똑같았던 시계의 초침이 시간이 흐를수록 차이가 벌어지고 언젠가는 둘 중 하나가 먼저 멈추게 되는 것처럼 로스가 죽음으로써 두 사람의 시간이 달라졌다.

 

토레스는 누구나 경험하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죽음을 통해 경험하는 상실을 벽시계에 투영했다. 그가 연인 로스에게 보낸 짧은 글을 통해 사랑과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시간의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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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가 토레스에게 보낸 편지. “시간을 두려워하지 마. 우리는 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거야,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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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 Torres), 무제 – 내 사랑 로스(untitled-Portrait of Ross),1991>

 

 

<무제 – 내 사랑 로스>는 전시장 바닥에 사탕을 잔뜩 쌓아 놓았다. 사탕은 총 175파운드(약 79kg)로 연인 로스가 건강했을 때의 몸무게다. 관람객들은 이 사탕을 먹기도 하고 몇 개씩 자유롭게 가져갈 수도 있다.

 

달콤한 사탕은 입 안에서 서서히 녹다가 사라진다. 몸 속에 사탕이 녹아들 듯 로스를 향한 토레스의 그리움과 사랑은 관람객의 몸 속에 편입된다. 사탕은 곧 로스의 몸이었고, 전시담당자는 사탕이 줄어들면 175파운드의 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다시 사탕을 채워 넣는다.

 

이렇게 로스는 훼손되었다가 다시 회복된다. 우리들의 사랑도 형태만 다를 뿐 비슷하다. 달달했던 사랑은 사라졌다 다시 채워지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남는다. 이처럼 토레스의 로스를 향한 공적 애도는 소수자로 여겨지던 그들의 사랑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랑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토레스의 작품에는 내러티브가 있다. 그런데 그가 관람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은 제목이다. 작품의 제목들을 ‘무제(untitled)’로 정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자유롭게 해석하고 느끼도록 상상의 한계를 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부제를 붙인다. 자기 생각의 흐름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제목이 없는 작품들을 보며 해석의 자유를 느끼기도 하지만 막막함을 함께 느끼는 사람에게는 작품을 감상하는데 필요한 작은 팁(tip) 주는 방식이다.


시간은 흘러가 버린다. 거슬러 올라가거나 잡아 둘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직까지는. 하지만 사랑했던 시간은 남는다. 사진이든, 감정이든, 작품이든 그것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한다.

 

공평하게 흘려 보낸 시간이 오로지 추억으로 남은 한 해였다. 흘러간 시간들 사이 구석구석마다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나간 시간은 일기의 형태로 내게 남아있다. 남아있는 한 해의 모습들은 어떤 형태로 남길 지 행복한 고민이 되는 연말이다.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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