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황선우,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직장인의 삶은 행복한가요?
글 입력 2021.12.0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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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요?

행복하세요!


 

행복하세요! 가끔 끝인사로 사용할 때가 있다. 직장 동료가 퇴사할 때, 그날따라 고된 업무를 보냈을 때, 팀이 신경 쓰던 일이 잘 마무리가 되었을 때, 혹은 그저 퇴근할 때도 가끔 행복을 빌며 직장을 벗어난다. 나를 위한 암시 같기도 하다.

 

행복해요? 누가 봐도 고민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나타난 직장동료에게 물어본다. 물어보기도 전에 동료는 먼저 다가와 서은씨, 나 사실... 하며 말문을 튼다. 아직 서른 살이 되지도 않는 나를 비롯한 동년배들이 갖는 고민은 각기 달라도 결은 비슷했다. 유유상종이라고 직장에서도 끼리끼리 어울리니 비슷한 결일 수도 있겠다만, 참다못해 직장동료가 털어놓는 고민은 대개 퇴사하느냐 마느냐로 귀결된다. 그럼 나는 물어본다. 지금 행복해요? 그럼 백이면 백으로 행복하지 않지만 참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울상을 짓는다.

 

그 마음을 내가 모를 리가 없다. 나도 수없이 고민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가 행복을 말하는 만큼 행복하기 위해 고민으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고자 했다. 나는 내가 행복해야 살아갈 수 있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 현재 나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행복을 정의하며 살아가고 있다.

 
 

 

행복하기 위한 '일' 그릇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_일반판_평면.jpg

 

 

정원이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듯 인생도 마찬가지다. 바라는 삶을 상상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곁에 하나씩 늘려가며 그 관계의 기억을 자기 삶으로 만들어온 사람이기에 튜더는 91세에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을 거다. 튜더의 정원은 아름답지만 스스로 번 돈으로 토대를 만들어 자신이 설계한 그림을 현실로 만들고 그 속에서 온전히 자기 힘으로 살고 있기에, 그저 주어진 천국이 아니라 쟁취해낸 낙원이다. (중략) 타시 태어나면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에 튜더는 답한다.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난 이미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어." 나는 오직 자신을 위해 자기 삶을 완전연소하는 이런 여성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보고 싶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중 189쪽

 

 

보통 일이란, 순전히 생계를 위해 노동하는 것을 말한다. 허나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가 말하는 '일'은 의미가 조금 다르다. 단순히 노동으로 그치는 일이 아니라 하루를 채우는 모든 것을 '일'의 범위로 둔다. 보통 '일'은 모두 회사에 관련된 일에 한정한다. 그러나 작가 황선우의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독자로서 읽다 보면 일의 범위를 좁게 한정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나의 시간을 아껴주는 일, 집안을 돌보는 일, 운동하는 일, 취미활동을 하는 일, 쉴 때는 푹 쉬는 일 등, '일'이라는 것이 노동 그 이상으로 나를 위한 모든 시간의 의미까지 담았다. 작가의 동거인 김하나 작가도 나의 감상과 마찬가지인지, 동거인으로서 작가 황선우가 삶을 사랑하면서 어떤 마법같은 일을 생겼는지 우리가 느낄 수 있도, 삶을 사랑하고 아끼길 권장하며 추천사에 찬사를 담았다.

 

대부분 일이란 하기 싫은 것이겠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이란 해야 하지만 하기 싫고, 하지 않으면 그립다. 혼연일체라 되어 사랑하기도 어렵고, 익숙해지면 권태로워지는 것과 같았다. 작가도 '일'의 원리가 이러하여 '사랑'과 같다고도 말한다. 나 또한 그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회사와 한 몸인 사람들이 있다. 아니 어떻게 하루 24시간이 회사로 돌아가지? 퇴근해도 이것을 어떻게 일로 엮을지, 어떤 아이템으로 뽑아낼 수 있을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하고 싶기도 하고 인정 욕구도 있어 회사에서 자아를 찾는 일이 본인에게 맞는 사람이 있더라. 온 힘을 다해 일을 사랑하는 그들은 당연히 조직 생활도 잘 헤쳐나간다. 그들 중 명예욕이 있어 승진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정말 순수히 일이 너무 재밌어서 열심히 한 사람도 있다. 아님 둘 다 좋아한다거나.

 

반면에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무던한데 예민해서 조직생활에 쉽게 피로감을 느끼고, 염증을 느끼는 편이라 라인 타는 것도 싫고 정치질도 싫다. 이것도 굉장히 여러 타입이 있을 텐데, 나 같은 경우는 회사에 무작정 충성하기보단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방랑하는 유목민 같은 부류다. 언젠간 프리랜서가 되고 말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든 글을 쓰는 직무를 찾아 방황하는 나는 비전과 전략이 보이지 않으면 동기부여가 떨어진다. 이 점은 서비스직에 몸담았을 때도 그랬다. 비전과 전략이 없다면, 망설임 없이 직장을 떠난다. 보통 프리랜서가 될 거라면 사회생활을 열심히 해둬야 한다고 하는데, '잘'하지 못할 바에, 적당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되지않나? '잘'하는 것을 '오래' 하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회사'를 내 것을 하기 위해 다니는 생계수단을 디폴트로 스킬과 경험을 키우는 '요소'로써 여기고 있다. 회사는 나의 '일'그릇을 키우기 위한 과정의 일부분인 것이다.

 

 

 

행복을 실천하기 위한 동기부여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_동네 서점_평면.jpg


 

작가는 높이 올라가는 여성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길 희망한다. 그리고 조직 생활에서 승진을 목표로 동기부여를 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티 나는 일을 많이 하는 경우도 있고 자기 생색도 뻔뻔스레 잘할 수 있는 성향도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자기 칭찬이 아직 부끄럽고 남사스러워 꿈도 못 꾼다. 누가 칭찬해 주면 '예, 감사합니다' 혹은 '아니에요~' 하고 화제를 돌리는 내가 먼저 나서서 '나 정말 잘했어요!'를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떤 사람이 조직에서 높이 올라가는지 아세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높이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높이 올라가요.

그런 사람일수록 필요한 일이 아니라 티 나는 일을 주로 하죠.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중 60쪽

 

 

어떻게 보면 나는 작가가 희망하는 인생관에 부합하지 않는다. 높이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기회가 된다면 하겠지만 우선순위가 아니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에서 느낀 일의 범위로 치환하자면 그에 적합한 인재가 아닐까 싶다. 나는 나를 아끼고 키우는 '일'을 매우 사랑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 독서하고 집안을 가꾸는 일, 그리고 나를 위한 공부를 하는 일, 내가 행복한 취미생활로 시간을 보내는 일, 아무도 읽지 않아도 글을 쓰는 일, 내일을 버틸 수 있는 운동을 하는 일,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또 여러 문화생활을 즐기는 일, 동거인인 어린 동생을 챙기는 일 등 하루를 채우는 모든 시간이 소중하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난 뒤, 스케줄러가 빽빽하게 채워지도록 내가 가동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곳곳에 끼워 넣고 멈추지 않고 움직일 수 있도록 나를 달군다.

 

무던히 나의 루틴(routine)과 리추얼(ritual)을 지키기 위해 실패해도 계속하는 법을 익혔다. 일부러 결과물을 보지 않았다. 어차피 수행하는 와중에도 내가 못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일단 부딪치고 실망하지 않기 위해 내가 제출한 결과물을 들여다보지 않고 '~ing' 하는 것에 몰두했다. 극단적인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경험을 통해 결과를 건강하게 곱씹을 수 있는 적정 수준이 도달하기까지 반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이 글 또한 그렇다. 직장인으로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한계가 있다 보니, 퇴고가 부족했고 글을 매만질 수 있는 시간도 모자랐다. 조금씩 쓰면서 쓰다 보니 글이 뒤죽박죽일 때도 많았고, 똑같은 얘기를 되풀이하는 문장도 많았다. 모두 퇴고를 통해 걸러져야 할 것들인데, 퇴고 시간이 부족하니 제출에 의의를 둘 수밖에.

 

블로그에 쓴 글은 간간이 수정하고 있다. 아직 수정할 것이 태산이지만, 현재 쓰는 글들을 보면 조금은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쓰고 있다는 점이 가장 뿌듯하다. 내가 원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이 합쳐지니 할 수 있는 수명이 길어졌다. 수명을 기르기 위한 원리와 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그렇게 하기 위해 내가 원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이 같은 일을 찾아 헤매는 시간도 따로 두고 있다.

 

 

부끄러워진 3개월차 수영 올챙이 앞에서 20년차 요가 수련자가 덧붙였다. "누굴 이기려는 마음 대신 슬렁슬렁 해야 오래 할 수가 있어." 누굴 이기려는 마음. 내가 운동을 하는 동력은 그것이었을까? 그래서 마음대로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혼자 지는 기분이 들었을까? 아무도 나와 승부를 겨룬 적이 없는데 멋대로 우월감에 도취되고 때론 열패감에 시달린다면, 그건 건강한 동력이 아니라 비뚤어진 호승심일 것이다. 시어도어 다이먼의 <배우는 법을 배우기>(민들레, 2017)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 악기를 연주하거나 운동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동작을 익히거나 음계를 연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신의 부적절한 반응과 감정, 태도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다시 말해 자신의 여러 모습들을 배우는 것 ..." 내가 자유로워져야 하는 부적절한 태도가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잘하지 못하는 채로도 계속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중 215쪽

 

 

순탄치는 않았다. 이런 인생을 살아간 지 이제 1년 정도 됐다. 태생적으로 우울함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염세적인 성향이 증폭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며 또 모든 것이 의미가 없는 상태로, 살아갈 방향성 없이 살아왔다.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하지 못했다. 나를 둘러싼 환경적 요인은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관심 있는 분야와 상충했고 그렇다고 나를 가만히 두지도 않았다. 오히려 해를 끼치고 방해만 했다. 이길 만큼 나는 강인한 성향도 아니고 내면의 유약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환경을 원망하며 '어른 아이'로 자랐다. 불온안 양육 환경과 온갖 가스라이팅으로 범벅된 나 자신을 그대로 돌볼 생각 없이 더 망치고 방치했었다.

 

어떤 생각에 따라 이렇게 방향성을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은연중에 세워둔 나의 인생 계획에 25살에는 필수적인 독립이 있었고, 그를 시작으로 내 환경을 그나마 나에게 유리하도록 바꿀 수 있었다. 태어나 25년이 걸렸다. 그리고 25살에 이룬 독립의 과도기는 2년간 지속했고, 27살이 되어서야 조금씩 숨통을 틜 수 있었다. 마음이 편안하니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것에 손이 가길 시작했다. 사실 나는 내 인생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가올 30살이 기대된다. 나이를 먹을 수록 행복해지는 내 삶이 얼마나 더 행복해질지 너무도 궁금하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이 글을 땔감으로 삼아 어떻게든 점화해보려 한다.

 

 

전력으로 일에 매달려 있는 것만큼이나 집중해서 잘 일할 수 있도록 나와 내 주변을 잘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는걸. 일상을 정성스럽게 영위하는 데서 많은 위대함이 출발한다.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제야 질문할 여유도 생긴다. 수면, 위생, 기타 개인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과연 정당한 걸까?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중 134쪽

 

 

 

실패한 상태로 계속 하는 법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진 지금에서야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싸우는 법을 알아, 내가 상처받지 않고 - 자존심과 반항심을 많이 버려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긍정을 표현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 유연하게 나를 지킬 수 있는 마음가짐이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생겼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남을 고칠 생각도 버렸고, 쓸데없는 논쟁도 더는 삼지 않았으며 내 마음에 담아두지 않게 됐다. 조금은 성숙해진 것 같다. 아직 이상적인 성숙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만 불과한 것이 아니다. 단풍이나 봄꽃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올 때,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같은 어려운 이름을 어려움 없이 외우던 내가 "그거 말이야.", "그 사람 있잖아" 하며 대명사를 자꾸만 쓰게 될 때, 어른들이 그렇게 되어가던 인생의 큰 사이클 속에 나 역시 속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나이차보다 크고 강하다고 느끼는 건 개체자다. 몇 살이든 사는 모습을 각자 다르고, 스스로의 태도가 그 차이를 만든다. 나이는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는 절대적 조건이 아니며, 던져버리고 극복해야만 하는 악조건도 아니다. 나이를 먹으며 보편적으로 따라가는 몸과 마음의 변화만큼이나, 나이를 먹으면서야 알게 된 새로운 좋은 것들도 내게는 많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중 165쪽

 

 

그래서인지 작가 황선우의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책은 그녀가 어떻게 인생을 지탱할 수 있었는지, 직업인과 생활인으로서 인고한 경험과 깨달은 점들이 오목조목 포인트를 뽑아 적당하게 말한다. 건강한 라이프의 저해요소로 공감 간 포인트는 우리 민족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나는 한국인답게 '빨리빨리'가 몸에 배어 있다. 손이 빠르기도 하고 작은 노동이어도 효율성을 찾아 루틴 화 시켜 손 빠르게 움직이는 나는 아르바이트나 서비스업을 할 때도 예쁨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빨리빨리'가 무조건 정답처럼 몸이 알아서 움직였는데, 그 탓에 모든 것이 조급했다. 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불안했고 생산성에 몰두된 삶을 보냈는데, 장기적인 몇 개월 단위 프로젝트를 여러 사람과 협업해야 하는 사무직이 되어보니 이것이 안 좋은 습관이 됐다. 배정된 팀도 빠르게 치는 것보단 천천히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밟아가는 스타일이라 내가 더 눈에 밟혔다. 그런 업무와 싱크를 맞추기 위해 입사한 이래 모든 시간을 쓴 것 같다.

 

나의 빨리빨리 병은 회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장에서도 발현됐다. 글을 쓰는데, 성장이 눈에 훤히 보이지 않으니 금방 조급해졌다. 성장했나 싶기도 하지만 이걸 도대체 결과로 어떻게 정리하나? 정리할 사이즈만큼 대단하지도 않았고 직무와 목표에 대한 온갖 고민이 주기적으로 몰려오면서 전반적인 생활에 마이너스 요소가 됐다. '실패'로 분류되는 상황에 자주 마주하게 됐고, 회복탄력성이 극복하기도 전에 다시 고민이 찾아왔다. 그러기 위해 나는 결과를 고의로 외면했다. 결과를 미뤄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일을 두는 것을 전략으로 두면서 나는 덕분에 실패하면서 회복하고 지속적인 도전을 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루틴과 리추얼을 갖게 됐고 직장에서도 조금씩 헤쳐나가고 있다. 언제나 움직이는 사람으로 적당한 휴식 기간을 가지면서 놓치지 않고 시작할 수 있고, 슬렁슬렁해도 계속할 수 있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다. 나는 또 어떤 습관을 지닐 수 있을까?

 
 

 

책을 통한 정서적 DNA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인터뷰는 특별한 종류의 대화다. 그리고 좋은 대화에서는 소위 지적 디엔에이라는 것을 교환하게 된다."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는 <예술과 풍경>(을유문화사, 2021)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좋은 대화에서 그러하듯 인터뷰에서 교환하게 되는 것은 정서적 디엔에이이기도 하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받아 답을 내놓는 사람도 아마 인터뷰가 어디로 흐르리라 예상하거나 의도하는 길을 각각 가지고 만날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의도를 비껴 알지 못하는 감정의 화학작용에 의해 제2의 새로운 곳까지 나아가곤 한다는 것이 대화의 신비, 인터뷰의 매혹이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중 152쪽

 

 

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추천사에 끌려서다. 나의 고민과 해결책으로 찾은 리추얼(ritual)의 근거로써,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비록 일방적인 인터뷰겠지만, 이 글을 통해 어느 정도 상호 인터뷰를 한 기분이다. 내가 책을 집은 동기와 알맞게 떨어져 책을 펼친 그날, 300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을 순식간에 읽은 것 같다. 새벽까지 독서를 하느라 졸린 눈을 비비며 집중했지만, 계속 읽고 싶은 마음에 책을 덮지 못했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통해 내 삶을 지탱할 확신을 발견한 기분이었다.지적 DNA까지는 아니어도 정서적 DNA를 느낄 수 있었다.

 

에디터 출신인 작가 황선우는 분명 나와 다른 인생 곡선을 가지고 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그녀는 내 기준에서 열정 분자 분류되며, 직장 생활에서 더 큰 자아를 가지고 활동했을 것이다. 그러니 후배들에게도 좀 더 직장 생활을 권하는 것일 거고 현재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디딤돌이 됐지 않나 싶다. - 물론 그 맥락이 전부는 아니다. 나 또한 직장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 그녀는 후배들에게 일과 별개로 네트워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도 말한다. 책에서도 밝힌 것처럼 외향인인 그녀는 체력적인 문제를 제외하면 사람을 만나고 바깥을 나가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을 만나는데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지난날들을 아쉬움으로 뽑고 있다.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쌓을 수 있었을 더 넓을 인맥 대신 선택한 체력도 다른 방식의 경쟁력이 되어주긴 했지만, 역시 사람을 만나는 데 더 적극적이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부서나 회사, 업계의 동향에 대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게 되는 넓은 시각과 빠른 정보는 일할 때 확실히 큰 힘이 된다. 서로 해온 업무에 대해 호감을 표현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다가 협업을 도모하는 일도 생긴다. 무엇보다, 일하면서 부딪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뒷배다. 쪼르르 달려가 질문할 선배가 언제까지 곁에 있어준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연차가 높아질수록 스스로 알아서 해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네트워킹 같은 거 피곤하다고 외치면서도 나 역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얻으면서 일해왔고, 살아왔다. 사람은 혼자서만 뛰어나기 어려운 존재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중 128쪽

 

 

나 또한 동의한다. 좀 더 큰 곳에서 다양한 사람과 부딪치며 일을 해보니, 사람과 사람이 모여 시너지를 내어 더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소통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능력인지 느꼈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통해 정서적인 안정도 얻었지만, 내가 부족한 부분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해 볼 수도 있었다. 부족한 건 많으나 지속적인 관계를 휴식기 없이 지속하면 결국 삐걱거리는 인생 사이클을 생각해 보면, 사람을 통해 큰 아웃풋을 가져오기에는 나의 성향과 재능은 적절하지 않다. - 그렇다고 못 할 정도로 부적응자는 아니니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 단지 나에게 사람 관계란, 할 수도 있고 잘할 수도 있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두세 배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피로도를 얻는 일이다. 그녀와 달리 작가 김하나처럼 내향인인 나는 선뜻 에너지를 투자하기 어려운 분야다. 바깥 외출이 잦으면 글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고민에 빠질 때면 나는 저자 전우성의 <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를 떠올리기로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잘하는 것을 잘하기도 어렵다.

 

 

재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숨어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뾰족한 송곳이라기보다 쉽게 흩어지는 클립 정도일 확률이 높을 것 같다. 하지만 기억해보자, 클립이 필요할 때 딱 어디 있는지 못 찾아서 헤맨 적도 많을 것이다. 클립의 쓸모를 알리고 존재감을 쌓는 마음으로 오늘도 인스타그램 앱을 연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중 106쪽

 

 

그래서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굳건하게 다지게 됐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은 잘 알고 있다. 업무 외의 시간에 직접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구조를 생각해 초안을 쓴 다음, 맥락을 점검하고 퇴고를 하며 편집과 발행까지 해야 하는 일은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나마 '책' 한 권으로 한정된 글을 쓰기 때문에 자료 조사의 시간이 덜한 부부도 있지만, 블로그에 추천집이나 뭔가 다른 글을 쓰려 할 때면 자료 조사의 시간도 추가된다. 투자한 만큼 전문적인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 글도 나의 넋두리가 주이고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가 가미된 독후감 같은 느낌이니까. 하지만 이런 것들이 쌓여 언젠간 효력을 발휘할 날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현재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는 곳곳에 포진된 독자의 베스트셀러로 뽑히는 추세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MZ세대가 아닐까 싶다. 작가의 팬이라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할지도 모른다. 카피라이터의 중요성을 느낄 정도로 '목숨 걸지도 때려치우지도 않고, 일과 나 사이에 바로 서기'라는 문구가 내 마음속을 파고드는지. 내 목표로 치환하자면 '목숨 걸지도 때려치우지도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글을 쓰기' 정도 되겠다.

 

나는 작가도 하고 싶고 에디터도 되고 싶고, 그냥 글을 계속 쓰면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 책, 전시 등 문화를 즐기면서 살아가고 싶다. 어느 날은 나만의 공간에 박혀서 글을 쓰고 싶기도 하고 아니면 노트북 하나 들고 여행을 다니면서 걱정 없이 글을 쓰고 싶다. 그날이 되기까지 얼마나 더 큰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더 선명해질 것이라 믿는다. 불투명한 현재에 조급해하지 않고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있다. 현재 이 글을 쓰기 위태 이틀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책까지 읽은 시간을 포함하면 3일이 조금 넘을 것 같다. 퇴고를 제외한 시간이라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겠다. 내 마음에 들어온 책인 만큼 조금 더 진득하게 글을 매만져볼 생각이다.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해보려고 한다.

 

사랑은 행복의 한 부분이다. 내 삶을 더 아끼고 정성스럽게 빚기 위한 모든 일들을 사랑하며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길 바란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읽으며 좀 더 용기를 가지고 나와 같은 고민을 가졌던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지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프레스_이서은.jpg

 

 

[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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