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네게는 접촉이지만 내게는 충돌이었다 - 키스마요

존재와 상실에 관한 이야기
글 입력 2021.12.0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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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마요 해변 한가운데에 두 개의 알이 떠있고, 그 해변에 나체의 여자가 검은 음모를 가지고 걷는다. 내가 그토록 찾았던. 그녀가 그곳에 서 있다.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간다. 어느 순간 그녀가 떠났고, 외계 비행체가 나타나고, 양아치라고 불리는 나체 시위대가 기승을 부리고, 자살이 유행한다. 중간중간 그들을 덮은 바이러스는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키고, 인간과 개의 영원할 줄로만 알았던 연대를 끊어버린다.

 

지구에 곧 다가오는 소행성은 종말을 예고하고 인간들은 더 이상 살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그녀가 떠났다는 것.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에겐. 글은 그런 식으로 쓰여있다.

 

그 모든 소동으로부터 한 발짝 뒤에 서서, 사라져버린 그녀를 그리워한다. 왜 떠났는지, 그녀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나'를 두고 어떻게 떠났는지. 그녀 없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없이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찾고, 찾다가 티비에서 나오는 나체의 그녀를 본다.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본다. 보고 있니? 그러나 답은 오지 않는다. '나'는 계속 그녀와의 과거를 되짚는다.

 

 

 

한낮의 오후 같은 책


 

책은 전체적으로 한낮의 오후 같다. 특히 휴일의 오후. 아무 계획도 없이 오직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래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서로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만 같은, 그래서 서로를 지워버리는 그런. 아득하고, 정신없다. 존재함에도 그리워한다.

 

이별, 종말, 외계인, 자살 소동, 시위대들이 마구 뒤섞여있다. 이 얘기를 하나 싶으면 어느 새 저 얘기로 넘어가 있고 그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엮여있다.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인 것 같고 외계인, 종말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다. 이별을 그리워하다가 종말을 맞이하고, 연대 자살에 대한 후기를 읽다가 소행성 충돌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러나 실은 이 모든 것들이 끝을 맞이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는다.

 

오후 5시 노을이 지는 시간처럼 현실과 동떨어지는 괴리감이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를 덮어온다.

 

 

 

책이 이야기하는 이별이란


  

주인공은 아주 지독한 이별을 한다. 영원히 헤어졌던 그 순간, 그 장소로 끊임없이 돌아간다. 그녀에게 어떤 문자를 보내도 답은 없다. 그러니까 정말로 지독하다. 똑같은 이별을 계속 반복하는 거다. 한번 겪어도 힘들 그 일을. 어떻게 보면 이별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별이 아니라 사라져버린 것으로. 우리 서로 헤어지자고 말한 것이 아니니까, 난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너만 사라져버린 건 이별이 아니니까. 그건 실종이니까. 실종이란 건 영원히 찾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그때로 돌아가서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지, 왜 사라져버린 것인지, 아니면 납치라도 당한 것인지, 이유를 묻고 단서를 찾는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이 그녀를 찾는 이유를 실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으로 묘사했다. 상대방이 나를 인식해야만 존재하는 주인공이기에. 그러니까 지독한 사랑은 자기 자신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작가가 말하는 사랑은 이런 것이였다.

 

"네게는 접촉이지만 내게는 충돌이었다."

 

 

 

공상의 시간



SF의 장점은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 문제들을 공상이라는 단어로 덮어 무겁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이다. 이 책 또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 혹은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사색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양아치라고 불리는 시위대는 속아서 한 시위였다. 일을 준다고 해서, 이게 정확히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모른 채로. 아마 외계 비행체를 덮으려고 한 것일지도. 큰 사건을 덮기 위해서 또 다른 큰 사건을 일으키는 건 흔한 일이니까.

 

그들을 괴롭히는 바이러스가 애완동물한테까지 이어졌다. 개들이 본능을 잃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본능을. 작가는 그걸 해방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랑에서 해방되었다고. 주인이 있을 필요가 없으니 주인 없는 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은 정말 그런 바이러스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생각할 수 없을 테다. 아니 생각할 필요가 없을 테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종말을 앞두고 우리는 무얼 할까. 무얼 할 수 있을까. 사회가 만든 목표도 개인적인 목표도 이룰 수가 있을까. 이룬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종말을 앞두고 자살을 한다. 어쩌면 그것만이 진정하고 분명하게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일 테다. 죽는다는 건 끝이 있으니까. 자의로도 타의로도 분명하게 끝이라고 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만 죽는다. 종말을 앞두고, 외계 물체를 보고. 인간이 죽어라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순간. 사람들은 더 이상 살기를 거부한다. 어쩌면 인간들은 진짜로 살고 싶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을 살게 하려고 사회의 모든 것들이 설계됐을 뿐이다. 사회, 정부, 그 이상의 너머의 것을 보았을 때 더 이상 사는 것은 무의미해진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곧 죽을 터인데. 그럴바 엔 직접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적어도 그건 내 선택이었으니까.

 

그래서 책에서는 '자살'을 구원으로 불렀다. 오직 나에게만 나의 선택으로 줄 수 있는 구원. 그건 때론 구원이 아니기도 했다. 신기루 같기도 했다. 신이 없을 때 신을 가장 믿는다고 이야기했다.

 

 

 

사랑의 부재 = 존재의 부재



글체가 정말 특이하다. 작가가 원래 시인인 줄 모르고 책을 봤다. 뚝뚝 끊기는 듯한. 의식의 흐름처럼 생각나는 게 그대로 나오는 것 같다. 시적인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차적인 언어가 많이 생략되었다. 문장의 단어들이 온갖 관념어들로 차 있다.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한 문단이 시여서. 시는 읽는 건 빠르지만 그 후에 소화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단 하나씩을 오래 소화하느라 아주 진한 와인을 먹은 기분이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사실 사랑이다. 사랑의 부재. 사랑이 사라져서 존재까지 상실한. 얼마나 뜨겁게 사랑했고 그래서 그 사랑의 상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한 이야기. 상대방의 아픈 과거마저 내 아픔이 되는. 헤어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주인공은 그 순간으로 되풀이하고. 그 사이에 들어선 다른 이야기들은 사랑을 잊기 위한 장치마저 돼버린다.

 

마지막 장, 마지막 문장에서는 이 둘이 동성애자였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사랑의 형태가 동성애인 것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결국 사랑이란 똑같은 것이니까. 똑같이 행복하고 똑같이 아픈 것이니까. 작가는 그래서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마지막에 배치했다. 그럼으로써 사랑은 모두에게 같은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책을 읽고 나면 현실로 돌아온다. 미확인 비행체도 잃어버린 그녀도 바이러스도 없다. 그러나 책 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었던 깊고, 독특한 생각들은 나의 평범했던 일상을 더 절절히 바라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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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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