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만큼 정세랑을 사랑할 순 없어 [도서]

글 입력 2021.11.2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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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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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생일선물로 정세랑 작가의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를 선물 받았다. 책에 둘러싸여 있으면 좋겠다 싶었던 날들이었다. 창 너머로 여름의 햇볕이 조용히 흘러 들어오는 오후, 작은 소파에 누워 책을 한없이 읽고 싶었다.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지 묻는 친구들에게 책을 말했고, 여러 권의 책이 도착했다.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는 여름에 시작해 겨울이 다가온 오늘에야 마지막 장을 덮었다. 내용이 와닿지 않거나 재미가 없어서라는 슬픈 이유 때문은 아니다.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천천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마음일 때에 책장을 넘기고 싶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바다를 건너고, 그곳에서 또다시 그리울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이야기에 천천히 머무르고 싶었다.

 

단편소설을 읽을 때 좋은 한 편을 읽고 그 감정을 금방 흘려보내긴 아쉬워서 하루에 한 편씩 느리게 읽던 마음과 비슷하다. 그렇게 세 계절을 머리 맡에서 함께하던 책을 덮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세랑 작가가 화가 폴 세잔에게 했던 말처럼, 내가 정세랑을 좋아하는 마음은 뾰족하고 정확하다.

 

 

 

소설가의 에세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느낀 것은 에세이라는 장르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만큼이나, 심드렁한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에세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정확히 그 점에서 에세이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문보영 시인이 한 말이 떠오른다.

 

 

나는 친구들의 일기를 읽으면서 일기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 문보영 <일기시대> p.33~34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는 언제나 내가 관심과 흥미를 지닌 주제였다. 나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많아서 이기도 하고,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과 서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함부로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주로 사람들의 숨은 마음, 때로는 변명과 자기합리화일지 모르는 이야기를 찾아 듣기로 했다. 반대로 좋아하고 사랑할 대상을 더 많이 찾기 위해서 듣기도 한다. 이건 의식적인 노력이기 보다, 나의 타고난 기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건, 단순히 결과물로 존재하는 작품만을 좋아한다는 게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새해 첫날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읽으면서 나는 자주 입이 마르고, 종이를 넘기는 손이 떨렸다. 너무 좋은 부분에만 표시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책 기둥엔 보라색 플래그가 빼곡해졌다.

 

<시선으로부터,>를 좋아하는 마음은 곧 정세랑 작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공감하고 동경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마음은 곧 정세랑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과 같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에세이라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전작이 좋았던 작가의 신간을 읽고 싶었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정세랑 작가를 더 크고 정확하게 좋아하고 싶어서 이 책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같은 페이지를 공유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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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를 보고 그렇게 좋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좋아하는 소재가 자주 등장하고,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완성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좋아했던 소재는 미술이었다. 여성을 향한 억압이 당연시되던 20세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던 예술가 심시선을 중심으로 고고 미술학자, 미술품 복원 전문가, 크리처 아티스트 등 예술과 맞닿은 직업을 지닌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등장한다. 작품에 대한 대화와 미술관, 박물관을 오가는 장면들을 보는 게 즐거웠다. 정세랑 작가도 분명 미술에 대한 애호를 지닌 사람일 거란 직감이 들었다.


여행의 테마는 그 사람의 취향을 꾸밈없이 보여주곤 한다.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속에서 여행길마다 다양한 미술관과 박물관을 걸었던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 깊이 공감했다. 뉴욕 첼시의 갤러리처럼 좋은 전시 장소를 새롭게 알게 되기도 했고, 이전에 다녀온 적 있는 런던의 코톨드 갤러리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으며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관심사가 같은 친구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 나누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뻤다.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은 너무나 근사한 자극이 된다. 압도적인 작품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 원하게 되는 것 같다. 나를 놀라게 해봐, 생각하게 만들어봐, 전복시켜봐…… 지금 가장 새로운 걸 목격하고 있다는 즐거움, 살아 있는 아티스트의 손실되지 않고 전해지는 에너지 같은 것이 짜릿하다. 어떤 작품이 잊히고 어떤 작품이 고전이 될지 결정되지 않은 채로 뒤섞여 부글거리는 것도 멋지고 말이다. 아무것에도 중독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스물아홉 살에 그렇게 무너졌다.

 

–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p.35~36

 

 

꼭 만났던 적이 있었던 것처럼, 밤새 같은 주제로 이야기 나눴던 적이 있었던 것처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스물아홉 살 뉴욕에서 평생 꺼지지 않을 빛을 발견한 작가의 모습에서, 나 또한 같은 빛을 만난 첫 순간을 떠올렸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같은 페이지를 지닌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로서 다른 장르의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생각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내가 정세랑 작가에게 느끼는 것처럼, 그 또한 공연이나 미술 작품 앞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동경과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있었다.


그 순간들이 이야기 속 인물의 성격으로, 작은 에피소드로, 글의 주제로 스며들곤 했다는 점을 알았을 땐, 우연히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알게 된 것처럼 설레었다. 어떤 작품을 좋아하게 되면, 늘 그것이 탄생하게 된 비화가 궁금해지곤 하니까. 한참을 혼자 궁금해하다가 직접 작가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의 짜릿함이 있다.

 

 

 

사랑을 전하며


 

정세랑 작가의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듣는 건 즐겁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소설가로서 또 한 개인으로서 크고 작은 메시지들이 전해졌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생각을 아우르는 책이지만 이토록 좋았던 건 그 안에 숨은 하나의 주제였다.


정세랑 작가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여행이 두려웠지만 뉴욕에서, 오사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비행기에 오르던 사람. 오래전부터 꼭 붙어있던 이야기와 놀라움을 선사하는 현대미술, 소중한 자연과 환경, 우리 주위에서 쉽게 배제되고 마는 연약한 사람들, 모두에게 전해지는 사랑의 감정이 코앞까지 느껴졌다.

 

불행과 폭력이 쏟아지는 세상에서도 좋은 면을 찾고, 긍정적인 기운을 담아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녹이는 걸 잘하기에, 자꾸 친구들의 좋아하는 면을 소설 속에 녹인다.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다음을 상상하기 위해서.”라는 말처럼.


그의 사랑을 전해 받아, 나 또한 세상에 더 많은 사랑을 전하고 싶어졌다. 책 속의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을 찾았다.

 

 

모서리마다 반하며 걷다가 탁 트인 공간에 이르러서였다. 오래 품고 있던 질문의 답이 갑자기 분명해졌다. 우리의 뇌는 신기한 방식으로 작동해서, 끙끙거리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연산을 계속하다가 그런 식으로 대뜸 결과를 알려주기도 한다. 왜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불안정한 경로를 굳이 선택한 걸까, 선택하면서도 명확하지 않았던 동기를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최대 가능성을 원해.”

 

최대 가능성이라는 압축적인 다섯 글자로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이 불완전하고 가혹한 세계에서,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성장해 보고 싶다고 스스로의 욕망에 이름을 붙였다.

 

-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p.122~123

 

 

오늘도 각자의 고민으로 분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최대 가능성을 믿고 계속 나아가라는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믿는, 정세랑 작가의 말에 빗댄, 사랑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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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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