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동그라미보다 세모가 많은 사람

글쓰기에 대한 짧은 메모
글 입력 2021.11.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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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끝을 달리며, 인풋의 용량은 줄어들고만 있다.

 

새벽 첫차를 타면서는 꾸벅꾸벅 조는 시간으로 쓰고, 틈나는 시간에는 남아있는 인풋을 긁어모아 과제를 한다. 모든 일정 사이에는 평소처럼 좋아하는 책 한 권을 펼쳐볼 여유도 없어서, 답답하기도 하다. 글을 많이 써야 하는 현재로서는 인풋의 결여에 ‘시간 부족’이라는 변명을 달고 싶다.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이번 글에는 아웃풋된 지난 글들에 대해 반성할 겸 글쓰기에 대한 짧은 생각을 담고자 한다.


만약 누군가 ‘글쓰기’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학습지’라고 답하고 싶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학습지를 풀었던 나는 학습지가 얼마나 반복적이고 지독한 존재인지 알고 있다. 인수분해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 틀린 표시가 너무 많아서 어이없이 웃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분명한 점은 학습지를 오래 하면 ‘틀림’에 담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틀려도 맞는 순간이 오겠지.’나 ‘반복해서 풀 텐데 뭐 어떤가’라는 생각 때문이다. 시원하게 오답 체크를 한 뒤에 끙끙거리며 풀다 보면 세모로 표시할 수 있고 그렇게 문제지는 지저분해 지지만 점차 답을 찾아가게 된다.


나는 머리가 좋은 편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한 번에 이해하고 동그라미를 표시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동그라미가 된 문제는 오히려 의심하고 세모 표시를 더 애틋하게 여기게 된 듯하다.

 

표식에 감정을 표현하는 게 웃기지만, 전반적으로 나는 걸어온 길도 세모 표시와 같았다. 고집부리면서 가다가 길을 돌아서 가기도 하고, 한번 된통 당하고 다시 정신 차리고 길을 갈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에는 이런 내 틀림에 대한 흔적이 많다.


지난 글을 읽으면 이제야 보이는 과거의 어리석음과 과오가 눈에 보여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피해나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걱정된 적도 있다. 온통 틀린 자국만 남아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학습지를 풀 때처럼 ‘틀림’에 대한 담력을 잃어버리지 않고자 한다. ‘틀려도 어떤가’라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조금씩 어딘가로 향하는 나를 보면서 서툴지만 세모 모양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흔한 잔소리지만, 학습지는 한 번에 몰아서 하는 것보다 매일매일 할 때 의미가 있다. 한 번에 높은 계단을 올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지듯이, 욕심내지 말고 올라갈 수 있는 높이의 계단만큼 차곡차곡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학습지와 글쓰기는 닮게 느껴진다. 지난 사유의 계단에서 나는 얼마나 올라왔는지, 다시 차곡차곡 쌓아가야 할 부분은 어디인지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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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Writher’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단어 ‘Writer’와 한 철자 차이인데 미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Writher’은 몸부림치는 사람,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Writer’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건 몸부림을 치는 것처럼 힘이 드는 일인 것은 맞는 것 같다. 비록 대단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갈피를 잡고 써 내려가며, 저녁엔 괜찮더라도 아침엔 이상해 보이는 글을 수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또 계속해서 ‘나’를 드러내는 이 글쓰기에는 오랜 힘을 들여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 생각의 사유든 타이핑하는 시간이든, 글에는 몸부림을 치는 만큼 깊은 시간의 흐름이 들어있다.


그래서 꼭 동그라미와 같은 결과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세모 자국이 묻은 내 글들을 더 아껴주기로 했다. 이제는 애써서 고치고 시간을 들여 고민한 순간이 더 귀중했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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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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