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슈미 - 그들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다

글 입력 2021.11.2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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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 포스터.jpg


 

'슈미'라는 연극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 시대의 '정신 탐구극'이라는 부연설명에 흥미를 느꼈다. 소설과 드라마, 영화 등 허구의 이야기 속의 인물은 대개 현실보다 극단적으로 감정을 표출한다. 그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껴봄직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성으로 적절히 조절하곤 한다. 소설 속 인물의 극대화된 감정과 행동,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그로 인해 일어난 결과를 확인하며 실제의 우리들을 대입할 수 있기에 이야기 속에서의 간접 경험을 좋아한다. '슈미'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는 슈미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임 교수 임용을 앞둔 경만은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왔다.


이들의 친구 애경은 슈미와 경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영국에서 깜짝 귀국한다. 그리고 유완이 영국에서 책을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곧 나올 후속작은 자신이 집필을 도왔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도규는 슈미와 경만을 호시탐탐 자극하며 슈미를 손에 쥐려 하는데...

 


역시 사람의 감정을 극대화시켜주는 가장 유용한 장치는 사랑이다. 시놉시스는 뒤틀린 사랑으로 인해 크고 작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몇 개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했다.

 

모든 게 새로웠다. 처음 가 본 공연장이었고, 소규모의 연극도 생소했다. 눈에 띄는 무대 장치 또한 없었고 거의 모든 이야기를 인물의 대화와 행동으로만 이어간다. 온전히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몰입감을 더욱 안겨주었다.

 

극을 보고 한참 동안 생각에 빠졌다. 극 자체가 어려워서도 있었고, 어딘가 찝찝한 느낌이 떠나질 않았다. 이는 슈미를 포함한 모든 인물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와 비극적인 결말에 의한 충격, 인물의 극단적인 감정을 좇아 형성된 피로감 등 복합적인 감정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마음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시선


  

슈미는 나르시시즘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끊임없이 자유와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누구보다 그에 가까이 가려는 인물이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향해 끝없이 나아간다는 점에서 언뜻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편협한 시선과 강박에 갇혀 결국 자살이라는 파멸의 길로 다다른다. '나 자신이 유토피아.'라는 차원이 다른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탄탄하고 근본적인 이유는 부족하다.

 

애경에겐 남편이 있지만, 유완에게 사랑을 느낀다. 경제력을 좇아 향기 없는 결혼을 한 그녀는 스스로의 약속인 결혼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곤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유완과의 구원이라며 남편 대신 언급한다. 사랑에 대한 끝없는 갈증, 진심을 보였던 그녀는 이렇게 불륜을 통해 사랑을 찾는다.

 

도규의 아버지는 슈미 아버지의 운전 기사였다. 신분의 차이가 그의 시선과 동일시되어 슈미에게 끝없는 열등감을 느끼고, 어른이 되고 선망되는 직업을 가진 그는 우월감을 느끼며 갈증을 해소하려 한다.

 

경만은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슈미의 남편이다. 교수 임용을 앞두고 있고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지만, 슈미의 무리한 요구에도 자신의 의견을 자신 있게 피력하지 못하고 그에 순응한다. 피아노를 사기도 하고, 슈미의 사치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한다.

 

유완은 쾌락을 좇는다. 애써 끊었던 알코올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파티에서 쾌락을 맛본 후 이성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충동적이고 절제되지 않은 모습으로 외부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그는 비극의 첫 주인공이 된다.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존감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도 꾸준히 제기되는 의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자존감은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정하고 부족한 모습이라도 스스로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 끝없이 특정한 수단을 찾았던 인물들은 모두 온전히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것으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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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사랑하는 시선


 

슈미는 자신의 평생의 동반자인 경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경만을 '조련'하는데 능해 보였다. 그의 말을 툭하면 끊기도 하고, 자신이 기분이 좋을 때면 강아지 대하듯이 상냥하게 대하다가 당근을 줬다 싶으면 다시 채찍을 건네기도 한다.

 

애경은 자신의 평생의 동반자인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의 재력을 사랑할 뿐이다. 그녀는 감정에 충실하다. 목소리에서부터 풍성한 감정표현은 극에 환기를 불어넣고, 발랄함을 얹어준다. 슈미의 심기를 건드려 극에 긴장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유완과의 상호 구원의 경험을 사랑이라 믿으나, 그 믿음이 저버려진 후 절망한다.

 

도규는 슈미를 탐한다. 전세자금을 빌려준 사실을 부부에게 은연 중에 계속 상기시키며 우위를 점한다. 친구라는 표면적 관계 아래 개입되면 결코 이성을 유지할 수 없는 물질인 돈이 관계하여 그들 사이에 균열을 형성한다.

 

경만은 슈미와의 관계에서 확실한 을인 자신의 위치를 무기력하게 받아들인다. 진정으로 슈미를 위하고 사랑하고 있다면 지식인으로서 그의 광기가 발현되기 전에 제재를 하거나, 상대의 잘못을 바로잡는 시도를 해 보지 않았을까.

 

유완은 애경과 함께 지내면서 서로를 구원한다는 것에 동의하나, 어디까지나 사랑이 아닌 구원이라며 사랑을 울부짖는 애경에게 선을 긋는다. 또한 슈미 앞에서 지난 날의 정열적인 감정을 회상하며 추억 속으로 이끈다.

 

이 모든 인물들은 온전한 타인에 대한 사랑 또한 부족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


 

연출가 하수민은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 정말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긍정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타인을 향한 사랑은 자신에 대한 온전한 이해로부터 온다. 매력적인 인물들을 손아귀에 쥐락펴락하며 당당했던 슈미도,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부자와 결혼하고 흥행한 책에 삽화를 새긴 애경도, 경만도, 도규도, 유완도 모두 자기 자신도 타인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다.

 

진정한 사랑을 품에 안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러한 극단적인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을까, 아니면 비극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되었을까. 이 세상에 필요한 건 사랑이라는 생각이 극이 끝나고 이야기를 곱씹어보면서 차차 떠올랐다.

 

 

[김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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