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때때로 너무 많은 것을 잊으며 산다 - 키스마요

김성대 소설, <키스마요>를 읽고
글 입력 2021.11.2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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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마요 평면표지.jpg

 

 

 

글을 열며,



이별을 했다. 이별을 많이 해 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할 것도 없다. 한 번의 큰 이별 속에는 일련의 작은 이별들이 있기 마련이니.


이별을 할 때마다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정신이 무너지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별과 관련된 슬픈 것들을 소비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왓챠에서 영화 <이프 온니>나 <이터널 선샤인>을 찾아보거나, 시요일에서 안현미 시인의 <이별수리센터-P에게>나 류휘석 시인의 <거울에는 내내 텅 빈 것이 비치고>를 찾아 읽는다.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을 듣는 것도 효과적이다. 카타르시스를 통해 안정을 꾀하려는 마음이다.


그리고 어제는 <키스마요>를 읽었다.

 

 


지독한 이인증의 감각



소설은 두 가지의 큰 흐름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하나는 '나'와 '너'의 개인적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지구의 종말을 앞두고 벌어지는 사회적 이야기다. 이 글에서는 편의를 위해 전자를 작은 이야기로, 후자를 큰 이야기로 부르고자 한다.


 
전등이 꺼지자 어둠이 펼쳐졌다. 밤하늘이 맑았다. 그리고 떠 있었다. 거대한 전등이. 밝게 빛나는 거대한 알이. 나타난 게 아니라 있었다. 밤하늘 깊숙이 눈을 뜨고 있었다.
 

 

작은 이야기는 주인공 '나'가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하며 시작된다. '나'는 애인인 '너'와 저녁 식사 후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때, 지구촌 전등 끄기 캠페인이 시작되었고, 도시를 밝히던 빛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제서야 보이는 밝은 알.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나'는 '너'에게 그것이 보이냐고 묻지만, '너'는 대답이 없다. 그리고 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너'가 빛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작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너'의 부재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을 때, 큰 이야기에서는 여러 해프닝들이 일어난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했고, 미확인 바이러스가 창궐했으며, 알몸의 폭도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바이러스의 원인이라고 지목된 가축들은 버려지거나 살처분 되었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자살이 유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밖에서 이러한 엽기적인 사건들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주인공은 그 무엇에도 관심을 갖지 못한다. '나'는 지구의 종말을 실시간으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눈앞에 닥친 개인적인 슬픔에만 집중할 뿐이다. 이러한 증상은 '나'만 겪는 것이 아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었다.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도, 감염되지 않기 위해 백신을 맞은 사람들도.


 
감염되면 몸을 놓치는 거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물 먹은 종소리가  들린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소리에 몸이 흩어질 거 같다고도 했다. 뭐라도 붙잡고 있지 않으면.
 
 
경과는 좋지 않았다. 백신을 투여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부작용에 시달리는 걸로 알려졌다. 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통증이 계속되면 몸속이 들여다보이는 거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통증이 들어서는 신경이 보이는 거같이. 자신의 몸에 공포를 느낄 만큼. 그러는 사이 통증이 더해 간다는 거였다. 졸아드는 핏줄이 눈앞에 다가오는 거 같다고도 했다. 공포가 피를 타고 돌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몸을 꿰뚫고 지나가는 듯한
 


이는 비단 소설 속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든 소수자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잊고 산다. 우리는 빈집을 보며 그곳에 살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하면서도, 그곳에 누가 살았었는지, 왜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는지는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임에도 그것이 자신의 일인지 모르는 부끄러운 현대인의 민낯이다.

 

 


나와 너 그리고 그 사이



'나'와 '너'에 대해서 처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본 그것의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주인공의 모두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한 마디에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의 벽이 모두 허물어진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기는 꿈을 꾸며 하나 둘 형체를 잃는다. 이처럼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네가 필요하며, 네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까닭은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종종 잊어버린다.


너를 위해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경험. 그것의 시작은 아직 자아가 미처 형성되지 못한 사춘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남녀를 불문하고 나타나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체모가 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키스마요>에서 체모에 관한 서술이 종종 등장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웃음이 모자랐을까. 너는 겨드랑이를 파고들었다. 새 웃음을 꺼내듯이. 새 가슴을 꺼내듯이. 웃음이 두근거릴 때까지. 두근두근 굴러갈 때까지.

겨드랑이를 푸는 거 같기도 했다. 엉킨 실을 풀 듯이. 계속 매만지고 손보면서. 신경이 미세해지는 거 같았다. 너의 손에. 나는 너의 손으로만 느껴지니까.

나는 너의 음모를 꼬았다. 한 터럭 한 터럭 너에게 옮겨지고 싶었다. 속속들이 뿌리내리고 싶었다. 힘줄도, 핏줄도, 너의 음모가 짙어지고 있었다. 엉키고 젖은.

 

 

우습게도 이 장면을 읽으며 어릴 적 실험과학 교과서에서 본 전류 실험이 떠올렸다. 실험은 간단했다. 우선, 양 끝에 집게가 달린 전선 두 개, 배터리 그리고 전구를 준비한다. 그리고 전구에 달린 전선의 피복을 니퍼로 살짝 벗긴 다음 전선으로 배터리를 연결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때, 본 진짜 전선은 어둡고 구불구불했다. 마치 음모처럼.


서로의 체모를 만지는 것도 비슷한 경험이리라. '너'와 '나'의 소통은 섹스 중이 아니라 그 이후에 이루어진다. '너'는 '나'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고, '나'는 '너'의 음모를 배배 꼰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이 전해지길 기도하면서. 이 행위 속에는 섹스 중에는 느낄 수 없는 희한하고 기묘한 소통의 감각이 있다. 그러나, 사랑을 잊은 사람들 앞에서는 이러한 방법도 무용지물이다.


 

너의 음모가 검게 빛난다. 날 선 은빛으로. 그 빛은너를 겨누는 빛이었다. 평화유지군이 너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장갑차 위에서. 자세가 불안정해 보인다. 방탄복이 그렇게 보이게 하는지.

 


마지막 장면에서 '너'는 키스 마요 해변에서 발견된다. '너'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외계에서 온 비행체의 그림자 속을 미라처럼 걸어간다. 그리고 외계인은 '너'를 통해 지구와 대화하고자 한다.


그들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소통하길 원했으나, 평화 유지를 명목으로 지구인들이 연합하여 만든 집단은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로 '너'를 조준한다. 심지어, 사랑의 원천이자, '너'의 몸을 지키기 위한  음모마저도 날붙이의 빛을 내며 스스로를 겨눈다.

 

 

 

글을 마치며,


 

코로나19가 잔인한 까닭은 단순히 치명률 때문이 아니다. 비말감염이라는 그것의 특성은 관계를 단절시켰다. 특히, 그것은 소중한 사람이면 사람일수록 치명적이었고, 사랑하기에 소통을 해선 안 되는 상황까지 와 버렸다.


또한, 그것은 연약하여 보살핌이 필요한 곳부터 차례대로 무너뜨렸다. 노약자는 당연하다. 모든 이목이 생존에 쏠리며, 사회적 담론들 또한 퇴보했으니, 동성애자도 있겠으며, 아직 사회적 기반이 약한 청년들도 마찬가지겠다.


이러한 시국에 각자도생의 사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불인지심을 가지고 있는 인간임을 잊진 말자.

 

 

 

신동하.jpg

 

 

[신동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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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딸기맘
    •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글이네요
      지금의 세상과 견주어  쓴  글이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다시 시작해야 함을 인지시키는 글입니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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