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엄마의 사랑이 두려워질 때 - 연극 '4분 12초'

글 입력 2021.11.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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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잘못 키운 거니?

 

엄마는 내가 크고 작은 사고를 저지를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엄마는 울며 내게 애원했다. 나는 엄마가 바라는 착한 아이로 바르게 성장해야만 했다. 그제야 엄마는 안심했으니까.

 

엄마들은 종종 자녀들과 자기 자신을 떼어놓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은 짐작만 할 수 있다. 다만 뒤틀린 사랑의 마음은 경험해보아 안다. 상대를 온전히 다 알아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실패할 때 오는 묘한 패배감.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란 그 깊이가 더 깊다. 나는 감히 그것이 어떤 질감의 사랑일지 예상할 수 없다.

 

나는 연극을 보고 난 후 사랑의 모순에 대해 한참 생각하였다. 사랑은 왜 이렇게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그리고 자신의 심연을 끝없이 마주 보게 하는지.

 

 

 

연극 <4분 1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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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4분 12초>는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 아들 '잭', 피해자인 '카라'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말한다. 동시에 아들 '잭'을 키우는 부모 '다이'와 '데이빗'의 입장에서 아들의 범죄 행위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층적 감정을 무대 위에 풀어놓는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의 처음을 장식하는 장면은 갈대밭 위 김혜자의 춤사위다. 한을 살풀이하는 듯한 몸짓과 형용할 수 없는 묘한 표정. 그 한 장면 속에는 무수히 많은 감정이 녹아 있다.

 

연극 <4분 12>의 시작, 잭의 엄마 다이의 눈빛은 영화 <마더>의 첫 ㅎ장면을 연상시켰다. 다이는 잭의 셔츠에 피가 묻었다는 사실만으로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이 아는 일상적인 '잭'의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잭'은 낯설고, 두렵다. '잭'의 셔츠에 묻은 피는 다이의 불안한 암시처럼 더 큰 사건으로 그녀를 이끈다. 다이는 마주해야만 한다. 17년 동안 모르고 살았던 '잭'의 또 다른 모습들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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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 아들은 그런 애가 아니야.

 

 

다이는 남편 데이빗에게 아들의 셔츠에 묻은 피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데이빗의 말에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 내 아들은 그런 애가 아니야."

 

다이는 자신 만큼 아들 잭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확신한다. 아들은 코피를 잘 흘리는 아이가 아니며, 누군가를 상처줄 아이가 아니고, 내가 모르는 비밀을 품을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다.

 

다이는 자신이 낳은 아들, 자신이 키운 아들, 자신이 온전히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들 잭을 믿는다. 그래서 잭의 무고함을 밝히고자 한다.

 

잭의 친구 닉을 만나고, 잭의 여자친구였던 카라를 만난다. 닉은 말한다. 아줌마, 무조건 나와 잭 중 하나가 그 일을 했다면, 그건 제가 아니라 잭이에요.

 

카라는 말한다. 아줌마, 잭은 그런 애가 아니에요.

 

잭의 무죄를 밝히는 과정에서 다이는 잭이라는 아이의 심연과 처음으로 마주한다. 아이니까, 라고 말하기에는 이제 너무 커버린 아이, 그리고 용인될 수 없는 커다란 범죄 행위.

 

 

 

범죄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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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는 무섭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내 아이가 이렇게 자라 버린 것일까. 어디부터 어디까지 되돌릴 수 있을까. 다이은 자신에게 향했던 날카로운 화살이 괴로워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다이는 남편 데이빗에서 화살을 돌린다.

 

 
당신, 오래 전 찍었던 내 나체 사진을 당신 친구들에게 보여준 적 있어?
 

 

다이는 데이빗이 차라리 그렇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아들이 카라의 나체 사진을 친구들과 돌려본 행위가 단지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수준의 나쁜짓에서 그칠 수 있다. 혹은 잭의 범죄의 근원의 다이 자신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데이빗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이는 카라에게 말한다.

 

 
20분 동안 잭을 네 맘대로 해도 좋아. 대신 도구는 안돼. 그리고 외상이 생겨서도 안 돼. 
 

 

다이는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충분히 알기를 바란다. 그리고 몸소 느끼기를 바란다. 다시는 이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걸. 하지만 잭이 감옥에 가는 것은 두렵다. 카라는 그런 다이를 혐오스럽다는 듯 쳐다본다. 다이는 카라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상처를 안기고 말았다.

 

 

 

어머니가 아닌 '다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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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서 잭은 단 한 번도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는다. 극을 끌어가는 사람은 엄마인 다이다. 결국 이 극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들 잭에 대한 탐구는 결국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다이에게 잭은 자기 자신과 같았다. 그리고 그런 잭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해야 하는 책무를 진다.

 

연극은 '다이'의 탈피의 과정처럼 읽혔다. 잭이 자신의 몸에서 분리되는 과정에서 '다이'는 엄마 '다이'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다이'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었다. 극을 보는 내내 그녀의 탈피가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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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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