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슈미', 다섯 인물의 다섯 욕망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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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극 ‘슈미’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하고 있는 연극 ‘슈미’를 보고 왔다. 노르웨이의 모더니티 사회와 인물을 냉철하게 그려낸 사실주의 작가 헨릭 입센의 <헤다 가블러>를 이 시대의 한국의 모습에 적용시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는 예술가의 창작을 지원하여 창작역량 강화를 촉진하는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창작활동 지원작’이다.
연극 ‘슈미’에는 총 다섯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다섯명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친구이지만,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지고 실현하고자 한다. 계속되는 대화들과 사건들을 통해 이들의 감정은 서로 복잡하게 뒤얽힌다.
이 속에서 우리는 불안, 나르시즘, 긍정, 피로, 분열, 혼란, 파괴 등 다양한 자아들의 존재로 인해 다양한 감정과 입장을 가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슈미’처럼 눈에 보이게 과도한 집착을 가지고 있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아름다움’과 ‘자유로움’, 그리고 ‘자기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다섯 인물은 다섯개의 각자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 욕망의 흐름을 따라 극을 해석하면 좀 더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슈미의 남편 ‘경만’이다. ‘경만’은 얼핏 보기에는 굉장히 평범하고 순한 사람으로 보인다. 슈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일에서 성공해 안정된 일을 얻기를 원한다. 이런 그의 욕망은 ‘평범한 삶’이다. 실제로도 그가 사랑에도, 그리고 일에도 진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평범하게 보이기를’ 원하는 사람 같았다. 자신이 무리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 친구의 성공을 응원하는 모습, 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 모두 착하고 순한 인물의 모습이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기 위해 친구나 부모님에게 무리하게 돈을 빌리기도 하고, 응원하는 친구가 목숨같이 생각하는 원고를 주웠을 때 바로 돌려주지 않고 슈미에게 넘기기도 한다.
그의 분수에 맞지 않는 으리으리한 집, 능력이 없음에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책 출판, 이기적인 슈미에 대한 사랑. 이 모든 것은 그저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대한 경만의 인정욕구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경만의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의 모습을 대신해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머리는 우아하지만 물 밑으로는 열심히 발버둥치고 있는 백조의 모습 같달까.
다음으로는 슈미의 옛 사랑 ‘유완’이다. 유완 역시 인정받기를 원했다. 다만 경만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경만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바랐다면, 유완은 ‘슈미의 인정’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 슈미가 말하는 ‘자유로움’과 ‘아름다움’을 실현시키고자 평생을 바쳤다.
하지만 결국 실현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절망스러운 부분이다. 유완은 슈미의 말과 행동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꼈고, 자신도 그와 일치되기를 바랐다. 그것이 진정한 예술가이고, 자유인이라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글 하나에 얽매이는 자기 자신도 이기지 못하는 존재일 뿐이었고,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도규’ 역시 ‘슈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사용해 슈미를 적극적으로 도우며 슈미는 자신의 힘 아래에 두려고 한다. 이러한 그는 ‘자신의 영향력’에 대한 욕망이 큰 것 같다. 슈미와 경만의 집을 비밀번호를 마음대로 누르고 자유롭게 드나드는 모습이나, 경만에게 자신이 경제적 지원을 해주었던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모습 등을 통해서 그의 욕망을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끝내 슈미의 계획이 실패하고 슈미가 유완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찾아오자 이것을 빌미로 슈미를 협박하며 결국 우위를 선점하게 된다. 한 때는 슈미의 자유를 위해 적극적으로 도왔지만, 결국 슈미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억압한 것은 도규였던 것 같다.
‘애경’은 비교적 단순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유완의 사랑’이다. 자신도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 자신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랑과 협력을 통해 유완의 책을 함께 완성시켰다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이 이 욕망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유완의 배신을 알았을 때 처절하게 절망하고, 유완의 절망을 알았을 때 그를 되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그녀가 유완을, 그리고 유완과 함께 완성시켰던 그들의 협력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잘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이 연극의 주인공 ‘슈미’다. 슈미는 ‘자유롭고 싶은, 아름답고 싶은, 또 스스로도 빛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자유를 외치고, 스스로 빛나고, 인생을 즐기는 승리자 디오니소스를 외치는 그녀는 삶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 꽤나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만이 뚜렷해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자신의 목표를 타인을 통해 실현시키고자 하는’ 욕망도 역시 보인다. 유완을 끊임없이 실험이 빠뜨리고, 경만과 애경의 속마음을 캐묻는다. 자신의 자유를 실천하기 위한 도구들도 도규를 통해 얻는다.
그리고 결국은 도규에 의해 억압된 자유를 인식하고 자살을 하고 만다. 끊임없이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기 때문에 욕망을 가장 잘 파악하기 좋은 인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필자에게 ‘슈미’는 너무나도 어려운 존재였다. 슈미가 물건을 이동시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슈미는 정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일까? 친구들이 없었다면 슈미는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슈미가 생각하는 자유, 그리고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슈미는 자유로운가? 혹은 자유를 찾아 자살을 한 것일까? 그렇다면 자살을 한 후에는 자유로워졌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나’에 대한 질문으로 옮겨온다. 슈미의 자살은 자의적이었을까? 만약 자의가 아니었다면 어떠한 요소가 그녀를 그런 결과로 이끌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자유로운가? 내가 생각하는 자유와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나는 어떠한 욕망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인간은 각자의 욕망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긴 직육면체 모양의 상자만으로 구성된 무대와, 오직 다섯 명의 배우분들로 이루어진 이 연극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했다. 주제 역시 직관적이지만 여운을 남겨 생각해볼 거리를 많이 남겼다. 120분 동안 집중해서 몰입할 수 있었고 원작의 내용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각반응의 대표이자 연출가 하수민님이 의도한 것처럼 “장기화된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지치고 어쩌면 예민함이 당연시되는 이 시기에 연극 ‘슈미’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나와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 같다.
[윤영서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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