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건축알못의 건축 축제 탐방기: 오픈하우스서울 2021

글 입력 2021.11.1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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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이른바 ‘건축알못‘이다. 내가 오픈하우스서울 이라는 건축 축제에 가게 된 건 축제에 관한 관심 때문이었다. 과연 건축 축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다.

 

지난 10월 30일, 건축가 김중업의 사직동 주택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에 사전참가 신청했다. 이 주택은 한국 건축사에서 중요한 건축가인 김중업의 작품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는 서울시가 철거를 목적으로 건축물을 샀다가, 뒤늦게 김중업의 작품이라는 것이 우연히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작품을 유지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이런 논의에 낄 수 있는 수준의 관람객이 전혀 아니다. 내가 프로그램을 선택한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메인 프로그램 중 하나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선택의 과정부터가 나에게 약간은 버거웠는데, 마치 생소한 물건으로 가득 찬 백화점에서 무엇을 집어 들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은 중요해 보이는 프로그램을 집어 든 것이다. 아마 나 같은 이유로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그런 나에게 건축의 가치라는 건 너무나도 생소했다. 그나마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미적인 가치였다. 그러나 ‘미적’이라는 것이야말로 너무 주관적인 것 아닌가?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그냥 느낌’외에 무엇으로 평가해야 하지? 게다가 수많은 TV 프로그램과 건축잡지가 보여주는 것처럼 건축의 유행은 쉼 없이 변화한다. 그 앞에서 어떻게 오랫동안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건축물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이 문단에 찍혀 있는 수많은 물음표만큼의 궁금증이 일었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시간 맞추어 주택 앞 차고에 모였다. 프로그램을 이끌어 주시는 교수님을 따라서 주택을 한바퀴 돌았다. 이곳을 보기 위해 찾은 관람객들이 주택 마당을 가로지르며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조금 놀랐는데, 겨우 우리나라에 건축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약간은 위축되기도 하고, 한 마디도 못 알아먹는 것 아닌가 싶어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사람들 사이에 섰다.

 

내가 궁금했던 건 건축을 앞에 두고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가였다. 혹은 사람들은 건축물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지? 화장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이 마스카라가 어떻고, 이 아이섀도는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수준이었다. 건축 축제는 이런 나에게 적합한 행사인지, 오늘 내가 원하던 대답을 찾고서 돌아갈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교수님과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축의 재료, 위치, 구조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똑같이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축물이라 해도 모두가 같은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시대에 빨간 벽돌은 경제적, 기술적인 이유로 건축가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재료였다. 튼튼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 건축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것이 빨간 벽돌이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어떤 시대에 빨간 벽돌은 건축주의 취향, 과거에 대한 향수, 유행 때문에 선택받은 재료다. 구분하는 법은 간단하다. 빨간 벽돌이 이 집의 구조에 꼭 필요하게 사용된 것인지를 보면 된다. 선택받은 재료라면 빨간 벽돌은 구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치 타일처럼 바깥을 장식하기 위해 벽돌을 붙였을 것이다.

 

건축은 다소 생소하지만, 미술관은 비교적 익숙한 나에게, 이날의 경험은 거대한 미술관 체험처럼 느껴졌다. 건축은 더 실용성을 중시하는 분야이지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미술관에서 그림을 앞에 두고 도슨트가 하는 말들과 비슷했다. 그림을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화가의 이야기, 작품 속 주인공의 이야기처럼 수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과 같다. 건축물 역시 뜯어볼수록 남아있는 모습만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즈음 어떤 관람객이 질문을 했다. 교수님께 이 건축물이 유지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이었다. 서울시의 철거계획 앞에서 이 건축물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묻는 것이었다.

  

작은 종이에 남겨진 화자의 습작, 스케치마저도 빳빳하게 펴져서 액자에 넣어 전시되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당연히 남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교수님은 이 건축물의 가치가 기존에 추진되던 사업을 뒤엎을 만큼의 가치인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가치는 여러 가지에서 올 수 있었다. 건축물 자체의 완성도가 높거나, 혹은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아도 후대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중요한 요소를 가졌다면 가치 있을 수 있다. 혹은 이곳에 살았던 사람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더라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는 건축의 영역에서 왜 상대적인 가치가 더 중요해지는지 생각했다. 그건 아마도 땅 위에서 지어지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림이 그려지고 글이 쓰이는 종이나 캔버스 같은 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지만, 건축이 세워지는 땅은 우리가 모두 나눠 가져야 하는 것이니까. 땅은 한정된 곳이고, 누군가가 사는데 필요한 것이니 저울처럼 가치의 경중을 나누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다른 예술과는 또 비슷하며 다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건축 축제는 누구를 위한 축제였을까. 건축을 사랑하는 건축 애호가나 건축가,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장일까, 아니면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와서 무언가를 생각하며 머물 수 있는 곳일까?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모두에게 다른 의미로 읽히듯이 축제도 즐기는 사람 마음일지 모른다. 다만 원래 이 축제의 쓰임은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했다. 내가 오늘 이곳에서 머물면서 얻은 것들은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것이었는지도.

 

축제는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축제는, 생소한 분야를 접하는 사람에게도 문턱을 낮추어야 하고, 누구나 벌컥벌컥 열고 들어올 수 있는 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 분야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분야의 종사자들에게는 기회가 늘어나는 셈이 될 테니까 그렇다. 책 축제에선 책 읽는 사람이 늘어나고, 영화 축제에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게 좋은 거로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의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들을 어렵지 않게 던져줄 수 있었던 축제에 대해선 좋은 평가를 하고 싶다. 다들 생소한 곳에 뚝 떨어져 보는 경험을 축제에서 해본다면 좋겠다. 우연히 재밌는 생각과 관심거리를 얻을 수도 있다. 나는 아마 다음부턴 빨간 벽돌 건물을 쉽게 지나치지 못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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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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