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실로 진실을 찾아가는: 라스트 듀얼 [도서]

질투와 욕망이 폭력으로 발현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 속 피해자의 삶
글 입력 2021.11.11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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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기사’, ‘듀얼’. 책 <라스트 듀얼>을 설명하는 세가지 키워드에 완전히 매료되어 책장을 넘겼다. 개인적으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콘텐츠를 좋아하는 지라, 몰입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1. 라스트 듀얼?


 

본 책은 우리에게 낯선 중세시대 기사 간의 결투를 쉽고 간결한 문체로 전달한다. 그리고 질투, 욕망, 배신의 감정이 ‘폭력’으로 발현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폭력의 발현은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최후의 결투’로 나타나고 있다. 이때 최후의 결투는 중세시대 ‘듀얼’의 종지부를 찍은 카루주-르그리 사건을 말한다.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책의 주요 인물은 크게 셋이다. 카루주, 르그리, 그리고 마르그리트가 그 주인공이다. 카루주와 르그리는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 사이였다. 그러나 르그리가 주군인 피에르 백작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홀로 승승장구하자 카루주는 르그리를 시기했고, 두 사람의 우정에는 균열이 생긴다.

 

카루주와 르그리의 대립이 이어지던 중 카루주가 집을 비우는 일이 생겼고, 르그리는 카루주의 아내인 마르그리트를 강간한다. 당시 귀족들과 왕실의 신임을 받던 르그리의 죄를 입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카루주는 르그리에 ‘결투 재판’을 신청했고 이것이 책의 제목인 ‘라스트듀얼’이다.

 

결투에서 카루주가 승리한다면 르그리가, 르그리가 승리한다면 카루주와 마르그리트가 죽게 된다. 본 책은 누군가는 무조건 죽어야만 하는 중세의 마지막 결투의 장으로 독자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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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설과 사료, 그 사이 어딘가…


  

책 <라스트 듀얼>의 저자 에릭 제거는 UCLA 의 교수이자 문학 비평가로 중세 문학 분야의 연구를 다수 진행한 바 있다. 저자의 말을 읽으면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할 때 어느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었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날짜,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한 발언과 행동, 그들이 법정에서 한 종종 모순되는 주장들, 서로에게 지불하거나 수령한 금액, 심지어는 날씨까지도 실존하는 사료에서 인용했다. 사료들의 기록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는 가장 개연성이 높아 보이는 기술을 채택했다. 역사적 기록이 결락된 대목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틈새를 메웠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언제나 과거에서 들려오는 생생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저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철저히 사료를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사료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저자는 역사적 자료를 통해 메워지지 않는 부분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저자는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픽션을 가미하지 않았다. 사실이 빈 부분들은 당시 일어날 수 있었던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한 가능성으로 채워졌다. 다음과 같은 식이다.

 

“토지 매입 시에 장 드 카루주는 그것들이 저당 잡힌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법적 소유권은 백작에게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대로 매입을 강행했던 것일까? 카루주의 까탈스러운 성격을 감안하면 후자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보인다.” - 62p

 

“따라서 르그리에게 입을 맞추라는 카루주의 명령에 마르그리트는 퍼뜩 놀랐을지도 모른다. 설령 이 화해가 사전에 조정되었다는 사실을 마르그리트가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해도, 자크 르그리에게 입을 맞추라는 남편의 요구는 좀 지나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 69p

 

“이 시점에서 장 드 카루주는 끔찍한 범죄의 대상이 된 아내의 원수를 갚고, 자크 르그리에 대한 고발이 정당함을 증명하고, 자신과 아내의 명예를 회복하려면 목숨을 건 결투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각오를 다졌던 것 같다. 신의 은총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므로 결투에서는 절대 질 리가 없다고 믿었을 수도 있다.” - 135p

 

이는 책 전체의 극히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남은 사료만으로 정확히 알 수 없는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의 이유는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수도 있다” 식으로 서술된다. 누군가는 확실하게 표현되지 않는 부분들에 불만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알 수 없는 사실은 알 수 없는대로 남겨둔 것이 오히려 이 책을 한 층 매력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책 <라스트 듀얼>이 소설과 사료의 경계선 위에 놓여있다고 본 이유이다.

 

 

 

3. 사실과 진실


 

이 책의 메인테마는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다. 르그리와 카루주, 그리고 마르그리트의 결투는 결국 그 날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진행되었다.

 

물론 누군가는 결투를 통해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고자 할 수도, 누군가는 상대방의 자존심을 짓밟고자 할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진실을 ‘입증’해내는 것이다.

 

다만 이때 진실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진실을 찾기 위해 사건을 파헤치기 보다는 사건을 꽁꽁 묶어두고 대결을 한다. 단순히 힘의 우위로 승자가 판가름나며 그와 함께 진실도 ‘결정’되고만다. 책 자체는 ‘사실’ 하나하나에 집중해 어느 것 하나 함부로 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책의 방식과는 대비되게 중세시대 카루주와 르그리는 모두가 아는 진실을 덮어둔 채 목숨을 걸고 싸웠다.

 

미련해보이는 결투에 두 기사는 목숨을 걸었다. 상대방을 이기고 명예를 지키고 싶다는 당시 중세 기사의 정신과, 실제 사건의 피해자인 여성이 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 결과일테다. 책 <라스트 듀얼>은 질투와 욕망이 폭력으로 발현되는 과정과, 그 과정 속 피해자를 직면하게 한다.

 

*


다소 낯선 중세시대의 이야기지만, 간결하고도 자세한 묘사로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 또한 당시의 시대상 뿐 아니라 카루주-르그리 사건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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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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