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래, 그럴 수 있지. [사람]

글 입력 2021.11.1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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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는 거다. 언제부터였더라, 아마 우리가 마주한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겹겹이 쌓이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이 말을 계속 내뱉었던 게. 이 문장을 되새김하기까지 나름대로 다사다난했다. 하루가 멀다고 생각의 변화는 일어났고, 옳다고 믿었던 게 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우리’의 오랜 관계에서 모순을 발견했다. 처음엔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심보로 모순점을 무작위로 공격했다면, 이제는 느리더라도 조금씩 지워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말하는 ‘우리’는 너와 나로 둘이 될 수도 있고, 너희와 나로 여럿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인물이 아닌 나의 인간관계를 완성하는 모든 사람, 지나간 시간 속에 나를 스쳐 지나갔던 사람 모두를 가리킨다.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이자, 가끔은 정말 미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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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란 매우 견고해 보일지라도 모래성처럼 한순간 부서지고, 행복할 것만 같다가도 예고 없이 불행이 찾아온다. 나 역시 이러한 순환을 계속 겪고 있다. 언젠가 좋은 부분만 보였던 사람이 한없이 미워 보였던 적이 있다. 자신의 의견만 주장하며 밀어붙이는 사람과 그에 대응해 얼른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사람, 나는 주로 후자였고 똑같이 화를 내 불씨를 크게 만들기보다는 소화기를 먼저 꺼내는 역할을 도맡았다. 얼른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다는 말에는 상대와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말해봤자 바뀌지 않을 거란 믿음, 굳이 아득바득 이기고 싶을 만큼의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한데 모인 의미였다.

 

언젠가부터 네 말이 옳다며 져주는 내 모습을 당연시하는 상대의 태도에 문득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다, 서운한 마음이 더 컸다. 우리 관계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은데, 우린 정말 가까운 사인데, 왜 나만 맞춰야 하는 건가에 대한 서운함이 너무 컸다. 소위 말해 ‘내 사람’이라는 틀 안에 속한 이들이기 때문에 더욱 배려했던 거였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결국, 배려로 건넨 마음이 악영향을 만든 걸 목격하고 나서야 행동을 고쳐먹었다. 그때의 나는 조금 유치하지만 더는 손해 보기 싫다는 마음에 그저 똑같이 대응했다. 우린 누구 하나 물러나지 않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나갔고, 결국 제삼자의 개입이 이루어져야만 줄은 느슨해질 수 있었다. 나날이 지날수록 우린 아주 가끔 팽팽한 줄다리기를 재개했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도대체 우리가 왜 이런 사소한 문제로 감정싸움을 해야만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각의 꼬리는 꼬리를 물었고, 문제의 근원을 찾기 위해 끝없이 파고들었다. 열심히 취한 행동에 비해 정답은 단순했다. 서로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 대부분 원인은 여기 있었다. 부끄럽지만 하나 고백하자면 감정만 내세우는 상대에게 ‘그래, 내가 그냥 져준다’라는 마음으로 상황을 덮을 때면 마치 내가 더 어른인 양, 일찍 철들은 사람인 양 착각에 빠지곤 했다. 혼자 결과를 단정 짓고 빨리 상황을 모면하는 게 능사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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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관계를 잘 유지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좋은 영향만 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꾸준히 고찰했다. 그들이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었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공은 ‘존중과 인정’이었다. 그들의 대화법은 주로 이랬다. 어딘가로 놀러 가서 단체 활동을 제시하는 경우 누군가 자신은 빠지겠다고 말하면 여럿이 무작정 몰아붙이며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그래, 그럼 넌 쉬고 있어. 우리끼리 하고 얼른 올게’라고 대답한다. 누군가 독특한 취향의 옷을 입는다면 왜 입었냐고 타박하기보다 ‘그게 왜? 입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라고 반문한다. 즉, 한 개인의 의견과 취향을 온전히 존중해주는 것이다.

 

서로의 존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상대와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들이 서로를 존중할 수 있었던 이유도 각자의 ‘다름’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매일 보는 가족이랑도 정말 다른데, 하물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고 어찌 같을 수 있을까. 그러니 다른 게 정상이다. 우연히 같다면 마주 보고 손뼉 치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역시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 된다.

 

 

 

그럴 수 있지


 

상대와 대화를 하다 격앙되는 순간이 오면 우린 ‘야,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넌 왜 그래? 그것도 못 해줘?’와 비슷한 맥락의 말을 자주 발설한다. ‘만약 나라면~’, ‘나였으면~’의 전제는 당연하지만, 그 기준에 미치지 않는 너는 당연하지 않은, 이러한 대화법이 주는 이질감을 이젠 선명히 느낀다. 이는 말 그대로 ‘나’는 이러한 행동을 했을 거라는 예측 따위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나라면 이렇게 했다’는 명제에 등장하지도 않는 ‘너’를 끌고 와서 머리채를 잡는 우스운 꼴이지 않나. 어디까지나 철저히 ‘나’에게 맞춰진 문장일 뿐인데.

 

얼마 전부터 나는 갈등 상황에 ‘그래, 그럴 수 있지’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럴 수 있다는 말이 나오려면 적어도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는 단계를 거쳐야만 했고, 하나씩 계단을 밟다 보면 불같던 마음이 조금씩 소화됨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갈등 상황이 발생했던 데에는 내 지분도 적지 않았을 거니까. 아, 그렇다고 모든 상황에 적용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다름’의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거지, 개념의 범주를 벗어나거나 편파적인 행동에서 무차별적으로 사용하진 않는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문제에 해당하는 상황에선 오히려 ‘그럴 수 있지’는 독으로 작용하고 말 것이다. 그저 같은 주제를 다르게 바라보는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개인을 존중해주길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그럴 수 있지’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 나와 내 사람들이 가졌으면 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나부터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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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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