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인간적인 로봇: 바이센테니얼 맨 [영화]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과 기초 심리학
글 입력 2021.11.0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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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은 2005년을 배경으로 한 1999년의 영화이다. 원작 소설은 아이작 아시모프가 1976년에 발표한 과학소설이다.

 

'Bicentennial'이란 '200년간 계속되는, 200년마다'로 정의된다. 주인공이자 로봇인 '앤드류'가 살아온 200년을 기록한 작품이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제목이다. 2021년의 현실에서는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 버추얼 휴먼도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연예인처럼 SNS를 운영하거나, 여러 브랜드에서 광고모델로 활약하는 등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70년대 소설이자 90년대 영화인 '바이센테니얼 맨'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철저히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어떻게 인간과 어울리며, 가장 인간다운 존재로 도약할 수 있었을까? 버추얼 휴먼들의 활약상을 보면, 애당초 '인간답다'라는 정의조차 모호해진 것 같다. 인간만이 가지는 순수한 감정을 언젠가 버추얼 휴먼도 가지게 될 미래를 기대하며, 가장 인간다운 로봇인 '바이센테니얼 맨'을 소개한다.


2005년 뉴저지. 리처드네 가족은 멋진 로봇을 구매한다. 그는 청소부터 정원 손질, 요리까지 못 하는 게 없는 만능 로봇 'NDR-114'였다. NDR-114는 '앤드류'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되며, 점점 리처드네 가족의 일원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실수로 마요네즈 한 방울이 앤드류의 복잡한 회로 위에 떨어지면서, 그의 로봇 신경계에 엄청난 오류가 나타났다. 이 오류를 시작으로 앤드류는 로봇이 아닌 인간을 향한 첫걸음을 딛는다.




1. 인간이란 무엇인가?


 

‘바이센테니얼 맨’은 기계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고싶은 한 존재의 일생을 담은 공상과학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 ‘앤드류’는 로봇이지만 인간 못지않게 다양한 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장면을 제공한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의 존재 조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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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는 법적으로 인간임을 인정받기 위해 법정으로 출석한다. 판사는 앤드류에게 당신은 인간의 유전자가 없는데 어느 부분에서 인간이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그러자 앤드류는 마음이라고 답했다. 그의 대답처럼 앤드류는 로봇이지만 인간으로서 가지는 심리학적 특성과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2. 인지적 접근: 앤드류, 인간으로서 첫 걸음에 도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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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초반부에서 앤드류는 인간보다는 로봇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기 때문에 컴퓨터와 같은 인지적 접근법인 정보처리 모델로서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컴퓨터의 정보처리처럼 그는 어떠한 경험에서 얻은 자극과 기억으로 추론과 해석을 하고 그에 따른 반응을 도출한다. 잠재적인 정보를 예측하고 그 정보가 상징하는 것을 해석해 스스로 결정을 내려 행동으로 실행했다. 예를 들어, 둘째 아가씨가 가장 아끼는 유리 장난감을 앤드류가 실수로 망가뜨렸을 때 둘째 아가씨가 크게 상실하고 앤드류에게 화를 냈다.

  

이때 둘째 아가씨가 보였던 표정이나 목소리 톤, 언어의 내용을 종합하여 앤드류에게 하나의 자극으로 다가갔고, 앤드류는 아가씨의 행동을 '장난감이 망가져 화가 나고 상실감을 느꼈다'라고 해석하여 '아가씨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가씨가 화를 풀어줄 것이다'라고 스스로 예측하고 결정했다. 이후 목공예를 배워 둘째 아가씨에게 말 인형을 새로 만들어 선물함으로써 결정을 실제 행동으로써 옮겼다.

 

이처럼 자신의 상황과 자극을 분석하고, 저장하고, 습득함으로써 예측, 결론, 실행까지 다다르는 일련의 과정은 심리학의 인지적 접근 중에서도 정보처리 모델과 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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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중후반부로 들면서 앤드류는 점점 인간에 가까운 정체성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인지적 접근으로서 심리학적 특성은 드러나게 된다. 앤드류뿐만 아니라 실제 인간인 앤드류의 주변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이는 곧 인지적 접근과 정보처리모델이 로봇이나 컴퓨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통용되는 특성임을 나타낸다.


나이에 들어서도 이 인지적 능력은 다르게 발달하며 이 역시 해당 영화에서 드러나는 특성이다. 예를 들어, 유아 시절 둘째 아가씨의 인지 사고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주관적이었다. 하지만 점차 아동기로 성장해나가면서, 사물이나 사람 사이에서 가지는 관계성을 고려하는 인지 발달 단계까지 거치게 된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어린아이가 그렇듯이 떼를 쓰고 비논리적인 행동과 언어를 나타냈지만, 점차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고를 나타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인이 되면서 친구나 애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앤드류처럼 친밀감이 남다른 존재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인지 발달 단계를 나타냈다.

 

 

 

3. 정신분석적 접근: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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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는 삶의 욕구(Eros)와 죽음의 욕구(Thanatos)를 느끼게 된다. 첫 번째로 삶의 욕구, 에로스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프로이트가 제시한 에로스는 생명을 발전, 유지하고 사랑을 하게 되는 삶의 본능을 일컫는다. 그리고 이 본능으로 인하여 인간은 자신을 사랑하고 생명을 지속하며 종족을 보존시키고자 한다.

 

앤드류는 자기보존의 본능과 성적 욕구가 합하여 사랑하는 여자 ‘포샤’와 성적 관계를 맺고 싶어 하거나 앞으로 그녀와 함께 생존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앤드류는 포샤와 다른 남자와의 약혼식을 훔쳐보며 앞으로 그녀와 함께 인생을 함께 살아가거나, 성적 관계성을 지속할 수 없다는 좌절감과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사랑과 삶을 지키고자 하는 삶의 욕구 에로스가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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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죽음의 욕구(Thanatos)이다. 계속하여 삶과 생명을 유지하고 싶어 했던 것과 반면, 앤드류는 죽음에 대한 욕구도 느꼈다. 타나토스란 생물체가 무생물체로서 환원하고자 하는 죽음의 본능이다. 프로이트는 이 타나토스가 자신을 처벌하고 파괴하며, 타인의 환경까지 공격하는 위험하고 모험적인 본능이라고 설명했지만, '바이센테니얼 맨'의 앤드류는 이 본능이 매우 차분하고 부드럽게 묘사되었다.

 

앤드류는 영생의 삶을 지속할 수 있음에도 결국 작품 결말에서 부인 포샤와 함께 죽음을 택했다. 사실상 로봇이라는 '무생물체'로서 제조되었던 앤드류가 일련의 사회화를 거쳐 '인간(생물체)'의 정체성을 갖게 되고, 거기서 그치지 않아 다시 '무생물체'로서 환원하고자 했던 그의 행적은 프로이트가 제시했던 죽음의 욕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4. 인본주의적 관점: 앤드류, 당신은 누구인가? 


 

앞서 언급했던 관점들은 인간을 자극, 환경, 경험, 기억 등에 의존하며 이에 따라 행동과 결과가 도출된다는 수동적 존재로 인식했다. 하지만 이 인본주의적 관점에서는 인간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인식하며 인간에게 자아실현의 욕구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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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는 자유 의지와 자기 실현을 크게 고민했으며,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고뇌했다. 이러한 고뇌 자체가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앤드류가 단순히 명령체계에 따르는 로봇이 아니라 능동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뜻했다. 이는 작품에서도 큰 전환점이기도 하다. 특히 자유의 욕구와 자아실현 욕구는 앤드류가 타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의지를 가진 독립적인 주체로서 행동하는 큰 원동력이었다. 자아를 실현하고자하는 의지와 이를 나타내는 잠재력 때문에 앤드류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강하게 했고, 인간의 삶을 사는데 큰 계기가 되었다.

 

앤드류는 주인을 떠나 자신만의 집을 짓고, 많은 곳을 여행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죽음을 선택하는 등 일련의 모든 과정을 자신의 손으로 선택했다. 이처럼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앤드류의 모습은 인본주의적 심리학에서 보았을 때 그가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는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죽음이 있기에 시간은 유한하고,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삶은 소중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앤드류가 만약 마지막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인간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인간다움’은 어떤 것인가?

 

여러 심리학적 관점으로 해당 작품을 공부해도, 이 정답은 오롯이 본인만의 몫이다. 그리고 그 어떤 답을 내어도 틀린 답이란 없다. 앤드류가 200년의 삶 끝에 본인만의 정답을 만들어냈듯이, 당신도 당신만의 정답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몇 년, 몇 십 년, 몇 백 년이 걸릴지라도!

 

 

[송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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