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로우, 흰쌀밥 위에 담뱃재 [영화]

신체적 역겨움이 아닌 정신적 불쾌감을 선사하는 영화
글 입력 2021.11.0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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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한국인은 성경을 찢는 것보다 흰쌀밥에 담배를 비벼 끄는 것에 더 모욕감을 느낄 거라고 한다. 먹을 수 없게 된 쌀밥에 ‘아까움’보다 ‘모욕감’을 먼저 느낀다는 건 그 민족의 상징성이 잘 드러나는 예시 중 하나다.

 

거친 곡식으로 겨우 연명하던 농민들의 꿈이었던 따끈따끈한 쌀밥 한 그릇, 백의민족의 굳건함을 떠올리는 하이얀 낱알들, 인사 대신 끼니를 약속하는 온정의 나눔. 원 없이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가난함과 고단함이 쌓여 만들어진 이 쌀밥 한 그릇은 이제 끼니를 때우는 것 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 그러니 그 ‘하얀 것’에 먹을 수 없고, 건강에 해롭고, 까맣고 더러운 담뱃불을 짓이기는 것은 한민족이자 사람으로서의 존재를 유린한다 느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영화 <로우>는 쌀밥과도 같은 고결한 존재 인간을 담배처럼 지저분한 동물과 같은 선상에 놓음으로써 불쾌와 자극을 유도한다. 이 영화를 잔인하고 징그럽다고 느끼는 감정은 사실 나보다 ‘열등한 존재’와 동일화시키는 것에 대한 불쾌감이자 침해당한 우월의식에서 나온 불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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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강간당한 여자와 원숭이가 같다는 거야? 인간과 동물을 같은 선상에 두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초반 장면이다. 저스틴은 원숭이에게도 강간당했을 때의 고통과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지각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만 여자 동기들의 반응은 싸늘하고 공격적이다. 그녀들에게 이 발언은 ‘원숭이도 인간만큼 소중한 생명이다’가 아니라 ‘강간당한 여자는 원숭이처럼 학대당할 만한 짐승이다’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는 곧 변화를 맞이하기 전 저스틴이 겪어야 했던 세상이다. 저스틴은 동물권 존중과 생명 윤리를 바탕으로 하는 채식주의자였다(물론 그것이 부모의 영향 때문이었을지라도). 그런 '비건'에게 대학생활은 인간이 짐승화 되어버린 곳이다.

 

학교 전통이란 이유로 강요하는 폭력적인 문화는 야만스럽고 퇴화적이다. 불을 사용하지 않은 날고기를 먹고, 맘대로 개인재산을 내던져 버리며, 무릎으로 바닥을 기게 시키고,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게 하고, 신체 부위를 마구 보여주고, 성적 욕구만을 도취하려 한다. 수치심을 모르고 감각에만 충실한 행위는 마치 동물의 특성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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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렇게 ‘짐승 같은 인간들’이 오히려 짐승의 생명을 탈취하는 기이한 세상이다. 소의 항문에 팔뚝을 들이밀고 말을 기절 시켜 거꾸로 매달아 둔다. 동물의 건강을 위해 '수의학과'가 해야할 일이라곤 하지만 다소 거부감이 드는 면이 없지 않다. 그들이 이처럼 동물을 ‘마구’ 다룰 수 있는 건 역시 '동물은 인간처럼 권리와 감정을 가지지 않은 짐승'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함부로 다뤄지는 동물들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신체적 역겨움과 불쌍함 정도이다. 피와 사체 등 잔인한 것을 보면 느끼는 지극히 생리적인 반응. 그렇다면 동물이 아니라 동물이 ‘된’ 인간을 볼 땐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걸까?


안타깝게도 저스틴은 타고난 인육주의자다. 그녀는 자신이 인간 신체에 대해 허기와 식욕을 느끼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녀의 첫 인육 시식 장면은 관객에게 충격과 자극을 선사한다.

 

설마 저걸 먹는 건 아니겠지..? 세상에 인육을 먹다니. 그것도 언니의 손가락을 먹다니. 아무리 까칠한 언니였다고 해도 동생을 꽤 생각해주는 것 같던데, 그런 언니의 손가락을 먹다니. 혹시 한낱 복수심 때문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이기적이고 잔인하잖아! 언니는 이제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할 텐데! 제발 벌어지지 않길 바란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다소 흉측하게 생긴 ‘핏덩이’여서가 아니다. 감정과 자아를 갖고 저스틴과 유대감을 가졌던 그녀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온갖 사회적 합의, 인권 존중, 생명 권리, 감정 교류를 한 번에 파괴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 후 변해버린 저스틴의 행동은 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양이처럼 털 뭉치를 토하는 것은 이미 집사들 사이에선 익숙한 풍경이고, 사료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강아지들이 으레 하는 귀여운 멍청함이다. 풀숲에 숨어 본능적으로 사냥감을 포착하는 것과 흘러내리는 육즙에 참지 못하고 바로 혀를 갖다 대는 것조차 야생이었다면 흔히 볼 수 있을 풍경들이다. 하지만 인간이라 자칭하는 존재들은 그것이 인간으로서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라 말한다. 술에 취해 개처럼 난동 피운 저스틴을 꺼리는 건 그녀가 ‘인간인데도’ ‘정말 개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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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 <로우>가 건드린 것은 새빨간 피에서 오는 신체적 역겨움이 아니라 정신적 불쾌함이다. 지성과 이성을 갖춘 고결한 인간이 멍청하고 본능적인 짐승으로 퇴화하는 과정은 낯설고 신기하기보다 묘하게 자존심을 건드린다. 전통과 문화라는 명목으로 행했던 본인들의 야만스러움은 아무 문제 삼지 않으며, 기어이 '진짜 피'를 흘려야만 윤리에 어긋난다며 유세떠는 인간들의 위선을 비난하며 말이다.

 

그러니 영화 <로우>는 일종의 담뱃재일지도 모른다. 각종 좋은 것들을 갖다 붙이며 우상시했던 ‘인간 존재’라는 흰 쌀밥에 공포라는 장르를 덧씌운 새빨간 담뱃재 말이다.

 

 

[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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