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기한 이유로 인해 복무날짜가 결정된 작년 말부터 상당히 까다롭게 됐다. 나이도 나이고 이제 슬슬 주변에 전역한 친구들도 많아지는 만큼 만나는 사람마다 군대는 어떻게 되었느냐는 말부터 꺼낸다. 미안하지만 나도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공익이라는 사실과, 11월 12일에 소집된다는 것이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의 전부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항상 소집 일주일 전까지 왜 내가 훈련소 입소 날짜도, 근무지도, 업무 내용도 모르는지 해명하는 꽤 긴 시간이 뒤따른다. 당신들은 나한테 한 번씩만 물어본다 쳐도 나는 백 명을 만나면 백 번을 설명해야 한다. 너무 고되다. 물론 친구가 백 명이나 되지는 않지만, 말하자면 그렇다.
예전에 물어봐 놓고 또 묻는 몹쓸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처음 설명할 때부터 집중하지 않고 딴청을 피우기 때문에(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나중 일이 뻔히 보인다. '아, 나는 이 못된 놈을 앉혀 두고 한 달 뒤에 똑같은 얘기를 되풀이하겠구나.'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설명에도 힘이 빠질 수 밖에 없어서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다. 이것이 몇 번 반복되면 그러려니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회전초밥집에서 절대 집지 않는 계란초밥이 몇 번이고 코앞을 지나갈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공익 이슈를 떠나서 세상사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예의 차린답시고 관심도 없는 질문은 해주지 말기 바란다. 대답이 시작되는 순간 물은 자와 답하는 자 모두가 불행해지는 승자 없는 게임일 뿐이다.
정말 슬픈 경우는 기억해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의 배반이다. 어제 만난 내가 꽤 좋아하는 형은 내가 처음으로 선복무의 개념을 물어본 사람이자 근무지 신청과 관련해 꽤 많이 질문한 상대였는데도 밥을 먹다가 대뜸 하는 소리가 '너 선복무는 아니지?'였다. 참으로 쓰라린 경험이다. 반찬으로 나온 마늘 절임을 눈에 붙이고 싶었으나, 먼저 선복무 전형으로 복무를 마친 선배이기에 몇 년 전에 나와 똑같은 일을 겪었으리라 짐작하니 정상참작이 가능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나만의 이분법을 가지게 되었다. 내 소집날짜를 기억하는 자와 기억하지 않는 자. 전자에게 특별히 저주를 걸겠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후자에게는 무한한 축복이 내리리. 한 번 접수하고 난 뒤 까먹지 않고 '며칠 남았네~' 라고 말해주는, 그런 황폐한 세상 속 한 줄기 빛 같은 사람들 말이다. 간혹 선복무라는 전형의 개념마저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 하는 자들도 있는데, 발을 씻겨주고 싶다.
아마도 나는 학교로 배치될 것이고, 특수학급에 배정될 가능성이 크다. 2년 동안 다른 인생을 살아본다 생각하면 뻔한 말이지만 사는데 도움되는 경험이 되겠지. 에디터 활동을 마무리하고 컬쳐리스트활동을 시작하게 되는 때에 복무를 시작하게 되니 묘하게도 타이밍이 맞는다. 복무 시작 후 경험하는 일들에 관해서는 컬쳐리스트로 넘어가서 쓸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