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어쩌면 활짝 피기 전

특별할지도 모르는
글 입력 2021.11.04 01:0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내 안에 가시만 남아있는 것 같은 날이 이어졌다. 바람이라도 불면 흔들리는 가시에 긁혀서 상처가 나기 일쑤였다. 바람은 쉴 틈 없이 불어댔고 나는 매일이 아픈 사람이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생긴 습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일상에 지칠 때면 예상 밖의 이벤트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점심시간에 한숨 돌린다든가 월급이 통장에 꽂히는 날은 너무 뻔해서 이벤트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최대한 외부의 자극을 끌어모으는데 이마저도 에너지가 없으면 하지 못한다.

 

그래도 위로가 절실한 아픈 사람이 되어버린 탓에 지난 10월에는 애를 좀 써봤다.

 

 

131.jpg


 

취향을 많이 타는 극이라고 들었다. 울거나 자거나 둘 중 하나라니 평이 좀 극단적이었다. 내가 우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는데, 펑펑 우는 사람이 되어서 공연장을 나오게 되었다. MD 부스 앞을 서성이다가 배지만 하나 사서 돌아왔다가 OST CD까지 구매하게 되었다.



활짝 피기 전부터 예감했다 / 이 꽃은 특별하다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마저 특별했다 / 하나뿐인 꽃

 

 

공연장의 분위기가 생각나서 그런 건지, 이 글의 마지막에 적힐 나의 이름 때문인지 저 노래 가사가 너무 와닿아서 출근길에 위로받으려고 들었다가 운 적이 있다. 나는 아직 만개하지 않았지만, 활짝 피기 전까지의 과정마저 특별한 하나뿐인 꽃일 수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해줬다.


어른이 되어서 만난 어린 왕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했다. 내가 너무 재미도 없고 멋도 없는 뻔한 어른이 되었다는 게 느껴졌다. 사람이 살다 보면 다 그렇게 된다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동심을 한 조각은 더 마음 한쪽에 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했다.

 

 

141.jpg


 

하루 6분의 독서가 스트레스를 낮춰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쁠 때면 책을 읽으면서 감정을 쓰는 일조차 감당할 수 없어서 미뤄두는데 그때는 힘들고 지쳐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은 때였다.

 

친구와 함께 외출했다가 중고서점에 들러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찾아봤다. 찾는 책은 없고 아쉬운 대로 그 작가가 글이 담긴 모음집을 샀다. 집에 돌아와서 작가의 글이 시작되는 73쪽부터 펼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처음 이 작가를 알게 되었을 때 ‘무심한 듯 시크한’이란 말이 떠올랐는데 몇 번 읽고 나니 이런 멋없는 말로 설명하기엔 문체가 멋있다. 미사여구가 없고 꾸미는 말이 들어가지 않은 문장에서 무심함이나 무덤덤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하기에는 은은한 멋이 느껴진다. 마치 내 속마음 같은데 내 속마음은 그렇게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다. 알맹이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나도 명확히 하지 못하는 내 마음의 말을 쉽게 던져낸 것 같은 문장에서 느껴지는 그 멋있음.

 

첫눈에 반하다시피 했는데 여전히 좋고 여전히 마냥 멋있기만 하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번엔 정말로 망했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보니 그동안엔 조금씩만 망해왔던 거구나. 많은 도움의 손길 속에서도 가끔은 세상에 혼자인 것만 같았고, 그래서 너무 무서웠다.


- 이주란, 혼자서는 무섭지만 중 "만약 내 삶에서", 81쪽

 


사춘기 시절에 적지 않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그때 들었던 생각 중 하나가 왜 이야기 속 인물들은 모두 특별한 사람일까? 였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런 이야기가 있으면 재미없어서 보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납득했다.

 

하지만 이주란 작가는 달랐다. 일상적이고 사소하고 잔잔한데 자꾸 눈길이 가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세심한 시선으로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지나쳐버릴 찰나를 잡아 이야기한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 작은 순간들. 너무나도 내 것 같아서 위로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01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