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혐오와 연민,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글 입력 2021.11.0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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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처음 접한 건 언어학을 공부하러 떠났던 미국 유학 시절, 연극을 전공하며 희곡 분석 및 토론 수업을 수강했을 때였다. 제목부터 강렬했던지라 학기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 때 자료를 받아들었을 때부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작품이었다. 단순히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제목과는 다르게, 마주하게 된 작품의 민낯은 충격적이었다. 강렬한 첫인상을 주는 작품들이 종종 그렇듯 파멸로 얼룩진 결말을 처음부터 예상하긴 했으나, 그건 단순한 파국이 아니었다.


혐오스러움과 안쓰러움, 혐오와 연민. 어쩌면 반대되는, 적어도 서로 아주 먼 거리에 놓여 있는 두 가지의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그의 대부분은 극의 중심이 되는 '블랑쉬'라는 캐릭터에서 기인했다. 나름 명망 있는 집안의 귀한 딸로 태어났으나, 끝도 없는 절망에 결국 미쳐버리고 마는 블랑쉬의 몰락에 가슴이 아프면서도, 그의 비극을 어느 정도 스스로 초래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거짓과 허식으로 위장하려고만 하는 그 뻔뻔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확실한 건 어떤 쪽으로 생각해도 전부 끔찍하다는 거였다.


그 희곡 수업 이래로, 텍스트로 이루어진 이 극이 무대에 오른다면 나는 그것을 감히 마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에게 그럴 기회가 주어졌다. 잠시 고민하다, 객석에 앉아보기로 결정을 했다. 이번에 이 연극을 보러 간다고 회사 동료에게 말했을 때, 이 극을 알고 있는 그 동료와의 대화에서 나온 키워드는 '혐오스러움과 안쓰러움'이었다. 이 연극을 보고 나서 사람들이 느끼는 나름의 공통적인 감상이었던 것일까. 약간의 용기를 앉고 객석에 들어섰다.


무대는 이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가 떠오르게 만드는 2층짜리 세트(유니스의 집 세트)와, 영국의 내셔널 시어터 라이브로 촬영 후 송출되었던 Young Vic 버전의 같은 극을 떠올리게 만드는 1층짜리 세트(스텔라와 스탠리의 집 세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기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테리어의 방 한 칸이 올라 있었다. 묘하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무대의 모습에 살짝 안심을 했으나, 찰나였다.

 


욕망.jpeg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 위에 내가 알던 희곡이 배우들의 말과 몸짓을 통해 생생히 살아나기 시작하자 일전의 끔찍함이 또다시 느껴졌다. 텍스트로만 읽으며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이미지와는 차원이 다른 끔찍함이 뼛속 깊숙이 다가왔다. 그건 차라리 잔혹함이었다. 가혹한 행위는 무대에 일절 펼쳐지지 않는데도 (결말부에 등장하는 강간 장면도 전혀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잔혹함을 느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역시 블랑쉬였다.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 시작은 전혀 그의 잘못이 아니었던 블랑쉬, 그의 파멸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는 듯 무대 위에 등장한 첫 순간부터 잔뜩 불안한 모습이었다. 배우의 연기 노선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겠으나, 무대 위에서 마주한 살아숨쉬는 블랑쉬는 텍스트 상으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유약했고, 모든 것을 놓아버린 채 과거와 거짓에만 집착하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파멸이 시작되기 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행복한 날들을 보내던 과거에 갇혀 만사를 그에 투영하고, 현재 자신의 모습이 견딜 수 없는 만큼 현재의 현실을 거짓으로 뒤덮어 포장해버리는 그의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더 혐오스럽고, 더 안쓰러웠다.


그랬기에 항상 모든 남자들에게 '신사다움'을 가장한 허례허식적인 예의를 갖추길 강요하고, 온 집안을 하얀 레이스 장식으로 뒤덮어 포장된 자신만의 세계를 또다시 만들어내는 블랑쉬의 모습은 가슴을 저릿하게 하면서도, 한숨을 자아내게 했다. 그러던 블랑쉬가 끝내 스탠리의 폭력 앞에 쫓겨 다니며 괴로워하는 것은, 내게는 마침내 더는 피할 수 없게 된 진실과 현실 앞에 어떻게든 도망가보려는 안타까운 발버둥으로 읽혔다. 그걸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물론 극에는 블랑쉬 외에도 블랑쉬만큼이나 각자의 '욕망' 앞에 눈이 멀어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현실적이지만 그만큼 속물적이고, 자존심이 강해 자신의 결점(폴란드 출신이라는 것)을 건드리거나 자신을 깎아내리면 끝끝내 복수하고야 마는 인물인 스탠리와,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스탠리를 매번 받아들이고 별다른 저항 없이 함께 살아가는 블랑쉬의 동생 스텔라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곡에서도, 무대에서도 블랑쉬가 가장 또렷이 기억에 남는 것은 블랑쉬의 서사가 가장 구체적으로 풀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배우의 호연 덕이기도 하겠지만, 바로 그 혐오스러움과 안쓰러움 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공감할 수 없기에 혐오하는 것이고, 내가 공감하게 되었기에 연민하는 것이다. 이런 상반된 감정을 갖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캐릭터는 아마 블랑쉬 드부아일 테다.


워낙 유명한 희곡이고 연극이기에, 인터넷에 극 제목만 검색해도 수많은 분석이 순식간에 검색창을 장악한다. 그랬기에 개인적으로 가장 큰 감정을 느낀 부분, 잊지 못할 인상을 받은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블랑쉬 드부아, 그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도착한 극락 그 다음 역은 '다른 사람들의 친절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것이 또다른 연민을 낳는다. 나는 과연 나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어디에 도착하게 될까, 고민해보게 만들기도 하고 말이다.

 

 

연극_욕망이라는이름의전차_최종포스터.jpg

 

 

[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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