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을래요 [도서/문학]

아트인사이트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글 입력 2021.11.0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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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산다.”

 

“주위를 둘러보면 열심히 사는 사람밖에 없는데, 정작 자기 삶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시간에 더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피로와 불안으로 가득 찬 일상을 보내면서도 그게 당연한 거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다들 비슷하게 살고 있었으니까.”

 

- 김신희 에세이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中

 

*


얼마 전, 책장을 펼치자마자 작가가 나를 공격했다. 아, 이 에세이는 애초에 제목부터가 공격적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아무렇지 않다니, 세상에 해야 할 게 얼마나 많고 하고 싶은 일이 요구하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서 표지만 보고서는 한참 동안 펴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작가처럼 지독한 일과 중독자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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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엑, 바쁘네...”


부모님,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이 된 친한 언니, 동기들, 남자친구…. 내 일정 메모 애플리케이션을 열어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보인 반응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 엄청나게 유니크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냥 대학생이고, 아르바이트 외에는 임금 받을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바쁜 것을 추구해왔던 건, 내 미래를 위해서라면 왠지 그래야 할 것 같고 그러지 않으면 심할 때는 죄를 짓는 것 같아서. 하지만 은연중에 알고 있었던 일과 중독자의 최후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질 만큼 거대하게 밀려오는 회의감에 휩쓸리는 것뿐이었다. “나는 뭐하러 그런 안타까움 섞인 탄식을 사면서까지 열심히 살고 있었을까.” 그렇게 너무 지쳐 이런 의문을 벌써 여섯 번째 가졌을 때쯤, 이 책은 호기롭게 내 눈에 다시 들어왔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사실 내가 일과 중독자라는 것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내 몸과 마음이 제일 먼저 알고 있었다. 과제 하나도 대충해서 낼 줄을 몰랐던 내 성향은 줄곧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그들 중 누군가가 게임이나 술·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보다도 괴로운 점일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 에세이의 제목과 도입부가 내게는 전치 5개월 급 ‘팩트폭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의 공격성과는 달리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는 읽을수록 나 같은 일과 중독자에게 어떤 신경안정제의 일종이나 다름없었다. 혀에는 뜨겁지만 속이 따듯해지는 차, 목구멍은 따갑지만 속 시원한 사이다, 그 사이에서 와리가리 하며 작가는 대주제를 네 개의 자기 주문으로 나눠 소소하고도 다양한 에피소드와 금쪽같은 혼잣말을 이어나간다.

 

 

#1 나를 돌보겠습니다

 

#2 게으르게 산다는 건 멋진 일

 

#3 무턱대고 최선을 다하진 않겠습니다

 

#4 그래도 나에겐 내가 있다

 

 

또, 에세이는 생각보다 폭넓은 방면으로 자신을 아끼고, 보듬고, 배려하고, 막 소모하지 않을 수 있는 지침을 좋은 사례와 예시로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일상적 에피소드 속에서, 누구나 짚어내고 성찰하며 새김질할 수 있는 것은 아닌 점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안, 아않’은 꽤 멋진 산문집이다.


그리고 그런 걸 헛웃음이 나오게도 독수리 타법으로 써냈다는 작가는, ‘자기 돌보는 일에는 꼴등인 사람’이고, 안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 에세이를 노력 일기 삼아 출간했다고 한다. 독자들이 ‘이 사람도 이러고 사는구나’를 넘어 스스로를 아끼고 싶은 욕심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서도 ‘노력’을 하는 이 작가. 어딘가 강한 동질감의 향기가 콧구멍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아마 이 책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 중 반절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역시 이런 성향들은 어쩔 수 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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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면 쉬어야 한다. 아프면 돌봐야 한다. 아무 조치를 해주지 않아도 ‘이러다 마는’ 건 없다. 나에게 너그러워지지 않으면 남에게도 너그러워질 수 없고, 그 결과는 곧 내 인생 구석구석에 몰래 스며들어 어느새 나를 갈수록 타이트하게, 새카맣게 옥죄어오는 불행과 우울감이 될 것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은근히 외면하며 사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이 에세이는 그러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거울 좀 보고 살라고 말한다.


참고로 오늘의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내가 기고하는 마지막 글이다. 그리고 나는 여태껏 이 에세이 작가가 꼴등을 하고 있던 부문의 뒤에서 두 번째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에세이, 아무래도 생각보다 더 감명 깊은 팩트 폭행으로 나를 움직여버린 것 같다. 거울 앞에 데려다 놓은 것 같다. 올해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게 잘하고 있는 사람들만의 훈장 같은 것이라는 생각 하나로 울부짖는 내 몸과 마음을 숨죽이게 만들어 왔는데, 이제는 그게 잘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자각이 확실하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내년에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지. 한동안은 그 어떤 의무감도 내게 쥐여주지 않아야지. 하고 싶은 것에 온 마음을 다하고, 하기 싫은 건 곧 죽어도 안 할 테다. 가족과 친구와 더 많이 마음 편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테다. 안녕, 비대면 학교! 팔자에도 없는 자격증! 사랑했던 아트인사이트! 이건 지금 엄청난 용기를 발휘해 내 인생의 지분을 스스로에게 잔뜩 쥐여주는 것이다. 혹시 모르지, 이러다 떡상해버릴지도. 덕분에 벌써 나는 쉬는 게 무조건적인 죄가 아니란 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슬슬 쉬는 데 시동을 걸어서, 오히려 더 큰 도약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내 용감해짐이 문득 부러운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꼭 읽어봐 줬으면 하는 편들을 조심스럽게 읊조리며 한 마디만 다시 되새김질해드려 본다.


 

- 나는 당신이 아니랍니다

- 이만 원짜리 딸기

- 나에게 좋은 사람

- 몸이 악을 쓰고 있다

- 부모님의 기대는 꺾으라고 있는 것

- 금기 미니멀리즘

- 간접화법의 늪

 

 

"힘들면 쉬어야 한다. 아프면 돌봐야 한다. 아무 조치를 해주지 않아도 ‘이러다 마는’ 건 없다. 나에게 너그러워지지 않으면 남에게도 너그러워질 수 없고, 그 결과는 곧 내 인생 구석구석에 몰래 스며들어 어느새 나를 갈수록 타이트하게, 새카맣게 옥죄어오는 불행과 우울감이 될 것이다."


부디, 당신도 이 사실을 어물쩡 외면하지 말아주길.

 

 

 

정소미.jpg

 

 

[정소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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