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진의 힘 - 꿈을 지키는 카메라 [도서]

기록되면 의미는 영원히 이어진다
글 입력 2021.11.0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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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몇 시간의 말보다 아무 말 없이 그저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파급력이 더 큰 법이다. 1993년 ‘뉴욕 타임스’에 실린 케빈 카터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는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를 대표하는 사진으로 꼽힌다. 사진이 준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곧 사진가의 윤리성에 대한 날 선 비판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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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귀가 찢어질 듯한 경적이 울렸다. 덤프트럭 기사 아저씨가 자전거 탄 소년을 혼내고 있었다. 차가 지나간 후에도 카페에서 내내 틀어놓는 음악 소리처럼 동네 곳곳에서 굴착기 소리와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 소리는 담지 못하지만, 아람이는 몸집이 큰 덤프트럭 앞에서 기죽은 듯 있는 자전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람이는 학교에서 하는 따분한 공부, 그것도 잘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 학교 공부가 싫다. 학교에서는 기실은 나머지 공부인 보충 학습을 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회유도 하지만, 제대로 진행도 되지 않는 수업을 그것도 ‘애초부터 버린 자식’ 취급당하면서 듣고 싶지는 않다. 그 대신 아람이에게는 등하굣길에 보이는 마을의 변화가 더 눈에 들어온다.

 

 

명성시에서 가장 오래된 서민 지역인 중구 지역을 뉴타운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 발표된 건 이 년 전이다. 몇 배로 뛴 땅값 보상에다 목 좋은 상가 분양까지 받을 수 있는 형편 좋은 사람들은 뉴타운 개발을 찬성했지만, 시장 사람들 대부분은 재개발을 반대했다. 뉴타운 지역에 들어설 상가는 시장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는 데다 분양가도 턱없이 높았다. 게다가 가게를 세내어 장사하던 사람들에게는 상가 분양권을 주지 않고, 장사를 시작할 때 내고 들어온 권리금마저 되돌려 받을 길이 없었다.

 

 

백 년 전통의 만둣집을 만들겠다는 아람이 아버지의 포부는, 명품 도시를 만들겠다는 명성시 시장님에 의해 그렇게 산산이 깨지고야 말았다. 대책 위원회 총무를 맡은 아버지는 잦은 마찰로 인해 경찰에 연행되고 각종 죄목으로 기소되기 일쑤였다. 몇십 년 된 시장 안 점포를 무단으로 부수는 용역이 저지하려는 동네 주민들을 강제로 해산시키면서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경찰은 마을 사람에게만 죄를 물었다.


일방적으로 상가 주민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형국이 지속되자, 결국 그들은 살기 위해서 옥상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옥상 난간에 펼쳐진 플래카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서민 몰아내는 뉴타운 중단하라. 영세 상인 죽이고 명품 도시 웬 말이냐! 용산 참사 기억하라!’


어느 누가 생존권이 불리해지는 문제를 초연히 넘길 수 있을까? 어느 누가 생활 터전을 내놓고 편하게 쫓겨날 수 있을까? 12년 전에도 용산4구역 철거민이 명성시 주민처럼 건물 옥상에 올라가 극렬히 저항한 일이 있었다. 화염병과 염산 병을 날리면서까지, 그들이 내고자 했던 목소리는 무엇이었을까? 그냥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는 적어도 빼앗으면 안 된다는 피 끓는 울분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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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람이의 사진기에는 곧 있으면 명품 도시로 탈바꿈하여 과거의 모습으로 남을 시장의 모습이 하나둘 담기기 시작한다.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 기억 속에만 남을. 동시에 소박한 공간에서 이루고자 했던 상인들의 꿈도 사진으로 남는다. ‘Jang’s 통가죽 슈즈’의 사장 장 씨 아저씨의 꿈은 계속 구두 만드는 것, 연서네의 꿈은 유아용품 가게를 하며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살겠다는 것.


아람이는 세상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아내는 VJ가 되는 것이 꿈이다. 돈 많이 버는 CEO나 힘 있는 정치가를 꿈꾸며 공부에 매진하는 언니가 공부부터 먼저 하라고 채근하자, 아람이는 한 마디 쏘아붙인다.

 

 

“그럼 공부 못하는 애들은 학교에서 차별을 해도 무조건 꾹꾹 참고, 나중에 공부 잘하게 되면 그때 자존심을 찾으라고? 그게 말이 돼? 원래 학교는 우리처럼 공부 못하는 애들을 더 잘 가르쳐 주고 이끌어 주는 데 아니야? 보충 수업 하러 갈 때마다 내가 쓰레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그래서 공부고 뭐고 다 싫어지려고 그런다고.”

 

 

초등학교 선생님을 꿈꾸던 언니가 사회적으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한 것도 마을의 상황 때문이다. 권력을 가지면 그 힘으로 약자를 챙겨주리라는 결심도 분명 소중하다. 그러나 아람이의 블로그에 모아놓는 사진은, 현재 힘이 있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 힘을 가질 사람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기록이다.


역사도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있고, 기록으로 그것도 여러 권의 사료에 남아 있는 사건만 역사가 되어 후세까지 이어지듯, 기록이 없는 일은 금방 세상에서 사라진다. 기록이 남아만 있다면,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흘러 두고두고 회자한다. 사물과 사건이 가지는 의미를 영원히 지속시키는 뜻깊은 일을 하는 아람이의 장래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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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를 들었다. 눈물 때문에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오늘 절대 사진기를 내리지 않을 거다. 연서 엄마, 연서 엄마와 함께 저 옥상으로 올라간 시장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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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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