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긋지긋하고 사랑스러운 별님의 낯짝 - 연극 '가족같이'

글 입력 2021.10.2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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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생계 혹은 주거를 함께하는 생활공동체로써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 양육, 보호, 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 단위다. 하지만 우리는 기능으로서 가족을 이해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가족 안에서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을 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가족에 대해 인식을 공유한다. 우리는 가족을 아무리 밉더라도 영원히 함께할 존재로 여긴다.


현실에서는 가족 대부분이 사랑한 만큼이나 실망과 피로감으로 삐걱 거린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족과 헤어지거나 쪼개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설명할 수 없는 애착으로 인해 그들이 얼마나 끔찍하건을 떠나 그들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상처와 실망의 잔해 속에서도 사랑의 증거를 찾으려는 자식들이 언제나 존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다양한 방식으로 실제 가족이 어떻건, 있건 없건을 떠나 사람들은 가족에 대한 질긴 인연을 조금씩 공유한다.

 

오늘 리뷰할 연극 `가족같이`는 현실 속 기묘한 가족의 인연을 그린 작품이다. 우리가 만나는 가족은 결코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다. 부모는 자기 삶과 가족의 부양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자식은 그러한 부모의 기대와 인연을 견뎌낸다. 가족 관계에서 기대와 사랑이 늘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극 `가족같이`는 그에 대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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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연극은 두 개의 플롯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본편이 시작되기 전에 삽입되는 짧은 애니메이션처럼, 연극도 짧은 동화를 삽입하고 본편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나 꼭 들어맞는 명칭은 아니지만-사실 오페라 앞에 깔리는 서곡에 가깝다- 편의상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비교하고자 한다.


전반부는 작은 집게 형태를 한 작은 집게가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동화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날 깊은 바다에서 깨어난 집게는 그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해져 여행을 떠난다. 심해어와의 만남 이후로 깊은 바닷속을 나와 육지에 올라 도마뱀을 만나지만 그가 자신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하늘로 날아가 시간을 따라 날아다니는 철새를 만났지만 역시 답을 찾지 못한다.


그러던 중 온 세상에 쏟아진 별빛을 만나게 되고, 아름답고 빛나는 별빛의 빛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는 빛이 비치는 곳을 따라 날아가지만, 먼 곳에서 아름답게 빛나던 별은 이미 오래전에 늙어버린 상태였다. 별빛은 집게에게 "너에게 별의 씨앗을 줄게. 넌 뭐든지 될 수 있단다"라고 이야기한다.


전반부는 추상적인 방식으로 극의 전체 내용을 압축하여 전달한다.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연출이 눈에 띈다. 배우들은 집게, 양말, 가죽 지갑, 종이를 이용하여 작품의 등장인물을 등장시킨다. 최소한의 소품을 두 배우가 활용하여 전개되지만, 몰입을 해치지 않는다. 관객들의 집중을 오랜 시간 동안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랜턴, 스탠드, 벽에 붙은 전등, 작은 전구들을 활용한 조명 연출이었다. 바다에서 우주까지 탐험하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조명은 작은 랜턴부터 전체 벽면에 붙은 전구까지 천천히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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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본편에 해당하는 후반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연극에서 주요 소재가 되는 것은 무능하고 책임감 없는 아버지다. 작품의 화자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는 귀하게 태어나 그 자신이 그러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믿어온 사람이다. 아버지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지만, 가족을 위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들지도 않는다. 가족들은 한량처럼 살아가는 아버지에게 돈이나 담배를 건네고, 아버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대답한다.


아버지는 집안에 큰 빚을 남기고 가출한 뒤에도 돌아와서 도박 질이나 하며 들러붙는다. 어머니는 그에게 잠깐이나마 아버지로서 할 일을 수행하기를 기대하며 형의 대학 입시 비를 대시 내달라고 믿고 건네지만, 그마저도 도박으로 탕진해버린다. 형은 대학입시를 포기한 후로 아버지와 대화하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상주 노릇을 하지 않고 도망만 다닌다. 장례식이 끝날 때 쯤 돌아온 그는 뻔뻔하게 돌아와서 다시 가족이 되었다.


이제 모든 가족이 아버지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다. 그래도 형은 결혼할 때가 되자 처음으로 입을 열어 그에게 청첩장을 넘긴다. 아버지는 형의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돈을 챙겨 옷을 해 입고 또 놀러 가 삼 일간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무도 실망하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그런 한심한 아버지의 작태를 보면서 그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후반부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전개되며, 두 배우는 하나의 역할을 고정해서 연기하기보다는 돌아가면서 연기한다. 연극의 흥미로운 연출 방식 중 하나는 주인공의 역할을 두 배우가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는 것이다. 혼란스럽게 느껴질 것 같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탁월한 탓에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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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분으로 통합된 연극은 가족의 기능이 아닌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둔다. 작중 등장하는 아버지는 아이들을 보살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온전히 자립하지 못해 가족에게 의존하는 한심한 인물상이다. 부모의 역할이 자식을 부양하는 것이라면, 아버지는 부모로서 해야 할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가족들은 그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런 아버지라도, 때로는 아들을 보호한 순간이 조금씩은 있었다. 사실 지나온 세월이 남긴 상처의 치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데도, 가족은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상호호혜적 관계가 아니라, 그저 같이 함께 공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연극에서 묘사되는 가족은 보살핌이나 의지가 되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공동체라기보다, 영원히 함께 공존하는 개인의 집합에 가깝다. 그처럼 가족은 하나 연극은 한 가족의 사연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가족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를 거두어낸다. 모든 것들을 거두어들이고 남은 가족의 민낯은 지긋지긋하지만, 분명히 친숙하고 현실적이다.


전반부에서 표현된 별과 집게의 만남은 연극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압축한 비유다. 이 연극에서는 전반부를 판타지 소설처럼, 후반부를 현실적인 가족의 단면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전개 방식이 창작집단 우주도깨비의 소개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창작집단 도깨비는 과학의 영역인 우주와 판타지의 영역인 도깨비의 합성어인 것처럼, 논리와 비논리, 복제와 창작 사이에서 우주도깨비만의 언어를 찾아내 이 시대에 위로가 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작품도 비논리적이고 비유로 가득 찬 전반부와 현실적인 가족의 얼굴을 독백 식으로 처리한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연극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를 함께 엮고서야 완성된다. 전반부에서 표현한 것처럼, 멀리서 본 별들은 아름다웠지만, 가까이서 보았을 때 추레하고 지쳐 보인다. 처음으로 만난 아버지는 때로 빛나고 대부분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 아버지조차 나에게 씨앗을 주고 함께 밤하늘 비추며 살아간다. 충만함만을 주지 않고, 사실 인간 대 인간관계로선 참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가족은 함께 떠 있는 것만으로도 유지되는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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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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