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밀하게 완성한 삶 - 아웃 오브 이집트

글 입력 2021.10.2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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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보면, 내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기가 어렵다. 어디까지 솔직하게 적어야 할지, 어느 정도의 깊이를 담아야 할지, 주변인을 언급할지 인물 간의 관계를 하나하나 설명할지 등등.

 

픽션은 온전히 ‘허구’라는 방패로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면서도 논픽션에서, 특히나 그 속에 ‘나’라는 자아를 드러내야 할 때면 수많은 제약 안에서 무수한 고민에 빠진다. 독자가 글을 통해 그 속에 담긴 나와 마주칠까 두렵다.

 

회고록은 그 두려움을 깨부수고 ‘나’를 타인에게 온전히 보여준다. 회고록에서 서술된 문장 하나하나는 사건과 인물의 내면을 끊임없이 재현한다. 이 때문에 오히려 픽션보다 더 많은 인물이 등장하거나 작품 속 배경이 더 자주 바뀐다. 또는 과연 알 필요가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 만큼 세세한 정보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아래에 다룰 작품인 『아웃 오브 이집트』의 경우에도 당혹스러울 정도로 세세한 문장들이 나열된다.

 

 

아웃 오브 이집트_앞표지.jpg


 

피난처 같다는 ‘나’의 집에는 옴 라마단, 팔이 하나뿐인 하인, 알코올 중독자 요리사가 있고 그 이웃집에는 지적 장애가 있는 딸이 있고, 심부름꾼은 사고로 다리를 전다. 어머니 동창생 몇 명은 매주 여러 번 차를 마시러 방문한다. 새로운 그리스어 가정교사 마담 마리가 쓸 방이 생겼다. 19세기 말의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다고 착각할 만큼 절대 수영복을 입지 않는 할머니들이 해변에 종종 보인다.

 

인물뿐만이 아니다. “격자무늬 같은 빨래”나 “이제는 이집트에서 구할 수 없는 완충재가 들어간 탁구채”와 같이 한 물체도 간단한 설명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서술이 서사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가? 과할 정도의 세세함은 오히려 독자를 지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웃 오브 이집트』는 세세한 문장이 무수히 겹쳐 온전히 ‘나’의 재현을 완성한다. 이집트에 살던 ‘나’를 최대한 보여주기란 그 당시 목격한 일, 사건, 느낀 감정과 같은 추억을 쌓는 과정 그 자체이다.

 

개인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 존재한다. 『아웃 오브 이집트』 역시 당시 역사적 사건을 개인적인 경험에서 언급한다. 숙모는 별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외국인은 꺼지라며’ 다리에 돌을 맞았다. 그날 오후에는 별장 정원에서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결국 이집트 정부는 아버지의 전 재산을 압류했다. 전 재산을 몰수당한 사람들은 머지않아 이집트를 떠나야 했다. 순식간에 무력한 가족들 사이에서 ‘나’는 “그럼 나는 뭘 해야 해요?”라고 묻는다.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는 척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비극은 각자의 사정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이집트에서 추방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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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떠나는 것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이유는 이런 밤이 다시 없으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저녁에 해안 도로에 앉아 질척한 팬케이크를 먹는 일은 올해도 그 어떤 해에도 다시없을 것이기에. 비록 잠깐일지라도 사랑하는지조차 몰랐던 이 도시를 갑자기 갈망하는 혼란스러운 순간의 묘미 역시 다시는 없을 것이기에.”

 

 

『아웃 오브 이집트』를 읽으면서는 최은영의 소설 「그 여름」이 떠오른다. 물론 두 작품은 장르도 인물도 분위기도 전혀 다르다.

 

그저 「그 여름」에서는 ‘수이’와 ‘이경’의 이야기가 ‘그 여름’이라는, 이제는 돌아오지 않는 유일한, 완결된 계절로 남은 것처럼 『아웃 오브 이집트』 역시 이집트에 머물렀던 날들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완결된 추억은 기억을 더듬는 과정만으로 다시 그 시기에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이집트에서 추방당하면서 ‘나’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이집트에서의 ‘나’가 이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의 ‘나’는 결국 완결된,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웃 오브 이집트』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독자가 읽는 이집트에 살던 ‘나’는 수많은 문장에서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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