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바라던 뮤지컬 - 웨딩 플레이어

영화 <라라랜드>를 잇는,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
글 입력 2021.10.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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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뮤지컬’이라는 것만 보고 관람 신청을 했는데, 알고 보니 배우 한 명이 극을 이끄는 ‘원맨쇼’라는 것이다. 뮤지컬 하면 앙상블, 화려함만 떠올리던 내게, 혼자 꾸민 무대는 어떤 느낌일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도 공연 시간이 1시간 반 정도로 짧으니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그런데 기대 없이 본 <웨딩 플레이어>는 최근에 본 어떤 공연보다 마음을 동하게 했다.

 

 

웨딩플레이어 - 인물포스터 - 정연.jpg


 

<웨딩 플레이어>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주인공 지원은 예식장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결혼식이 페퍼로니 피자라면 피자에서 페퍼로니를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 말이다. 이야기는 지원이 급하게 대타를 구하며 시작된다. 지원은 어렵사리 연결된 대타 학생에게 간단히 인수인계하며 점점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전 남자친구의 예식이라 대타를 구하게 됐다고. 추억에 빠져든 지원은 고민한다. 둘 다 예식장에 가지 말고 피아노 반주 없는 예식을 선사할까, 아니면 가서 예식을 망쳐버릴까.


유지원은 전 남자친구와 진지하게 4년을 사귀었다. 헤어지고도 2년이 흘렀지만, 피아노만큼 좋아했던 남자이기에 함께 한 추억들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안 그래도 빠듯한 형편에 아끼던 축음기를 팔아 아버지가 마련해 준 그랜드 피아노, 그때부터 피아노와 지원의 인연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건반을 뚱땅거리는 것이 마냥 행복했지만, 입시를 시작하고, 대학교에 입학하며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 와중에 손목 부상도 겹쳐 피아노와 지원의 관계는 요동치게 된다. 그 순간 남자친구 봉섭이 자신에게 다가온다.

 

봉섭은 지원이 손목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 만난 인물로, 수련중인 정형외과 의사였다. 한 번의 부딪힘. 커피를 들고 가던 봉섭은 지원과 부딪히고, 지원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갖가지 기호와 수정사항을 표시해 놓은 악보를 훼손한다. 사투리를 쓰는 순박한 청년 봉섭은 며칠 만에 새 악보에 똑같은 표시를 한 뒤 지원에게 돌려준다. 지원은 듬직한 그의 모습에 점점 끌리게 되고, 지원과 피아노, 그리고 봉섭의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지원은 봉섭과 결혼할 줄 알았다. 아니, 결혼하기로 했었다. 이미 청첩장까지 뽑아 놓은 상태였으니까. 삼각관계가 적당히 균형을 이루며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들에게 ‘집’과 ‘부양 가족’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끼어 들었다. 피아노에게 좁은 방을 다 내어 줄 만큼 피아노를 사랑한 지원에게, 봉섭은 이제 피아노는 잘 안 치지 않냐며 피아노 대신 자신의 어머니가 지낼 방을 만들자고 한다. 둘 사이는 급격하게 틀어졌고, 지원의 졸업 연주회 아침, 봉섭은 문자로 파혼을 알린다. 당연히 졸업 연주회는 망했고, 지원은 아직도 무대 트라우마를 간직하며 산다.


지원은 그날을 이렇게 회상한다. 무대에서 연주를 시작하면, 보통 처음 손가락을 뗀 후에는 손을 제어할 수 없다. 손가락들이 알아서 움직인다. 온전히 몰입한 순간 피아노와 자신만 남는 진공 상태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날은 다음 음을 칠 수 없었다. 지워보려 해도 봉섭이 생각났고, 이 무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 파혼을 통보한 그에게 화가 났으며, 집중은 산산이 조각났다. 다시 첫 음, 첫 음만 반복했고 졸업 연주회는 그렇게 끝났다. 그날 지원을 양쪽에서 지탱해주던 줄이 모두 끊어졌다.

 

커다란 욕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진 자신을 바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원은 수년간 주말마다 예식장에서 남의 행복을 빌어주는 ‘웨딩 플레이어’로 살았고, 자신의 행복은 뒷전이었다. 연주자로서 자신의 정체성, 꿈과 현실의 괴리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한 지원에게 다시 선택지가 생겼다. 피할 것인가, 부딪힐 것인가. 지원은 스스로를 인정하고 이해했다. 봉섭이 떠나 아파한 것도 자신이었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피아노에 미쳐있던 것도 자신이었다고. 모두 자신이었다고.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됐고, 그래서 마주하기로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가 선택한 일이다. 잘 해내겠다. 내 무대도, 내 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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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플레이어>는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복수극은 더더욱. 꿈만 바라보며 빛나던 순간을 간직해온 연주자의 이야기다. 이제 빛 바란 꿈에 다시 광을 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의 이야기다. 인생을 돌아보며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이었다고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결국, 자신이 되어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고,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


줄거리만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배우 정연는 1시간 30분 동안 혼자서 관객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가볍게 즐기려고 했다가, 캐릭터의 인생에, 그의 삶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부가 영상을 활용한 것도 아니고 다른 인물이 등장해 대사를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정연 혼자만으로 충분했다. 무대에 없는 상대의 표정과 음성을 상상하게 했고, 그의 과거를 함께 겪은 것처럼 만들었다. 비어 있다는 느낌 없이 에너지가 가득 찬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처음 그랜드 피아노를 사준 아빠 모습을 흉내 내고, 피아노 판매 아저씨를 연기하고, 고객 신랑 어머니를 연기하고. 정연은 ‘마음을 다해’ 수많은 얼굴을 보여준 배우다.

 

입체적인 정연의 모습으로 입체적인 ‘나’의 모습까지 살피게 됐다. 지원이 연주 대타를 구하며 친구와 통화할 때는 조심스럽게 부탁하다가 끊고 나서는 무섭게 욕할 때, 대타 학생 앞에서는 가늘고 얇은 목소리를 끌어내 이야기할 때가 인상적이었다. 학생과 편해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는 연기라고 느껴지지도 않는 현실 말투로 대사를 이어 나갔다. ‘나’의 수많은 자아. 사랑할 줄 알지만 미워할 줄도 알고, 꿈을 좇지만 포기하기도 하는 다채로운 모습을 그의 연기에서 살필 수 있었다.


이 뮤지컬에서 코믹한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스탠드업 코미디에 음악을 더한 듯한 구성이었고, 배우가 썰을 풀어주는 실력이 실로 대단했다. 아버지, 남자친구 이야기에서 나아가 예식에 주로 사용되는 곡을 작곡한 쇼팽, 리스트, 멘델스존의 이야기까지. 남의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결국엔 자신의 이야기로 전환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관객 한 명을 ‘대타 학생’으로 설정하고 능청스럽게 소통을 이어가는 과정(무대 공포증은 없냐, 입시 곡은 그걸로 한 거 맞냐 등)도 웃음 포인트로 작용했다.


뮤지컬 <웨딩 플레이어>는 다시 나를 꿈꾸게 하고, 들뜨게 한 작품이다. 누구에게나 유효한, 희망을 주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는 웨딩 플레이어에서 자신의 무대를 즐기는 웨딩 플레이어로 거듭나는 결말을 보며 희망을 품고 공연장을 나왔다.

 

 

웨딩플레이어 - 티저 스케치 4절 사이즈- 공유용.jpg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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