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초록의 감각이 필요할 땐, 화가 김보희 [미술/전시]

글 입력 2021.10.26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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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잔상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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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YS, 2014

 

 

지난 6월, 더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즈음. 바쁜 시기가 지나고, 모처럼 여유가 생긴 나는 궁금한 전시 리스트를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전시의 주제와 작가를 찾아보고, 위치와 일정을 확인하며 촘촘히 전시회를 볼 계획을 세웠다.

 

그중에도 가장 기대하고 기다린 건 김보희 작가의 개인전 『Towards』였다. 누군가의 SNS에서 스치듯 본 『THE DAYS』란 작품이 잊히지 않았다. 작년 여름, 금호미술관에선 초록의 품 안에 잠겨 있을 수 있는 김보희 작가의 개인전이 한창이었다. 단숨에 마음을 뺏겼음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시간도, 마음도 남아있지 않는 탓에 방문하지 못했다. 그걸 두고두고 후회하다 다시 같은 계절, 여름이 찾아올 즈음 새로운 개인전 소식을 들었다.


궁금했다. 초록을 그린 화가도, 자연을 담아낸 작가도 많은데 왜 그의 그림이 그토록 선연하게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지. 김보희 작가의 그림 앞에서 여름을 느끼고, 평화를 얻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금호미술관 앞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국내 생존 작가의 개인전을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4만 명 규모의 관객이 방문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했다.


사진 찍기 좋은 전시, 아이돌이 방문한 전시란 점에서 이유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이 초록과 여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김보희 작가의 그림에서 그것을 보고 느낄 수 있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과 경험을 찾아서 미술관으로 향했다.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며 그린 세계


 

김보희 작가는 ‘동양화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을 거쳐 동양화과 교수로 25년이라는 긴 세월을 재직했다. 그야말로 동양화로 세상을 관찰하고 그려내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그린 수묵화와 산수화에는 자연의 풍경이 담겼다. 익숙한 고미술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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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flower and goats, 1972

 

 

먹을 갈아 그린 그림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은은하게 번지는 풍경 앞에 서면 가만히 집중해 먹을 갈고, 천천히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동양의 얇은 선으로 그려낸 그림은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세밀한 선으로 그린 꽃과 과일, 작은 동물들을 그린 그림을 보면 마음도 부드럽게 풀어졌고, 작은 생명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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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errace, 2019

 

 

하지만 김보희 작가의 회화는 동양적 색채만이 가득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동양의 기법을 기반으로, 서양의 재료와 표현이 더하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간 덕이다. 과하게 더하거나, 덜하지 않고, 동양과 서양의 미술이 은근한 조화를 이룬 모습이었다. 서양의 캔버스 위해 동양화를 보는 듯 자연을 묘사하면서, 아크릴을 사용하는 식이다.


동양과 서양의 것을 넘나드는 김보희 작가의 그림은 특별한 감각을 전한다. 도로 위 달리는 자동차, 그 곁을 따라 심은 나무들. 잘 가꾼 테라스에 나와 보는 풍경, 화단 위 화분들과 높이 자란 야생의 나무, 강아지. 익숙한 풍경인 듯싶다 가도 한 번도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상상의 풍경이라는 느낌을 받게 한다.

 

 

 

초록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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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wards, 2008

 

 

초록을 빼놓고 김보희 작가를 말할 수 없다. 작가는 제주에 살면서 관찰한 식물과 자연의 풍경을 자주 그림에 담았다. 작품 앞에 서면, 다양한 빛깔의 초록이 주는 생명력이 너무나 강렬하게 느껴진다. 작가가 제주의 자연 속에서 말을 건네는 잎사귀와 개화를 앞둔 꽃잎, 터질 듯한 열매를 발견하고 느낀 기쁨과 환희가 그림 너머로 흘러나왔다.


 

“제주 집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들여다보다 보면 작은 씨앗, 잎사귀, 열매 같은 것에서도 현대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어요. 자연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오브제인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몇십 배, 몇백 배로 확대해 그렸지요.”

 

 

김보희 작가는 스쳐 지나가기 쉬운 작은 순간들을 포착했다. 우리가 모르는 새에도 자연의 곳곳에선 작은 탄성이 터지고, 저마다 분주한 일생이 흘러가고 있었다. 작가는 짧은 그 순간을 커다란 캔버스로 옮겨와 선물했다. 캔버스를 통해 자연의 일순간에서 우리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초록은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타인, 다른 생명의 존재로 번거롭고, 피곤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하지만 평화와 안식도 생명에서 온다. 작고 흔한 풀이라도 제 삶의 단계를 천천히 이어 나가는 것을 볼 때 위로와 응원을 받는다.


김보희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그가 그려온 수많은 초록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찬찬히 그 생명 안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다시 전시로 만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참고한 글>

행복이 가득한 집 - 화가 김보희, 자연 속으로

김보희 공식 홈페이지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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