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곱 가지의 장면들, 그 속에서 우리는. 연극 '세븐 씬(SEVEN SCENES)'

글 입력 2021.10.24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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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극을 보러 간 날은 연극의 마지막 날이었다. 다시 재공연을 하지 않는 한 내가 그들의 마지막 막에 함께한다고 생각하니 설레었다.

 

그날은 예고도 없이 추워진 날씨에 옷을 꽁꽁 싸맨 내 옷차림과 상반되게 햇빛으로 눈이 부신 날이었다. 알고 보니 극장이 위치했던 곳은 내가 항상 서울에 갈 때마다 버스로 지나치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극장이 있었다니.

 

나에겐 오직 버스 정류장과 내가 사랑하는 남산 타워가 잘 보이는 곳, 엄청나게 높은 빌딩 숲들로 가득 찬, 그렇지만 그곳엔 나에게 내어준 자리 하나 없는, 그러한 곳으로만 인식되었던 이곳은 배우들의 열과 성이 담긴 연극의 장이기도 했다.

 

 

 

독특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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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프로덕션 IDA 인스타그램

 

 

이제까지 계단식 구조에 관객이 앉고 배우들을 내려다보는 극을 보았다. 이번 극은 지금까지 내가 본 연극의 무대 구성과 달랐다. 관객들이 모두 1열에 앉은 채 무대를 둘러쌓다. 배우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길게 이어진 비탈길에서 내려오기도 했다.

 

무대와 가깝다는 인상을 받아 마치 나만을 위한 연극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배우에게도 집중되지만 앞뒤에 관객에 앉다 보니 그 뒤에 관객과 눈도 마주치기도 하고 그들의 감상 표정도 보이는 조금은 민망하기도 흥미롭기도 한 무대 짜임새이기도 했다.

 

연극을 보면서 특히나 연극배우가 존경스러웠던 것이 8개의 제한된 소품을 가지고 마치 새로운 것이 있듯이 연기를 하는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드라마나 영화라면 충분한 소품을 가지고 연기를 할 수 있는데 이런 라이브(live)하고 제한된 상황 속에서 관객에게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는 그 생생함들이 너무 좋았다.

 

 

 

기획의도와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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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프로덕션 IDA 인스타그램

 

 

이혼을 두 남녀의 30년 동안 삶의 이야기이다.

 

각자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혼한 두 남녀는 서로의 극에는 등장하지 않고 그들 사이에 낳은 딸 도원만이 그들의 시간을 가로질러 다닌다. 그 후 29년이 흘러 남자는 여자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고, 그로부터 1년 후 여자는 남자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사람과의 관계는 가위로 자를 수 없다


 

이혼한 남녀의 삶이 서로를 사랑했던 그들의 과거의 얽매여 있는 게 아니라 각자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일, 가정, 사랑, 우정, 고독 등 다양하게 다룬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여자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기자 남자는 그녀를 응원한다. ‘도원’이 20대 시절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결심하고 그녀의 아버지와 밥을 먹는다. 하지만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후에 남자친구의 부모님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자 도원은 인사를 하러 갈 상황이 마땅치 않아 아버지에게 상에 인사를 가달라고 부탁한다. 이 장면은 정말 기억하고 싶었다.

 

헤어짐으로 도원과 그녀의 남자친구는 평생 안 볼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원은 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려고 한다. 과거의 떠나간 인연이라도 슬픈 일이 생겼을 때 위로의 말을 전하고,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축하의 인사를 전하는 그러한 관계가 진정으로 건강한 관계이지 않을까 느꼈다.

 

사람과의 관계를 재단하려 하지 말고 그저 그런대로 ‘세븐 씬’의 여자와 남자처럼 좋은 친구로 유지해 나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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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프로덕션 IDA 인스타그램

 

 

 

자유로운 영혼의 인물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건, 고장이 안 나는 상태가 아니라고, 고장 나면 언제든 고쳐가며 사는 거라고.

 

모든 건 다 망가진다고, 그건 당연한 건데,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중요한 거라고 했거든요.

 

 

남자는 계속해서 그의 전 부인에게 ‘너는 예전부터 자유로운 영혼이었어.’라는 대사를 자주 건넨다. 그의 딸 도원에게도 ‘너는 너희 엄마를 닮아 자유로운 영혼이야.’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명명되었던 그녀에 걸맞게 도원이 성인이 되고 딸에게 엄마의 인생을 살라는 말을 듣자 무계획으로 친구와 함께 파리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파리에서 그저 그 도시가 주는 모든 것을 만끽한다. 인생이라는 게 정해진 길이 없고 안내판도 없기 때문에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을 사는 우리가 그녀의 행동을 통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얼굴에 세월의 자국이 남은 두 남녀가 대각선으로 조금 떨어져 선 채 오랫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극이 마무리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의 만남이 연상되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톡-하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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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불특정 관람객과 마주 앉아 침묵으로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 퍼모먼스에서는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오직 서로의 눈만 응시하는 것이었다.

 

퍼포먼스 기간 중 끄덕도 안 하고 관람객과 눈을 마주하던 그녀가 어느 한 남성이 등장하자 눈이 흔들리고 이내 곧 눈물이 맺히고 만다. 그녀를 놀라게 만든 남성은 그의 옛 연인이었던 동료 행위예술가 ‘울라이’였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둘도 없는 동료였다. 하지만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고 그들은 헤어지기로 한다. 뼛속까지 예술가답게 헤어짐도 퍼포먼스로 진행하였는데 각자 만리장성의 양 끝에 서서 걸어오는 것이다. 그러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상대를 발견하고 포옹을 하고 쿨하게 각자의 길을 간다.

 

그 후 올라이가 뉴욕현대미술관에 찾아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만난 것이다. 이런 전 과정들이 왠지 모르게 주인공들을 닮아있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가 손을 맞잡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처럼, 주인공들은 이혼으로 그들 관계에 갈무리를 맺었고 다시 만나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위로한다.

 

이 두 명의 주인공을 통해 서로의 인연을 아쉬워하지도, 서로를 그리워하지도, OO의 아내, OO의 남편이 아닌 그저 주인공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모두 다른 일곱 장면들 속에서 우리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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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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