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는 어떻게 어둠 속 영웅이 되었을까

다시 보는 <배트맨 비긴즈>
글 입력 2021.10.22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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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을 열며

 

다크나이트의 서막을 연 <배트맨 비긴즈>.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던 히어로물을 성인들 또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 만큼, 히어로물인데도 오락적 측면보다는 내용적 측면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는 아마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내면’을 영화에 녹여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배트맨 비긴즈>가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표현해냈는지를 플롯 상에서 중요한 세 가지 요소를 꼽아, 여러 미장센이나 연출 방식을 곁들여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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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는 존재는 바로 박쥐였다

 

<배트맨 비긴즈>에는 유독 하강적 이미지가 강한 장면이 많았다. 어릴 적 브루스는 우물 밑으로 떨어졌고, 훈련소가 브루스에 의해 불타던 중 듀커드는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했으며, 아예 배트맨이 된 브루스는 범죄자를 교란할 때이든 처단할 때이든 간에 상공과 지상을 넘나들며 계속해서 떨어지고, 처단된 범죄자들 또한 땅으로 추락한다. 특히 중요한 대사인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돼”라는 아버지의 말은 대놓고 하강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또, 카메라는 이런 장면들을 위에서 잡아내거나 고정된 화면으로 올라오고 내려오는 순간을 비추며 떨어지고 있음을 더 주목하게 만들었다.

 

감독은 왜 계속해서 누군가의 하강을 그려낸 것일까? 필자는 이것이 박쥐의 상징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박쥐는 매순간 하강하며 필연적으로 다시 상승하는 존재다. 하늘에 매달려 있던 몸을 땅으로 내던지고 나서야 하늘로 날아오르기 때문이다.

 

브루스는 우물 사건과 부모님의 죽음으로 신체적, 정신적 추락을 겪었다. 이로 인해 그의 내면 가장 아래의 무의식에는 늘 박쥐에 대한 공포감이 있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꿈이나 최면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했었는데, 이 점을 차용한 것인지 영화는 박쥐에 대한 공포를 영화 장치를 통해 드러낸다. 박쥐에 공포를 느끼게 된 시초(우물)가 성인이 된 브루스의 꿈을 통해, 배트맨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박쥐에 대한 공포가 남아있음은 스케어크로우의 환각가스를 통해 나타난 것이 그 예다.

 

하지만 무의식에 박쥐가 내재된 브루스는 다시 도약했다. 자신을 다잡기 위해 듀커드를 만나러 산을 올랐고, 수많은 정신적 추락을 이겨낸다. 또, 박쥐에 대한 공포를 아예 범죄자들의 공포의 대상으로 치환하며 자기 자신이 박쥐가 되어버린다. 영화 전체를 지배한 상징인 박쥐는 브루스의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결국은 브루스 그 자체가 되었고, 그는 아버지의 말마따나 늘 떨어지고 다시 올라오는 인간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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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드와 초자아, 브루스는 무엇을 택했을까

 

한편,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영화를 봤을 때, 가장 재밌던 부분은 ‘이드-자아-초자아’가 인물 대립 구도를 통해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드는 가장 본능적인 의식체로서, 모든 것을 파괴하기를 추구하며 방어기제의 1단계인 ‘분리’를 따라 흑백논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반면 초자아는 가장 이성적인 의식체이며 도덕적 규범과 절제(억압)를 중시한다. 당연히 극단에 서있는 이드와 초자아는 늘 대립하고 인간에게 자신을 따를 것을 요구한다. 그 가운데에서 둘을 조정하는 것이 자아의 몫이다. 올바른 자아는 적절히 둘의 조화를 추구하며 인간이 올바른 선택을 하게끔 만든다. <배트맨 비긴즈>에서는 라스알굴을 이드에, 레이첼을 초자아에, 그리고 브루스를 자아에 빗댈 수 있다.

 

먼저, 라스알굴은 늘 극단적이다. 이는 로케이션을 통해 볼 수 있다. 브루스가 육체적/정신적 훈련을 했던 곳은 눈이 쌓여있을 정도로 추운 곳이었지만 브루스로 인해 불태워지고, 그는 이후 브루스의 집을 불태운다. 또,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아주 차갑거나 뜨거운 색 온도가 사용되어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표현은 절대악, 혹은 절대선을 추구하는 라스알굴의 극단적 정의관과 닮아있다. 그는 브루스에서 이러한 정의관을 따르길 요구하고, 파괴적인 이드의 성향처럼 고담을 파괴하려든다.

 

하지만 레이첼은 이드에 치우친 브루스의 균형을 되잡는 역할을 맡는다. 이것은 레이첼의 대사가 늘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복수심에 불탄 브루스의 뺨을 때리고, “복수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고 정의는 조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렇다. 그녀는 특이하게도 사회 자체의 초자아를 도맡고 있기도 한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팔코니의 처벌을 요구하는 모습이 그러한 면 중 하나다.

 

라스알굴과 레이첼은 자신의 가치관을 자아인 브루스에게 요구하며 그의 내면에서 대립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선을 세운다’와 ‘관용은 범죄를 키운다’는 이드를 받아들여 불법적으로 악을 처단하면서도, ‘정의는 곧 조화’라는 초자아를 받아들이며 초자아의 방어기제 방법인 공포를 다른 에너지로 바꾸는 승화를 이뤄냈다. 그는 두 자아의 충돌을 화합하며 고담 시의 히어로, 배트맨이 된다. 이때의 배트맨은 이드와 초자아가 화해한, 온전한 자아의 실현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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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히어로와 빌런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가면을 썼다

 

아이러니하게도, 히어로인 배트맨과 서브 빌런인 스케어크로우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두 가지 가면을 썼다. 첫째는 사회적 가면이고, 둘째는 자신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가면이다.

 

전자는 페르소나에 해당한다. 융의 정신이론에 따르면 페르소나는 사회생활을 위해 모든 인간이 쓰는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규범이나 역할을 맡는다. 브루스는 히어로 생활을 의심받지 않고 이어나가기 위해 방탕한 억만장자 이미지와 웨인 가문의 대저택을 가면으로 사용했다. 닥터 크레인은 악행을 숨기고 평범한 정신과 의사 행세를 한다. 이때의 가면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이미지’로써 작용한다.

 

후자는 두 인물이 활동할 때 쓰는 물질적인 가면이다. 브루스는 박쥐 형상의 반가면을 배트맨이 되어 악을 처단하며 고담 시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반면 스케어크로우는 포대자루 같은 가면을 쓰고, 타인의 무의식 속 공포를 끌어내는 최면가스를 사용하여 정신세계를 흐트러뜨리며 우월감을 느낀다.

 

두 인물 모두 자신의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가면을 썼다. 하지만 두 인물은 가면을 썼을 때의 자아를 내재화했냐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레이첼이 말했듯, 브루스는 가면 쓰든 안 쓰든 배트맨 그 자체가 되었다. 결국 이때부터 브루스에게 가면은 자신의 익명성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스케어크로우는 가면 밖의 자아를 내재화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가면 없는 그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며, 결국 자신이 만든 최면가스에 취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크레인이 가스를 마시고 자신을 ‘허수아비’라 칭한 것은 가면 속 자아와 가면 밖 자아의 괴리에서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4. 글을 닫으며

 

영화는 우리에게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곤 한다. <배트맨 비긴즈>는 인물 간의 관계를 통해 자아의 대립을, 가면이라는 소품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 발현을, 이미지와 장치를 통해 공포와 내면적 성장을 그려냈다. 그리고 이번 영화는 관객이 인간의 내면을 통해 사회의 내면을 바라보기를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브루스가 수많은 악을 마주쳤음에도 선을 찾기 위해 배트맨이 되었듯, 사회는 추악하지만 그럼에도 정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김가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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