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하고 미워하는 엄마에게 [영화]

자비에 돌란의 <아이 킬드 마이 마더>
글 입력 2021.10.1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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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엄마를 사랑한다. 하지만 아들로서의 사랑이 아니다. 모르겠다.

누가 엄마를 헤친다면 난 당연히 그 사람을 가만 안 둘 거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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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증오와 분리할 수 있을까? 엄마를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일까? 키워 준 고마움과 사랑은 같을까? 가끔 엄마가 죽이고 싶을 만큼 싫다면 나는 나쁜 사람일까? - 사춘기를 벗어난 지금도 나는 이런 의문들을 자주 가진다. 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의 주인공인 십대 소년 후베르트 또한 같은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진다.

 

감독 자비에 돌란의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엄마'와의 갈등이 그 소재로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자비에 돌란의 영화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자비에 돌란은 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의 시나리오를 16살에 썼고, 20살에 이 영화를 통해 장편영화 데뷔식을 치룬다. 이 영화에는 그의 영화 중 '유치한' 엄마와 아들 간의 싸움이 가장 날것으로 담겨 있다. 자비에 돌란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 후베르트 역할을 맡아 배우로도 참여했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유년기를 한 집에서 매일 보며 같이 보내는 엄마와의 관계는 우리의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엄마라는 존재와 우리는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며, 이를 현명하게 해결하기도, 서로 미숙하게 싸우다가 결국 이해 없이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지기도 한다. 아마 엄마에 대한 (반쯤은 의무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하는)애정과 증오를 함께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영화 속 후베르트와 엄마의 말싸움과 그들이 느끼는 격한 감정의 표출이 과잉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후베르트와 엄마는 서로 죽일 듯이 싸우지만, 끊임없이 잘 지내보려 시도하고, 다시 실패하는 것을 반복한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며 후베르트는 혼자 캠코더 앞에 앉아서 말한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는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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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킬드 마이 마더>로부터, 최근의 <마티아스와 막심>까지, 자비에 돌란의 영화들은 인물들 간의 쌓인 역사를 스크린 위에 그려내는 일에 큰 초점을 두지 않는다. 엄마와 아들이 어떤 일을 계기로 사이가 크게 틀어지게 되었는지, 어떤 계기로 두 남성이 연인이 되었는지, 등장인물들 사이에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에서도 마찬가지다. 후베르트와 엄마 사이에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영화는 전부 다 말해주지 않는다. 영화 러닝타임 대부분을 채우는 것은 현재 후베르트와 엄마가 싸우고 있는 상황들과, 이들이 내뱉는 대사이다. 주인공 후베르트는 엄마와 서로 상처주는 말들을 내뱉고 악을 쓰며 싸운다. 엄마를 인터뷰하는 과제가 하기 싫어 선생님께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엄마에게 들키기도 하고, 이후 엄마는 후베르트와 화해를 해보겠다며 후베르트가 좋아하는 DVD가게에 함께 가지만, 후베르트가 가게에서 너무 오랜 시간 머물자 결국 화를 내며 차에서 싸우고 만다. 영화는 이런 후베르트와 엄마가 현 시점에서 당장 느끼고 있는 '감정'에 주목한다.


자비에 돌란의 이런 전개 방식이 불친절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나? 어떤 하나의 사건만으로 묵은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삶이라는 게 그렇다. 꼭 드라마틱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아주 사소한 것들로 우리는 싸우기도,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아주 많은 감정들과 작은 일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라, 이런 이미 지난 일들을 완벽히 납득시킨다는 건 매우 어렵다.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꼬였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가 느끼는 감정들이다. 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는 후베르트와 엄마의 관계를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 인간은 감정에 서툴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기에, 이 감정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몰라서 상처를 주고 받으며 그렇게 살아간다. 후베르트와 엄마도 그렇다.


꼬일대로 꼬여버린 모자관계를 감당하기 버거워, 엄마는 후베르트의 아빠(그는 아빠가 되기 싫어서 집을 나갔다. 즉, 후베르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둘이서만 살았다.)를 다시 찾아가 후베르트를 기숙학교로 보내버리고, 후베르트는 이에 격하게 분노한다. 후베르트는 엄마의 마음을 돌리려고 소위 말하는 '착한 짓'을 해보지만, 결국 엄마는 후베르트를 기숙학교에 보내겠다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고, 후베르트는 분노와 실망감을 다시 느낀다. 하지만 단순히 '끊임없이 싸우는 모자'로 후베르트와 엄마의 관계를 정의할 수 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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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죽으면 어떡할 거야?"

"그럼 난 내일 죽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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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보고 싶었어. 우리 얘기 좀 해. 할 말이 너무 많아. 나 할 얘기 있어. 지하철 타고 오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났어. 모든 것을 예전처럼 돌릴 수만 있다면... 엄마하고 아주 사소한 것들도 얘기할 거야. 전에는 말하지 못했던 것들도 있잖아. 내가 말 없는 건 엄마도 잘 알지? 근데 내가 엄마하고 얘기하고 싶은 것들을 모아보니까 100년은 걸리겠더라고. 젠장, 할 말이 100년이나 걸리게 많아."


엄마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은 후베르트는 기숙학교로 떠나는 버스를 타면서 엄마에게 자신이 내일 죽으면 어떡할거냐는 질문을 하고 뒤돌아선다. 엄마는 멀리 뒤돌아서 걸어가는 후베르트의 뒤에 말한다. 그럼 난 내일 죽을거라고. 기숙학교에서 탈출해 약을 먹고 집을 찾아온 후베르트는, 약기운에 횡설수설하며 엄마를 붙잡고 위와 같은 두서없는 감정들을 고백한다.


영화를 보며, 후베르트와 엄마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한 가지 단어로 정의하는 건 불가능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증'이라는 단어도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후베르트는 게이이다. 하지만 후베르트는 엄마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다. 결국 후베르트의 애인인 안토닌의 엄마를 통해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엄마는, 후베르트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그렇게 서로 소리지르면서 싸우는 때로는 미운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리 미울 때가 있어도 결국 부모는 자식이 궁금하다.

 

엄마와 대화하기 싫어서 엄마가 죽었다는 거짓말까지 했던 후베르트의 마음 한편에는 엄마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대화들이 가득 차 있다. 후베르트를 키우기 벅찬 엄마는 후베르트가 죽으면 다음 날 죽을 거라고 말한다.


너무 미웠다가, 미안하고, 또 싫었다가도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사랑하는 것 같고. 후베르트의 독백 중 '엄마를 사랑하지만 아들로서의 사랑이 아니다' 라는 말이 이런 감정을 잘 설명해준다. 이 대사에서 우리는 내가 엄마의 자식이 아니었다면, 엄마랑 이런 일로 싸울 필요도 없고, 엄마라는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자조적인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엄마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상대방을 오로지 '사랑'만 할 수는 없다. 사랑과 증오는 공존할 수 있다. 후베르트의 독백신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이것은 모순이다. 자신의 엄마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지 않을 순 없다는거." 엄마와 후베르트 모두 서로를 사랑하니까, 그래서 상처받고 실망하고 화내는거다. 이렇게 화내고 소리쳐도 결국 서로의 옆에 서로가 있을 걸 아니까, 가끔은 그래서 더 미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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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어쨌든 가족은 서로 사랑합니다' 라는 교훈같은 메세지를 주는 영화가 절대 아니다. 영화는 기숙학교에서 탈출한 후베르트가 '나와 대화하고 싶다면 나의 왕국으로 와' 라는 쪽지를 남기고, 엄마가 그 장소를 찾아가 후베르트를 마주하고, 모자가 같이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뒷모습만을 보여주며 끝난다. 후베르트와 엄마 사이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고, 두 모자가 이제 무슨 얘기를 나눌지 관객은 모르는 상태로 그렇게 끝난다. 후베르트와 엄마는 앞으로도 지겹게 싸울 수도, 오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될 수도, 영영 멀어져 버릴수도 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현실에서의 사람 간의 이야기처럼,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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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죽여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네 속에 있는 너이다. 그것을 마스터하는 것이 예술이다. 우리는 훌륭한 예술가인가?"

 

머릿속으로 내가 미워하는 엄마를 수없이 죽이고, 그런 나 자신을 수없이 죽이면서 후베르트는 성장할 것이다. 그렇게 수없이 내가 미워했던 타인의 모습과 나 자신을 죽이다 보면, 미숙하게 분출했던 애정과 증오를 보다 성숙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된다.


"엄마는 날 원한 게 아니다. 엄마는 날 짐처럼 생각했고,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뿐 평범한 삶을 원하겠지." 라는 대사처럼, 엄마도 후베르트도 서툴러서 그렇다. 영화는 이런 서투름이, 행복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은 관계도 다 괜찮다는, 덤덤한 공감을 건낸다. 가족은 힘이자 짐이라는 말처럼, 때로는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도 괜찮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없어도 괜찮다, 라며 금기와도 같았던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라는 말에 대해 면죄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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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난 후 감독인 자비에 돌란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칸의 총아'라는 헤드라인을 달고 다니며 천재라는 찬양과 과대평가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는 자비에 돌란은, 20살이라는 엄청나게 어린 나이에 감독으로 데뷔했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젊다. 필자는 <탐엣더팜> 이라는 영화로 자비에 돌란의 작품을 처음 접했고, 이 영화가 너무 좋아서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를 모두 찾아보게 되었다.


영화는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매우 주관적인 예술이다. 남들의 비평과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고 몰입했던 영화라면 '좋은 영화'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자비에 돌란의 감각적인 화면과 색감, 그가 대사 대신 배경음악을 통해 전하는 감정선,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격한 감정이 좋다. 사람들 간의 '감정'에 주목하고, 완벽하지 않은 가족들을 바라보는 자비에 돌란의 시선이 좋다. 그에 대한 비판이나, 칸 영화제에서의 수상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자비에 돌란의 영화가 그려내는 삶의 모습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세계를 만들고, 그 매력적이면서도 불안정한 세계로 관객들을 초대하기 때문이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는 자비에 돌란의 영화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모두 담겨 있는 영화다. 자비에 돌란의 최신작들은 <아이 킬드 마이 마더>의 후베르트 보다는 조금 더 철이 든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자비에 돌란의 모든 필모그래피 중 그의 미성숙함과 젊은 패기, 그리고 스크린에 대한 욕심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영화이며, 그만큼 커다란 에너지가 담겨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후베르트의 남자친구인 안토닌은 후베르트의 기숙학교 탈출을 도와준 이후, 그를 차로 태우고 오면서 말한다. 엄마랑 싸우고 나한테 징징대는 너는 너무 지겨워! 이제 너가 불쌍하지 않아- 라고. 하지만 직후에 안토닌은 후베르트에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영화가 하고싶었던 말이 바로 저 장면에 담겨있다.

 

밉지만 사랑해, 사랑하지만 미워, 나는 둘다 해. 우리의 삶과 관계가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

 

 

[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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