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리 바빠도 설탕 토스트는 못 참아 [음식]

눈코 뜰 새 없어도 마음만은 나누며 살고 싶은 우리를 위해
글 입력 2021.10.1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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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9월 초의 어느 날 밤. 나는 사랑니를 막 빼고 ‘찐친’ 동기 영빈이네 집에 놀러 갔다. 학창시절에 요리를 배우고 싶어 했다던 영빈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내게 뭔가를 만들어주겠다고 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하필 사랑니를 뺀 그날은 내게 이렇게 물었다.

 

“맞다. 내가 설탕 토스트 해줄까? 야, 이거 완전 맛있어. 내가 진짜 잘 구워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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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라면이 아닌 먹을 것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래서 말할 것도 없이 ‘콜’을 했고, 영빈이는 특별한 손님을 위해 엄청나게 기발하고 맛있는 요리를 시작하려는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신나게 코앞에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후라이팬과... 설탕, 식빵을 꺼내고... 솔직히 아무리 봐도 그냥 냅다 굽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조리시간 사이에 탄내도 조금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부터였다. 내가 영빈이만 보면 “영빈아 집에 식빵 있냐?”라고 물어보게 된 것은.

 

그래서, 그 설탕 토스트가 도대체 뭐 그리 특별했기에 그러느냐고?

 

 

 

기분 좋은 교류의 빌미



설탕 토스트처럼 원래 맛있을 수밖에 없으면서도 간단한 간식이 또 어디에 있을까! (설탕 토스트는 까짓것 조금 태워먹어도 맛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영빈이의 레시피에는 특별한 점이 단 하나도 없다. 어느 날에는 그 레시피가 너무 궁금해서 만드는 법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데, 식빵의 출처는 편의점이었고 영빈이는 설탕이 무슨 상표인지도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그저 있는 후라이팬을 달구고, 있는 설탕을 녹여가며, 있는 식빵을 앞뒤로 적당히 구웠을 뿐. 심지어 자취하는 대학생 집에는 버터도 잘 없다. 내가 찾아갈 때마다, 영빈이는 정말 ‘냅다’ 토스트를 구워왔던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토스트에 별게 없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걸 그렇게 맛있다며 찾아다닌 특별한 이유는 딱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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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토스트 하나면 우리가 밤마다 얼굴을 보고 근황을, 하루를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맛있을 수밖에 없는 간식 하나를 후라이팬 달궈 굽고, 감탄하며 함께 먹기만 하면 끝. 그렇게만 하면 기분 좋고 시시콜콜한, 어느 날에는 진지하고 솔직한, 그런 대화를 나눌 준비가 끝난다. 어떤 느낌으로든 진심으로 마음이 가까워질 수 있는 소중한 대화의 빌미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이 없다고 우리가 만날 수 없거나 대화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톡을 수시로 주고받고, 코로나19로 지금은 뿔뿔이 흩어진 동기들과 가끔 (한해에 많으면 다섯 번) 모이기도 하고, 같은 공동체 안에 속해 회의도 하고. 그렇지만 새내기 때부터 함께 다니다 지금은 한 동네에 살고 있는 동기를 그런 식으로만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 더 시간을 내고 노력을 들여 ‘너를 보려고, 너랑 이야기하려고 나왔다’는 정성의 제스처를 나누고 싶었다. 게다가 그런 마음이라고 우리가 매일 만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우리는 하루 14시간씩 서로 다른 바쁨을 겪는다. 그러면서도 관심과 힘을 기울여 유지해야 할 또 다른 관계들도 수두룩하기에, 우리는 설탕 토스트를 빌미로 시간을 ‘내서’ 얼굴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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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럼 한 동네에 사는 사이면서도 그냥 카카오톡으로 얘기해도, 회의 때 봐도, 나중에 만나도 괜찮은 것처럼 되어버리니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서로가 보통 무엇을 하며 그 14시간을 보내고 사는지, 요즘에는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며 지내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면서 그런 줄도 모르게 되어버린다. 눈앞에 두고도 말이다. 그런데 설탕 한줌과 식빵 몇 조각, 그리고 5분만 있으면 그런 소홀함 대신 우리의 기분 좋고 소중한 교류가 성사될 수 있다니, 정말 가성비 괜찮지 않은가?


 


서로를 가득가득 보듬어주기에는 너무 바쁜 우리



SNS와 더불어 한껏 피어오르고 있는 온택트 문화에 아이러니하게도 만남과 제대로 된 대화로부터 더욱 멀어진 우리는, 사실은 그것을 모르는 듯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 만남의 알맹이와도 같은 순간을 이끌어내기까지의 시간. 그 시간들은 메신저 하나, 전화 한통으로 자연스레 퉁 쳐진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 모든 게 퉁 쳐지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만남의 알맹이와도 같은 순간,’ 그것을 온라인상에서 온전히 이끌어내는 것은 아직 어려운 감이 크다. 그런데도 자꾸만 직접적인 만남 대신 온라인을 선호하게 되는 것은 오로지 이 시국만의 탓이자 트렌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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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고 미숙하다는 핑계를 댈 수 있는 집단이 점점 사라져가는 몸과 마음,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원해오는 상황들에 우리는 뭐 하나라도 더 할 줄 알게 되어야 한다거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늘려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지낸다.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기 위해서든 그저 배운 대로 잘 살기 위해서든, 너무 많은 것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기도, 누군가에게 요구받기도 한다.


이는 MZ세대들이나 대학생만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설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두 배 이상은 더 살아온 엄마는 지금도 <메타버스의 시대>라는 책을 읽으며 세상이 알아야 한다고 외치는 소재에 대해 공부한다. 나는 엄마에게 항상 돈 공부를 해야 한다는 잔소리를 듣는다. 아빠는 아빠보다 (나이가) 어른인 사람들의 사회생활을 배워나가고 있고, 영빈이는 어떻게든 혼자만의 힘으로 자취를 해내고 말겠다는, 그래야 한다는 어떤 마음이나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우리 모두는 그것만 할 수가 없다. 순수하게든 비지니스적으로든 대인관계도 원만히 다져야 하고, 어쩔 땐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마음도 베풀 줄 알아야 하고, 앞으로에 대한 생각도 멈추지 않아야 하고,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을 잘해내며 지내기도 해야 하고, 그래서 너무 바쁘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보면 돈에 대한 가성비 만큼이나 시간과 감정 등에 대한 효율성까지 미학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슬픈 일이다. 어느 날에는 아무리 그렇게 해도 벅참을 느껴 힘들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인생에서 그 무엇도 스스로 놓아버리고 싶지 않다. 내 또래들도 그럴 것이고, 우리 엄마아빠의 또래들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왜냐하면 그러기엔 우리와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아니까. 그래도 놓치고, 까먹고, 챙기지 못하고, 일인분 이상 하며 살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면, 소중하지만 마음만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누군가가 있다면, 자책과 체념만 하고 있지 말고 당신과 그 사람만의 소울 간식으로 ‘대화 만찬’을 한 번 차려보는 건 어떨까? 뜬금없이 전화 한통 걸어, 본론은 만나서 먹으며 이야기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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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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