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이 촉발하는 사유의 고통 -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이해되지 않는 아름다움처럼 때때로 즐길 만한 고통이기에.
글 입력 2021.10.1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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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뭐랄까, 굉장히 독특하다. 보통 독특한 것이 아니라 특출나게 독특하다. 내가 느낀 책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괴상하다 느껴질 수 있는 표지의 사진부터 시작해서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제목을 가진 것, 목차가 모두 물음표로 끝나는 질문임과 동시에 그것이 누군가에게 하는 날카로운 질문이라는 것 까지 모두가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형식이다.

 

그 어떤 책이 독자들이 기괴하다 여길만한 사진을 표지로 걸어놓는단 말인가? 어떤 작가가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을 목차로 선정한단 말인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예술에 관한 책이면서 어찌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뉘앙스의 말을 제목으로 채용한단 말인가.


굉장히 낯선 책의 모습에 한편으론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책에 담겨 있는 걸까, 어떤 내용이길래 목차의 질문들이 저리도 예리할까, 어떤 어두운 내용들이 담겨 있을까, 어떤 통찰과 시각이 세상을 훑어보고 있는 것일까. 그런 부담감이 있었던 탓인지, 한동안 책을 펼쳐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가가기 어려운 아우라가 있는 것 같았고, 책이 자신을 열어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무언가를 한가득 담아둔 상자를 앞에 두고 고민하는 판도라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두려움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상황과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보이는 상자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는 판도라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상자를 열어버린 판도라.

 

나 역시 그런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기에 멀리 두었던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마음을 다시 재정비하고 그 위험하기 짝이 없는 책의 세상으로 날 내던졌다.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표1.jpg

 

책의 내용은 내가 생각한 만큼의 어두운 내용들을 주요 주제로 내세웠다. 예정된 죽음, 참혹한 전쟁의 현장, 약자와 강자로 나뉜 불평등, 빈민들이 가득찬 도시, 누군가에 의해 함부로 규정 당하는 사람들과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들, 지나친 학벌주의, 자기 부정으로부터 잉태된 어두운 단면, 경로를 벗어난 삶, 필멸의 상황 앞에서 본 영원성의 가치 등 어두컴컴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무서우리만치 날카로운 목차는 그런 어두운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필시 반대편 사람에게 던질만한 질문들이었다. 왜?로 시작해서 그래서 당신은? 으로 끝나는 질문. 우리가 생각하고 싶지 않아할 질문들을 이 책은 과감하게 시도한다. 질문의 방향은 이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 향해 있다.

 

그런 낌새가 느껴졌기에 내가 그토록 책을 가까이 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보면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목차의 질문은 항상 나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챕터가 끝날때마다 질문에 답을 해야했다.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가 힘들었고 쉽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질 못했다. 조여오는 질문들에 속시원히 답을 하지 못하는 통에 머리가 갑갑하기도 했다. 숨이 턱 막히는 바람에 책을 얼마나 많이 내려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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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예술과 철학은 외형만 조금 다른 쌍둥이가 아닐까 싶다. 예술과 철학 둘 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아주 깊은 곳에 감춰진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들로 시작되는 질문 말이다.

 

예술 작품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거기엔 항상 기이한 철학적 질문이 숨어있다. 그것을 알아채는 것은 쉽지 않다. 예술 작품의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선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와 배경, 작가의 의도, 왜 이런 방식을 택해야 했는지를 모두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간단한 질문들만 접하고 사는 우리들에게 그런 다중복합적인 활동은 난해하고 낯설다. 이 책의 저자인 백민석 작가는 그것이 쉽지 않은 우리들을 위해 답하기 어려운 본질적인 질문 앞까지 우리들을 안내한다. 우리는 그의 안내를 받아 그 앞까지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 방식은 어쩌면 친절하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의 안내는 따뜻하지 않다. 오히려 차갑다는 표현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의 문체는 굉장히 냉철하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조금의 숨김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빠른 시간 내에 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감추고자 했던 질문들이 드러난다. 그것을 마주하고 나서야 우리는 깨닫는다. 아 이제 내 차례구나.

 

이제 그 질문을 어떻게 소화하느냐는 온전히 우리 몫이다. 그냥 다시 묻어두어도 되고, 면밀히 살펴봐도 된다. 헌신짝 버리듯 던져버려도 되고, 보기 불편하다면 부숴버려도 된다. 하지만 그것을 보기 전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충격적인 장면을 보면 쉽게 잊을 수 없듯이, 충격적인 질문을 대면하고 나서부터는 그 질문에게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그 질문은 필시 고통이다. 하지만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아니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고통에 더 가깝다.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까 지레 짐작으로 '아플 것이다'라고 여기기에 느껴지는 고통. 그렇기에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 혼자 경험하기에는 너무 뜻깊은 경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길고 긴, 고통스런 과정을 많은 독자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추상회화를 읽어낼 수 없다.

우리는 그 대신 자신을,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의 언어를 읽어내고 사유하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 일을 즐긴다.

예술이 촉발하는 사유의 고통은, 그 예술의 이해되지 않는 아름다움처럼 때때로 충분히 즐길 만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무해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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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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