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월의 길목에서 마침내 들여다본 나. [사람]

글 입력 2021.10.0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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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월이 마침내 왔다.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면서 여름의 강렬한 더위는 본격적으로 나를 찾아왔다. 비대면 학기를 본가인 창원에서 마무리하고, 서울 자취방으로 떠나온 동시에 도착한 여름의 더위는 나를 말 없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의욕은 사라지고 힘이 없어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름 내내 불필요한 얘기들을 자꾸 지우게 되었다. 그러다가도 자주 멈칫하며 서성였다. 나조차 나의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면, 머물던 곳에서 떠날 때 내가 대체 어떤 기억과 형태로 남게 될까 하고. 그렇게 고민하다가도 결국에는 모두 지워버리고 말았다.


가끔 강렬한 더위와 만나게 될 때면 평범한 일상도 버거워지곤 했다. 이를테면, 작은 방에서 홀로 쓸쓸히 견디는 더위는 가짜 식욕을 만들어낸다. 배가 그렇게 고프지 않은데도, 정신을 차려 보면 혼자 달그락대며 무언가 한가득 만들어 씹고 있다거나. 이럴 땐 매운 걸 먹어야 한다고 소리치며, 잘 먹지도 못하는 매운 라면을 끓여놓고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린다거나.


풀려버린 긴장감 또한 그랬다.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에어컨을 켠 다음,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쐬면 분명 세워 둔 계획들과 데드라인이 정해진 업무들이 많은데도 몸은 어느새 이불 속에 폭닥. 너무나도 편안하게 안착되어 있었다. 아주 조금만 몸을 기울여 등만 끄면 금방이라도 잠이 들 수 있는, 아주 스릴 있고 긴장감 넘치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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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주쳤던 여름의 노을

 

 

여름 풍경들 또한 그랬다. 여름의 노을은 그 어떤 풍경보다 따뜻하고, 빠르게 번져 마음을 진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런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여름 내내 커튼을 단단히 쳐 놓았다. 어두운 방에서 스탠드를 켜면 방 안에는 환한 외로움이 가득했다.

 

장마가 끝났을 때, 밖엔 구름이 떠다니고 햇볕이 따사로웠다. 하늘은 고개를 들어 밖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파랬다. 함께 있던 친구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웃고 있는 친구는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 애의 두터운 맑음이 부러웠다.

 

날씨에 기분이 좌우될 수 있는 단순하고 확실한 행복을 가진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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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바라보며 행복해 했던 여름의 한 장면.

 

 

순간들이 나를 적셔 올 때면, 보통은 찬물 샤워로 정신을 구해내고,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무력함이 달아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번 여름엔, 유독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자주 졌다. 게으름을 부리며 포기한 것도 많고, 힘이 든다는 이유로 끝까지 해내지 않고 도중에 그만둔 것도 많다. 이번 여름에 내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은 것에는 그 이유 또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글을 쓸 때면 자꾸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글 속에 등장하는 내가 너무나 많은데, 나는 ‘나’를 나열해 놓을 뿐 돕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분명, 항상 나와 함께하고 있는데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여름은 핑계에 불과했으리라. 나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돌보는 것을 회피하고 있었다. 여름이라는 커다란 영역에 숨어서, 그것을 스스로의 방패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여름은 가고 있다. 시월이 도착했고, 더 이상 핑계 삼을 여름의 흔적들은 점점 사라져 간다. 며칠 전부터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주말을 맞아 옷장을 열어 얇은 옷들과, 반팔 티셔츠, 반바지들은 모두 안쪽으로, 가을 옷들은 꺼내기 쉬운 바깥쪽으로 차곡차곡 정리해 놓았다. 샌들과 여름 구두들도 신발 박스에 넣어 신발장 구석에 놓고, 부츠와 운동화들을 앞쪽으로 진열해 놓았다.


그리고, 계절이 변했으니 이제는 여름이라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나 또한 가을을 맞이하러 나올 시간이다. 지난주, 아트인사이트 대표님과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에디터 활동이 한 달 정도 남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남은 기간 동안 어떤 글을 써야 좋을지 생각하다가 남은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이번 가을은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보낼 작정이다. 가을 그늘 아래 숨지 않고, 가을의 쓸쓸함에 외로워하지 않고, 최대한 가을을 즐겨 볼 생각이다. 나를 더 사랑 해주고 , 나를 더 들여봐주고, 나를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나를 위해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그것을 토대로 나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게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가 보려고 한다.

 

 

[이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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