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엄 산, 휴식이 필요할 때 나는 미술관에 간다. [미술/전시]

글 입력 2021.10.0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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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뮤지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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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오래 기다려온 ‘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뮤지엄 산은 작품을 감상하고 머무르는 미술관이자 풀숲, 그 뒤로 이어진 산의 풍경과 매끄럽게 어우러지는 자연의 공간이다. 몇 년 전, 사무실 책상 위에 쌓여가는 잡지 속에서, 나는 한 사진에 마음을 빼앗겼다.


모 브랜드의 홍보팀으로 일하던 나는, 다양한 잡지를 정리하곤 했다. 매달 수십 권의 잡지가 며칠을 간격으로 도착했고, 책상엔 매번 잡지로 만든 산이 높아져만 갔다. 소속 브랜드와 경쟁사가 내놓은 신제품, 트렌드를 빠르게 훑어보는 중간중간, 좋아하는 인터뷰와 기사를 조금씩 찾아 읽었다. 새로운 전시와 아티스트, 미술관 소식을 다룬 기사를 빼놓지 않았다. 나중에 더 집중해 읽어보기 위해 쪽수를 다이어리에 적어 두곤 했다.


그중에 가장 마음 깊이 남은 건 ‘뮤지엄 산’이라는 공간이었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다가, 그 존재를 알고 산길을 따라 깊숙이 달려온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공간 같았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건물이었지만, 자연과 부드럽게 이어지는 모습이 좋았다.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공간, 산속에 숨겨진 미술관, 뮤지엄 산에 꼭 가보고 싶었다.

 

 

 

안도 다다오: 빛과 조화를 그린 건축가


 

 

나는 건물 본체뿐만 아니라, 부지 전체를 Museum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여기에 와서 하루를 보내면 자연과 예술에 대한 감성이 풍부해져,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곳 말입니다. 그런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 안도 다다오

 


뮤지엄 산을 설계한 안도 다다오는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인에게도 가장 사랑받는 건축가 중 한 명이다. 몇 년 전 그의 이름을 딴 영화 <안도 타다오: 현대 건축의 거장>가 개봉되기도 했다. 영화를 통해 그의 삶을 알 수 있었다. 안도 다다오는 건축의 꿈을 품고 홀로 건축을 공부하다, 유럽으로 건축 여행을 떠난다.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에 스미는 선명한 빛에 매료된 그는 오사카로 돌아와 ‘안도 다다오 건축 연구소’를 설립한다. 그 후, 그의 작업의 중심엔 ‘빛’ 그리고 ‘조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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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The New York Times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사카의 ‘빛의 교회’에서 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예배당에 들어서면, 어둠 속 정면의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 빛만이 공간을 밝힌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십자가 모양으로 뚫린 틈을 통해 작지만 강한 빛을 들어온다. 그 빛은 신성함이 깃드는 종교적 공간을 탄생시킨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예배당의 겉면은 언뜻 인위적일 것이라 생각되지만, 주변을 해치지 않고 나무와 함께 자라는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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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조화에 대한 그의 애정은 뮤지엄 산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관람자는 컬렉션을 감상하기 앞서, 건물을 관찰하게 된다. 안도 다다오의 손길이 닿은 건물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설계에 편안하면서도, 한 번에 그 구조를 가늠하기 어렵다. 함께 간 친구의 말처럼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매번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실내에 비치는 빛의 굴절과 건물의 기둥, 계단, 외부 정원, 그 모든 것의 각도를 섬세히 계산해 설계한 결과다.

 

그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창조한 예술은 하나가 된다. 건물을 둘러싼 워터가든과 산의 풍경은 자연의 감각을 전한다. 동시에 건물을 둘러싼 붉은 아치를 비롯한 조형물, 예술 작품들은 자연과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오늘의 전시: 식물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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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외관을 충분히 구경하고 안으로 들어서면 《Spielraum X Phytology_식물의 방》 전시를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일상성의 회복’이라는 키워드를 말하고 있었다. 뮤지엄 산을 둘러싼 공간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식물과 우리의 삶을 빗댄 이야기였다. 긴 기다림의 시간을 버티고 마침내 꽃과 열매를 맺었다가 시들어 생을 마감하는 식물의 삶. 그 삶 속에서 우리와 비슷한 면을 발견하고, 위안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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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희 <나뭇잎 일기>, 사진 출처: 뮤지엄 산

 

 

허윤희 작가의 <나뭇잎 일기>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 작은 탄성이 터지는 모습이었다. 날마다 나뭇잎을 하나씩 수집하고, 그날의 생각과 마음의 상태를 기록한 작품이었다. 작품 옆에 적힌 소개 글은 더 좋았다.

 

‘소유하고 남기기보다는 존재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이 순간에 집중해 더 생생히 살아있고 싶다.’

 

가끔 일기를, 사진을 가득 남기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지 고민이 든다.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기록하는 게 좋을지, 과거를 너무 붙잡아 두면 곤란하니 자연히 흐르게 두는 게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기록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근원을 허윤희 작가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순간을 살고 싶어서 그토록 열심히 적고 셔터를 눌렀던 것일지 모른다.

 

푸른 잎사귀로 가득한 면과 노을 지는 가을의 나뭇잎이 만든 면, 그 자연의 모습도 좋았다. 하지만 기록하는 마음에 관한 작가의 철학이 담겨있어 더욱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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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길 <나뭇잎>, 사진 출처: 뮤지엄 산

 

 

전원길 작가의 <나뭇잎> 또한 인상 깊었다. 화면 위에 나뭇잎을 붙이고, 채색하고, 여러 번 덧바르길 반복해 손으로 만지는 듯, 질감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앞선 작품과 같이 나뭇잎을 주제로 하지만, 보다 동적이고 역동적인 인상으로 잠든 감각을 깨우는 작품이었다.


《Spielraum X Phytology_식물의 방》 전시에는 식물의 생명력이 가득했다. 피었다 지는 것이 식물의 숙명이지만, 탄생의 순간에도, 소멸의 순간에도 생명력이 존재했다. 그 힘은 때에 따라 강렬하기도, 미세하기도 했지만 삶의 어느 순간에나 존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년 3월 6일까지 이어지는 만큼 직접 방문해 식물에게 생명의 이야기를 들어보길 권한다.

 

 

 

뮤지엄은 확장된다: 제임스터렐관과 명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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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터렐, 사진 출처: Mot Times

 

 

뮤지엄 산에 방문한다면, 꼭 제임스터렐관과 명상관을 체험할 수 있는 통합권을 구매하길 추천한다. 나는 기획 전시와 상설 전시를 둘러본 후, 제임스 터렐의 전시와 명상관을 차례로 체험하는 코스를 따랐다.


안도 다다오의 건물에서 집중한 ‘빛’은 제임스 터렐의 작품에서 이어진다. 그의 작품은 사전 정보 없이 직접 관람해야 한다고 생각해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다만 빛을 두 눈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각을 통해 직접 머금고 체험할 수 있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가 선사한 빛 또한 정밀한 각도와 방향에 대한 계산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빛으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수학자라는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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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뮤지엄 산

 

 

이어서 명상관에서 휴식을 취했다. 돔 형태의 공간으로 들어가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고, 명상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친절한 안내에 따라 몸과 마음에 쌓인 긴장을 풀었다. 무엇보다 날마다 달라지는 자연의 소리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좋았다.

 

뮤지엄 본 건물과 제임스터렐관, 명상관은 서로 다른 건물과 체험이지만,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감각을 경험하고, 마음을 풀어주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전시만 보기보다, 여유롭게 공간 전체를 경험하길 추천한다.


뮤지엄 산에서 보낸 하루라는 시간은 짧다. 하지만 천천히 그 시간을 충분히 느끼며 보낼 수 있도록 동선이 구성되어 있었다. 분주한 마음으로 출발해도, 가는 길목에 자연의 풍경을 보면서 마음을 내려놓고, 도착한 후엔 여유를 찾고 자연과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 일상에서 잠시 쉬어가는 날이 필요할 때, 뮤지엄 산을 떠올리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한국경제, <'안도 타다오' 생각을 짓는 건축가> 기사와 뮤지엄 산 소개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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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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