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베를린 다다는 왜 부엌칼을 들게 되었나 (2) [미술/전시]

다다와 한나 회흐, <바이마르 공화국의 맥주배를 다다 부엌칼로 자르자>(1919-20)
글 입력 2021.10.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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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다는 왜 부엌칼을 들게 되었나> 1부와 이어집니다.

 

 

 

포토 몽타주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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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하우스만의 <예술 비평가>. 포토몽타주 기법을 활용한 베를린 다다 작품의 예다.

 

 

베를린 다다에서 활동한 한나 회흐와 라울 하우스만은 ‘포토몽타주 기법’을 통해 예술 활동을 전개했고 포토몽타주는 베를린 다다의 주요 기법으로 부상한다. 원형 그대로 존재하는 이미지를 잘라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원형의 해체로부터 새로운 의미 창조라는 과정 자체로 다다 정신과 맞닿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진이라는 매체는 당시 대량으로 복제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상징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사진을 잘라내는 행위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었다. 한나 회흐는 당시 베를린 다다의 주가 되는 ‘포토몽타주’ 기법을 창안한 예술가였다는 점에서 베를린 다다에 기여한 바가 크다.


당시 다다의 작품은 등장 그 자체로 기존의 미술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충격을 주는 사례가 많았다. 잘라 붙인 것들로 그로데스크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다다주의자들의 반미술에 대한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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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회흐, 인디언 댄서, 1930

 

 

그중에서도 한나 회흐의 포토몽타주는 이질성을 극대화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질적인 모습 그 자체로 조화를 이루는 회흐의 작품은 그 이질성으로부터 질문을 하게끔 유도한다.


<인디언 댄서>라는 위 작품은 당시 독일 사회와 회흐가 인식하고 있었던 결혼 제도의 불합리성을 고발하기 위한 작품이다. 사람의 것을 하고 있는 얼굴의 모습과는 다르게 눈, 입, 귀의 모양이 석상의 모습으로 정교하지 못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는 순종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여성상의 강요로 인해 제대로 볼 수도,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된 여성들의 처지를 말하고 있다. 전통적 여성상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작품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맥주배를 다다 부엌칼로 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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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회흐, 바이마르 공화국의 맥주배를 다다 부엌칼로 자르자, 1919-20


 

포토몽타주 기법으로 제작된 <바이마르 공화국의 맥주배를 다다 부엌칼로 자르자>는 베를린 다다의 대표작으로, 한눈에 보기에도 이질적이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당시 독일은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로 북적였고 회흐는 이 혼란스러운 시대의 모습을 자신의 작품 속에 포착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회상한다.


제목에서 주목해 볼 지점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맥주배’와 ‘다다 부엌칼’이다. 바이마르 공화국(1918~1933)은 빌헬름 2세가 퇴위한 후 새롭게 성립된 공화국이었고 1918년에 일어난 혁명의 결과물이었지만 한나 회흐가 목격한 것은 점차적으로 나태해지는 정부와 그들의 가부장적 태도였다.


독일에서 아랫배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는 ‘맥주배’는 곧 배불뚝이 남성을 칭했고,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맥주배는 배불뚝이 남성 정치인들의 부패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에서 독일의 정치적인 상황과 기존의 전통적 사고 방식인 가부장제를 동시에 비판하는 것은 다다이즘의 정신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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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세부) 좌측 상단에는 무용수 위의 케테 콜비츠 초상이, 우측 하단에는 참정권 관련 지도가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다 부엌칼’은 무엇을 의미할까. 앞서 소개한 것처럼 당시 회흐는 다다 그룹 내 동료 작가들의 여성혐오적인 태도와 여성을 독립적인 작가로 인정하지 않아 평가절하 되는 일을 일상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작품 내에서도 여성주의적인 메시지를 드러낸다.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부엌칼’은 여성을 상징하는 도구로 내세운 것이며 동시에 칼은 회흐가 포토몽타주를 위해 사용한 작업의 도구이기도 하다. 때문에 <바이마르 공화국의 맥주배를 다다 부엌칼로 자르자>는 바이마르 공화국과 가부장제, 다다 그룹을 비판하고 여권 신장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해석할 수 있다.


작품에는 dada와 anti-dada가 문구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빌헬름 황제를 조롱하는 이미지, 칼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등의 인물 사진이 등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조그맣지만 정가운데에 등장하고 있는 케테 콜비츠의 머리는 회흐가 당시 독일 여성 작가였던 콜비츠의 존재를 여성주의적 메시지와 함께 의식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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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의 사진

 

 

독일의 판화가로 알려져 있는 케테 콜비츠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겪는 부당함과 전쟁이 가져오는 참화에 관심을 갖고 <직조공들의 봉기>와 같은 대표작을 남기며 독립적인 작가로 활동했던 인물이었다. 반전 의식이 담긴 콜비츠의 작품은 지금도 반전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인용될 만큼의 호소력을 갖고 있고, 그녀는 당시 독일에서 최초의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던 여성이기도 했다.


한편, 작품 우측 하단에 있는 지도 이미지는 당시 참정권을 획득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에 표시가 되어 있는 이미지다. 당시 독일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얻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사안이었다.


여성 작가인 케테 콜비츠를 비롯한 여성 참정권이 획득된 나라를 표시하고 있는 지도 이미지는 여성 작가의 평가절하되는 처지와 나태해져만 가는 가부장제 기반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비판하며 예술과 정치 활동의 주체로 여성을 위치시키려 하는 시도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작품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여성 체조 선수나 무용수라는 점 또한 회흐가 여성들의 활동에 희망을 걸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전통에 반대한다는 다다이즘의 운동이 회흐에게는 남성 작가들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다다의 남성 작가들은 반예술을 주창했지만 때로 몇몇 예술가들은 반예술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여성 이미지를 도구화해 작품을 내놓곤 했고, 가부장적 메시지를 견고히 하는 방향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회흐는 기존의 예술에 저항함과 동시에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방향성으로 나아갔다는 데서 이들과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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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회흐, 강한 남자,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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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회흐, 어머니, 1930

 

 

1919년도 작품인 위 작품 이후로도 회흐는 보다 구체적인 방식으로 여성주의적 목소리를 낸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성인 남성성과 여성성, 즉 젠더에 대해 탐구하는 작품인 <강한 남자>를 제작하는가 하면 1930년도에 불거졌던 독일 낙태 합법화 운동과 맞물려 낙태를 둘러싸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는 <어머니>를 제작하기도 했다.


포토몽타주 기법의 창안으로 다다 정신에 기반한 반미술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온 것과 다다 운동 내에서도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보다 구체화시켜 결혼 제도, 젠더 이론, 낙태 합법화에 대한 통찰을 작품 속에 담아낸 것은 회흐가 이뤄낸 독자적인 업적이다.


‘다다 부엌칼’을 이용해 시대의 문제적인 현실과 모순들을 고발하는 회흐의 작품은 그 당시에는 평가절하 되었을지 몰라도, 현재에 와서는 현재에도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을 던졌던 역할을 하고 데서 회흐의 예술 활동은 높은 가치를 지닌다.

 

 

참고 문헌

김숙영, 바이마르 시대 한나 회흐의 미술_분절과 괴리

김정희, 한나 회흐의 포토몽타주 작품에 관한 여성주의적 성찰

 

 

[박이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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