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쓰고 있는 휴대폰의 유용한 기능 중 하나로 하루 동안의 걸음 수를 측정해주는 것이 있다. 그 날의 걸음 수를 숫자로 보여줄 뿐 아니라, 한 달, 1년 등의 평균치를 보여줘 내가 얼만큼 움직였는지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한번 걸음 수를 확인하기 시작한 이후로 습관처럼 들어가서 근래 얼만큼 걸었는지 확인하게 되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확연히 걸음 수가 줄어든 것을 느꼈다.
학교를 오가고 친구를 만나며 일정량을 매일 채우던 나의 걸음수 그래프는 작년 이후로 바닥을 찍어 도통 오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더이상 멀리 걷지 못하고 기껏해야 집 근방을 배회하는 나의 발걸음이 걸음수 그래프 안에 그대로 찍혀있었다. 자주 걷지 못하게 되며 오히려 이제껏 자연스럽게 행해왔던 '걷기'라는 이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걸음으로써 무엇을 얻고 있었나, 걸음이 제한되었을 때 나의 발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2020년 걸음 수 기록을 보면 코로나가 심해질 때마다 확연히 수치가 낮아진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내 ‘걷기'의 시작은 가족과 어릴 적부터 함께 했던 외국 여행에서였다. 타지에서는 길을 찾지 못해 도심 골목 골목을 걸으며 헤매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택시를 타는 것보다 시간은 더 걸렸으나 길을 잃고 헤매며 행인들에게 길을 묻는 그 때에 그 도시의 삶들을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며 쉬는 점원의 표정에서, 거리의 타일 위 얼룩에서, 가끔 마주한 길고양들의 앙탈에서. 그때부터 걷기가 정해진 교통수단으로만 시간에 급급하여 다닐 때는 보지 못하던걸 보게 해준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걷기에는 '지하철 8분, 환승 2분, 도보 4분'에서는 담을 수 없는 다채로운 향이 있었다.
걸을 때만이 만날 수 있는 그 도시의 민낯이 있다. 이를테면 볕이 좋은 날 저녁, 테라스에 모여 앉아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대학을 서울로 오게 된 후에는 처음으로 걷는 취미를 가져보았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는 지방 사람에게는 무섭기도 했거니와. 문화시설로 유명한 지역에 거주하게 되어 걷기만 해도 온갖 흥미로운 곳들을 다 방문할 수 있었다. 대학교 1학년의 패기와 체력을 기반으로 서울 곳곳에 내가 걸은 시간들이 쌓여갔다.
한 번은 동생과 상수에서 명동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다. 서울 시내를 걸어 우리가 최대한 갈 수 있는 곳으로 가보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여름에 접어드는 계절이어서 곧 땀이 났지만, 힘들면 시원한 카페에 들리거나 멈춰서 밤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조금씩 더 먼 곳으로 걸어갔다. 차로의 시끄러운 경적 소리에 익숙해졌을 때 즈음,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르게 환한 명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생이 때마침 명동 성당이 궁금하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촌놈 2명이서 처음으로 명동성당을 방문해 사진도 찍었다. 돌아가는 길은 한결 느리고 다리가 무거웠지만 나의 두 다리만으로 견문을 넓혔다는 뿌듯함 또한 함께였다.
그 이후로 바쁜 1학년의 시간표 속에서 기회가 닿는대로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을 타려다가도 발걸음을 돌려 40분을 걸려 집에 걸어갔고, 친구를 설득해 다음 목적지까지 버스를 타는 것 대신에 걸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걸으며 나름 애정하는 길이 생겼다. 이를테면 6호선에서는 삼각지에서 이태원으로 가는 방향의 길에 커다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이 있어 종종 근방에 약속이 없더라도 이 길을 걷기 위해 향하게 되었다. 무작정 내딛는 걸음들이 나의 세계를 확장시켜 주던 때였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길이다. 삼각지역 부근의 쭉 뻗은 산책로.
광화문을 걸으면 우리나라 수도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1학년을 벗어나 대학생활에 익숙해지고, 자주 다니는 길들의 풍경 또한 눈에 익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때부터는 걷고 있는 나의 두 다리의 보폭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혼자 걷는 것의 장점은 상대의 속도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속도는 상대적이다. 동행인이 있거나 목표지점이 생겼을 때 나의 발걸음은 빠르거나 느리다는 상태를 지니게 되지만, 홀로 걸을 때는 오직 나만이 기준이 되므로 속도가 사라진다. 느리거나 빠르다고 평가되지 않은 채로, 내가 나의 다리를 움직여 원하는 곳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그런 상태.
한강 근방으로 이사를 한 후에는 보행자를 위한 길이 잘 갖추어져 있는 한강 산책로를 애용하게 되었다. 한강 산책로에는 각자의 이유를 안은 채로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 새벽에 가든 낮에 가든 한밤중에 가든 그들은 늘 있었다. 짐을 허름한 자전거 뒷칸에 싣고, 한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달리는 할아버지. 딸과 산책하러 나온 중년의 남성. 휠체어에 누워서 다리로 휠체어를 움직이며 달리는 노인. 업무 통화를 하며 걷고 있는 사람. 입시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것일까, 학생도 자주 보인다.
그리고 꽤 많은 외국인들도 보인다. 한강 산책로에서만큼은 그들도 ‘외국인’의 신분을 조금은 던질수 있지 않을까 가늠해본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결국, 자연을 보며 건강을 키우기 위해 함께 달리는 사람들.
같은 한강일지라도 상수, 망원, 여의도 모두 품은 분위기가 다르다.
모두가 각자의 페이스대로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는 한강 공원.
물론 완전히 평등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걷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평등한 행위 아닐까. 걷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각자의 속도로 걸을 수 있다. 그것이 세상에게 큰 방해가 되지도 않고, 세상도 내가 걷는 것에 큰 방해를 하지 않는다. 초보운전이 붙은 차를 보게 되면 답답함을 반사적으로 느끼게 되는 운전과 달리, 우리는 어린 아이가 서툴고 느리게 걸어가고 있어도 신경쓰지 않는다. 나보다 느리게 걷는 사람에게 빵빵거리며 재촉하지도 않는다. 서로 약간만 몸을 비틀고, 각자 갈 길을 갈 뿐이다.
그렇게 걷는 것의 미학에 중독된 이후로 내 주변의 속도에 버거워 질 때, 속도를 잊고 예상치 못했던 존재들을 만나고 싶을 때 밖으로 향했다. 한강으로, 삼각지로, 광화문으로. 많은 준비물도 필요하지 않았다. 휴대전화와 지갑, 그리고 걷겠다는 마음만으로 걸을 준비는 끝났다.
코로나로 많은 것들이 멈춰섰다. 길을 걸어도 좀처럼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며, 마스크는 다양한 공기를 맛볼 기회를 앗아간다. 그러나 어떠한 것들은 여전하다. 계절의 변화에서 느껴지는 온도의 차이, 한강변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직장인들의 빠른 발걸음, 비둘기들, 그리고 나의 두 다리.
사실 코로나는 핑계였고, 더이상 새로운 것을 만나길 주저하며 익숙한 루틴 속에서만 머물기를 좋아하는 대학교 고학년의 성향이 걸음수 그래프 속에서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지치고 바쁘다는 핑계로 나의 걸음은 어느 순간 정해진 반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코로나는 계속되고 있고 그 속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더이상은 불안함을 핑계로 나의 울타리 안에 숨을 수 없다. 간만에 저녁을 먹고 날씨를 확인한다. 비소식은 없다.
다시, 걸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