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먼지 쌓인 필름 카메라를 꺼내 보았다 [사람]

글 입력 2021.09.28 05: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IMG_6030.JPG

 

 

아주 어린 시절에 아빠는 커다랗고 까만 니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시곤 했다. 주말에 외출을 하는 날이면 카메라와 탈부착 후레쉬, 그리고 삼각대는 우리 가족의 나들이 필수 지참 품목이었다.

 

하지만 필름 카메라의 입지는 곧 위태로워졌다. 우리에게는 가볍고 간편한 디지털카메라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차고 넘칠 만큼의 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한 시절의 추억과 나의 유년 시절의 기록을 관장하고 있던 니콘 카메라는 거실 서랍장 구석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잠들게 되었다.

 

요즘 필름 카메라가 다시 유행이라던데.

 

좌측을 기준으로 세 번째 서랍장, 여느 때처럼 자리하던 필름 카메라가 유독 눈에 띄었던 날이 있었다.

 

이제는 오프라인에서 필름을 구매하기도 쉽지 않아졌다. 동네와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사진관도 들러보았지만, 더는 필름을 판매하거나 따로 필름을 받아 인화하시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누구도 찾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제는 증명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인화하는 것만으로 동네 사진관의 역할이 축소된 셈이다.

 

 

IMG_6031.JPG

 

 

결국 인터넷으로 필름을 두 롤 구매했다. 그리고는 아빠의 어깨너머로 보았던 기억을 더듬어 카메라를 조작해보기를 시도했다. 유튜브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카메라를 열고 필름을 갈아 넣을 수 있었다. 한쪽 눈을 감은 채 뷰 파인더를 통해 집안 곳곳을 훑어보았다.

 

서랍장에서 잠들었던 세월만큼의 야속함을 토로하는 듯 카메라로 끼어든 먼지들이 아우성쳤다. 그 먼지들은 뷰 파인더와 렌즈 사이가 마치 시간을 넘나드는 창구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익숙한 집안 곳곳은 뷰 파인더를 통해서라면 20여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었다.

 

필름을 갈아 끼우고, 조작법을 익히고 난 뒤, 무작정 카메라를 걸쳐 메고 바닷가로 향했다. 집에서 한 시간이면 근처 서해에 이를 수 있었기에, 바다에서의 일몰을 가장 먼저 담고 싶었다. 매일 같이 맑은 날들이 이어지더니, 꼭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 하루는 종일 흐렸다. 일몰을 볼 수 있을까, 이 오래된 카메라가 온전히 역할을 다 해 줄 수 있을까, 걱정하며 그렇게 바다로 향했다.

 

해가 저 멀리 해안선에 가까워져 올수록 하늘은 분홍빛으로 물들어갔다. 붉고 선명하게 타오르는 하늘은 아니었으며, 낌새 없이 일순간 어두워지는 일몰도 아니었다. 요즘 같은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잔잔한 분홍 하늘이 서서히 바다로 잠겨 들었다.

 

 

IMG_6041.JPG

 

 

일몰은 참 아름답다. 태양은 곧 잘 이상향이나 목표 따위의 것들로 비유되고는 한다. 반대로 지평선과 수평선은 현실 세계나 현재와 같은 것들로 쉬이 상징되곤 한다. 그런 이상과 현실이 맞닿는 순간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색채와 풍경을 띤다. 일몰은 그래서 아름다운 걸까.

 

한 장 한 장 찰칵 소리와 함께 한 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필름.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남겨진 필름 컷을 계속해서 세어보았다. 카메라엔 과연 어떻게 남겨져있을지가 궁금해 두근거리기도 했다.

 

느리고, 비싸고, 흥미로운 취미가 하나 더 생겼다.

 

 

 

장현채.jpeg

 

 

[장현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