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만춘(晩春) - 봄이 지다 [영화]

흘러가는 딸과 아버지의 시간
글 입력 2021.09.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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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명작 <만춘(晩春), 1949>의 국내 제목은 <늦은 봄>이다. 해당 작품의 영어 제목이 'Late Spring'이었기에 그러하지 않을까 싶지만, 최근 영화의 제목 속 '晩(만)'자에 대해 생각해보며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위 한자는 사전 검색 시 '늦을 만'자로 우선 표기되지만, 좌측의 '日(해 일)'자가 보이듯 본래 해가 저문다는 의미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늦다는 뜻 외에 '저물다, 늙다, 쇠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늦은 봄이라는 영화의 국내 제목이 '저무는 봄'(혹은 그와 유사한 이름)이었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늦은 봄은 왠지 여전히 봄이란 시간 속에 머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 끝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작품보다 다소 밝은 느낌을 주지 않나 개인적인 의견을 밝혀본다. 물론 해당 작품이 절망적인 내용은 아니겠으나, 아버지와 딸로 이뤄진 2인 가족의 시간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내용임은 분명하다. 영화 <만춘, 1949>은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가 된 56세의 교수 소미야와 27살이 되며 결혼할 나이가 된 그의 딸 노리코의 모습을 그린다. 소미야 교수는 딸의 결혼을 권하지만, 노리코는 자신이 결혼한 뒤 홀로 남을 아버지가 걱정되어 결혼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영화의 주된 모티프는 나아감이며 흘러감이다. 달려가는 기차가 이를 잘 보여줄 것이다. 영화 속 노리코와 소미야 교수를 태운 기차는 계속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멈춰 선 그들을 볼 수 있는 곳은 기차의 객실 안이다. 역에서 기차가 멈춰서길 기다리는 두 사람의 모습 또한 부재하며, 객실에 가만히 서거나 앉아있는 부녀의 모습과 움직이는 기차의 모습이 교차편집으로 제시되는 것 또한 어떠하든 나아갈 수밖에 없는 시간을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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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결혼을 거부하는 노리코의 행위는 역행적이다. 노리코는 러닝타임 내내 아버지와 고모는 물론, 이혼한 친구에게까지 빨리 결혼하라는 말을 듣지만, 자신은 결혼하지 않겠라고 답한다. 최후 결혼을 결정짓게 되지만, 그 역시 고모의 재촉에 수동적으로 '네'라고 답하는 식이다. 그리고 결혼을 받아들이기까지 그녀는 아버지의 조수 핫토리의 결혼은 물론 동창들의 결혼 소식이나 아이들에 관한 얘기를 듣는다. 순행하는 시간의 흐름을 목격하는 셈이다. 이렇게 결혼을 피하는 노리코의 모습은 마치 봄을 연장하는 듯하다. 말 그대로 늦어가는 봄, 늦은 봄이다. 결혼 후 아버지와 집을 벗어나 새로운 사람(남편)과 새로운 생활을 열어가는 것은 늦춰가는 것이다.

 

노리코의 행위는 그저 본인만을 위하는 일이 아니다. 사실 그녀가 붙잡고 싶은 시간은 아버지의 시간이다. 영화 속 두 사람이 서로를 극직히 아끼고 걱정하는 점을 미뤄볼 때 그녀의 행위는 아버지 소미야 교수의 시간을 연장하려는 목적 아래 있다. 자신이 봄에 머문다면 아버지 또한 다음 계절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바로 그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자신의 시간으로 아버지의 시간이 쇠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지이다.

 

그러나 소미야 교수는 노리코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계속 결혼을 권한다. 계절이 바뀌듯,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재혼이라는 말을 올리면서까지, 딸의 걱정을 물리치고자 하며 노리코를 시집보내고자 노력한다. 당연할지 모르겠으나 소미야 교수는 노리코의 마음을 진작 눈치챘을 것이다. 다만 그는 이제 자신이 겨울을 맞이해야만 함을, 그리고 노리코의 봄이 길어지더라도 자신의 시간이 언젠가 끝에 다다를 것을 알고 있다. 조금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인정의 차이다. 저물어가는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두 사람의 태도를 만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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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후반부로 흐르며 노리코는 결국 선을 본 뒤 아버지와 고모의 권유에 따라 결혼을 결정한다. 그리고 결혼 직전 부녀는 교토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 짐을 정리하는 와중 노리코는 사실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내심을 털어놓는다. 결혼을 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행복해질 자신이 없다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노리코의 고백에 소미야 교수는 도리어 결혼을 한다고 처음부터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답한다. 그는 오히려 그런 생각이 틀렸음을 지적한다.

 

이어 소미야 교수는 딸에게 행복이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설명한다. 그는 결혼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결혼 이후 인생의 과정에 행복이 있다는 그의 경험을 딸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결국 노리코는 그런 아버지에게 억지를 부린 것을 사과하며, 소미야 교수는 이런 얘기조차 시간이 흘러 추억이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렇게 딸과 보내는 마지막 여행 속에서도 아버지는 시간이 흘러감을 받아들이고 있다. 노리코의 고백과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는 소미야 교수의 위 대화 직전 등장한 중의적인 대사들 역시 이런 아버지의 경험을 대변할 것이다.

 

소미야 교수는 짐을 정리하며, "시간이 빠르네.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간다니."라고 말한다. 그러자 노리코는 "데모 도떼모 타노시캇타 교토"라고 답한다. 정말로 교토 여행이 즐거웠음을 의미한다. 직후 소미야 교수는 자신도 즐거웠다는 말 대신 "다행이다, 좋다"라는 의미의 "요캇타요"를 말하며 희미하게 미소짓는다. 그가 말한 대사(요캇타)는 명사로서 '용무를 다하기 위한 역할'을 뜻하기도 한다. 즉 노리코의 말은 교토 여행에 대한 것일지라도, 소미야 교수의 말은 지금까지 노리코를 키우며 살아온 시간에 대한 그 나름의 소회를 품고 있다. 이제 와 살펴보니 딸을 키우며 살아온 시간이 너무나 빨랐음에, 그리고 함께하는 둘의 마지막에 만족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로서 역할을 다 했음에 보람을 느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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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소미야 교수는 자신 아래서 늦어만 가던 노리코의 봄이 마무리되며,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일에 미소짓는다. 결혼 이전의 청년기를 봄이라고 한다면, 자식을 낳고 기르는 시기는 곧 인생의 여름과 가을일 것이다. 그렇기에 노리코의 시간이 늦은 봄이라면, 소미야 교수의 시간은 늦은 가을이 된다. 노리코가 여름을 시작하지 않는 이상, 그의 겨울 역시 시작되지 않는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사실 노리코의 봄이 길어지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그로 인해 그 이상 짧아질 여름과 가을, 혹은 자신으로 인해 딸에게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이후의 시간들을 염려함이다.

 

교토 여행 이후 영화는 곧바로 결혼식 날로 시공간을 이동시킨다. 결혼의 준비 과정은 생략된 채, 영화는 결혼식 당일의 아버지와 딸을 그린다. 거실에 앉아 핫토리와 얘기를 나누던 소미야 교수는 치장을 마친 노리코를 보러 2층으로 올라간다. 집을 떠나기 직전, 노리코는 소미야 교수에게 그간 길러주셔서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그런 딸의 감사에 답하는 그의 마지막 말은 "츨발하자"이다. 노리코를 향한 말이자 스스로를 향한 말일 것이다. 두 사람에게 펼쳐질 새로운 계절의 시작에 관함이다. 이미 결혼이 결정된 이후이기에, 사실 여름과 겨울은 그의 대사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미야 교수의 말은 곧 두 사람의 새로운 시간을 확인하는 말로서 작용한다.

 

곧장 결혼식 당일로 시간을 움직였듯, 영화는 결혼식의 일을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은 그저 결혼식을 마친 소미야 교수의 밤을 살펴볼 뿐이다. 단골 술집은 물론 돌아온 집에서도 그렇게나 원하던 딸의 결혼을 축하받지만, 그의 표정이 그리 밝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홀로 의자에 앉아 소미야 교수는 조용히 사과를 깎는다. 왜인지 모르게 멈춘 그의 칼질에 끊이지 않고 이어지던 껍질이 땅에 툭 떨어진다. 고개 숙인 교수를 뒤로 영화는 파도를 보여주며 끝을 알린다. 이제 막을 내린 아버지의 한 계절이며, 의지와 상관없이 새롭게 찾아올 시간이다. 늦은 봄이 저문 뒤, 갑작스레 찾아온 겨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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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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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아로
    • 잘 읽었습니다!! 영화 인상깊게 봤는데 덕분에 정리가 쏙쏙 되네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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