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대 미술의 역사를 한눈에 알고 싶다면? -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5개의 경로선과 5개의 생성점을 통하여
글 입력 2021.09.2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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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의 독서 주제는 주로 예술이었다.

 

아트인사이트라는 플랫폼에 글을 기고하고 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는 입장에서 예술 공부는 불가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문화 플랫폼 에디터라는 직책은 굉장히 과분한 타이틀이었다. 문화 관련 전공도 아니고, 관련 지식도 전무한 나에게 문화와 관련된 글을 써야한다는 중압감은 굉장히 무거운 것이었다. 그런 부담감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쉽게 글을 써내려가지 못하기도 했다.

 

글을 써도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 순간들이 많았다. 내가 쓴 글을 다시 되돌아보면 앞뒤가 안 맞는 글들도 보이고 뜬금없는 전개를 이어간 글들도 보이며 근거가 부족한 글들 또한 많이 보였다. 전문적인 글을 써보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그런 글들이 나온 것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뭔가를 꺼내보이려면 내가 가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이쪽 분야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라고 느낀 시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시기에 만난 대표님은 나에게 위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문화 컬럼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얘기를 하자, 예술의 역사를 조금씩 공부해보라 일러주신 것이다. 그래, 다른 것보다 일단 뭔가를 아는 게 가장 중요했다. Back to the Basic을 염두에 두자, 하고 마음 먹고 학교 도서관에 가서 예술의 역사와 관련된 도서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른 큰 줄기를 알고 싶다는 내 욕심이 커서인지, '한 권에 모든 것이 잘 정리된 책+읽기 쉽고 이해가 편한 책'을 찾던 나는 금세 지쳐버리고 말았다. 그런 책은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떠먹여주는 초심자를 위한 책은 깊이 있는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았고, 구구절절 자세히 쓰여진 책은 따라가기가 버거울 정도로 양이 방대했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결국 몇 권 빌려서 읽어보긴 했다만 마음이 급했던 나는 중간에 쉽게 그만두곤 했다.

 

어떤 공부든 편한 왕도가 어디있으랴? 남들은 10년, 20년 공부하는 것을 단 한 권 읽는 것으로 채우려 했다니, 그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었다.

 

기초부터 천천히 시작하는 것은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조급함을 가진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을 만났다.

 

 

 

예술의 범위를 뛰어넘는 자, Rule Breaker들의 등장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은 20세기와 21세기에 급격하게 변화한 예술계를 조명하며, 깊게 박힌 하나의 틀을 깨기 위해 예술가들이 했던 고민과 노력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김태진 작가는 이를 위해 5개의 경로선과 각 선마다 5개의 생성점을 지정했다. 아래 그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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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경로선의 시작은 야수주의 대표주자 마티스의 이야기다. 마티스는 고전미술이 가졌던 색체의 한계에서 벗어나 마치 야수처럼 과감한 색을 사용하며 그와 동시에 정해진 형태를 붕괴시켜 버리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다음 생성점을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로 설정해 입체주의가 야수주의를 몰아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어 들로네의 오르피즘,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순으로 생성점을 지정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굴직한 변화가 어떻게 이뤄져왔는지 보여준다.

 

첫번째 경로선만으로도 '예술가들이 기존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려 많은 시도를 했구나' 느낄 수 있었는데, 책을 다 보고 나니 이건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이후로 등장하는 경로선들은 그 스케일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사각형 안의 캔버스에서 벗어나려는 구축주의, 미술관을 벗어난 대지예술, 행위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 주장한 해프닝, 자신이 가진 생각을 파는 개념 미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브라모비치의 신체예술까지 예술의 범위는 무한정 확장되고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들까지 예술로 포함되며 이젠 삶과 예술의 경계를 확정지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가 단 1세기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뿐이다. 더불어 미지의 공간을 개척해내어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온 수많은 예술가들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어떻게 그런 대담한 시도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일까!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대혁신의 출발점에 오르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을까? 지금도 충분히 새롭게 느껴지는 예술인데 이것을 능가하는,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하지 못할 또다른 예술이 등장할 수 있을까? 그런 흐름에 앞장서는 사람은 누가 될까? 그런 때가 도래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예술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의 인식이 급격한 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까?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룰 브레이커들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게 될까?

 

지금 새롭게 부상하는 메타버스 내에서 벌어지는 활동, 혹은 메타버스와 현실을 잇는 활동들도 언젠가는 예술로 불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먼 미래에는 지구 내에서만이 아니라 우주를 배경으로 활동 하는 예술도 등장하지 않을까?

 

  

 

<아트인문학>이 매력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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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경로선과 선 안의 5개 생성점을 따라가는 여정은 모든 길을 익숙히 알고 있는 인도자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여기저기를 안내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모든 과정이 흥미로워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토록 쉽게 술술 읽히는 비결이 무언가 하고 찾아보니, 이 책을 쓴 김태진 작가가 명강연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그의 필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로 흡입력 있었다. 마치 그의 강의를 바로 앞에서 듣는 것처럼. 김태진 작가가 쓴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그의 글 전개 방식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증을 유발하고 독자 스스로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모든 생성점에는 미지의 인물이 한 명씩 꼭 등장하는데 그들의 행동은 가히 기이하다 여겨질 만큼 독특해서 '아니, 그래서 이런 행동을 한 사람이 누군데?'라며 빨리 페이지를 넘기게끔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중간에 책을 놓아버릴 타이밍을 잡기 어려울 정도다.

 

둘째, 1개의 경로선을 지나고 나면 복기하기 쉽게끔 앞서 이야기했던 5개의 생성점을 하나하나 다시 되짚어준다. 그리하여 독자가 여지껏 만나왔던 생성점 이야기들을 잊지 않게 해준다. 사실 정신없이 읽다보면 앞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지 종종 잊어버리곤 하는데, 위와 같은 장치가 있기에 '아, 그래. 이런 내용이었지!'하며 다시금 기억을 소환할 수 있었다.

 

셋째, 전문 용어를 최소화해 독자의 부담을 줄여준다. 물론 야수주의, 입체주의, 절대주의 같은 중심이 되는 미술 용어는 사용하되, 독자가 어렵다 느껴질 수 있는 부수적인 미술 용어들의 사용은 최소로 줄여 기본 배경이 없는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넷째, 고전 미술의 내용을 거의 언급하지 않아 현대 미술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해주었다. 고전 미술과 현대 미술은 경계가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거 아니야?'라고 여길 수 있지만 난 이 또한 배경이 없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다섯째, 시간의 흐름대로 글을 전개하여 독자가 헤매지 않게 했다. 그리고 경로선에 해당하는 이야기만 쏙쏙 골라 추려냈기에 독자가 혼란스러울 여지를 주지 않았다는 점도 이 책의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설명할게 많다고 해서 이것도 얘기하고 저것도 얘기하고를 반복했다면 책을 읽는 우리로서는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했을 것이다. 복잡한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현대 미술 특성상 자칫 잘못하면 그렇게 흘러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태진 작가는 그런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이 정한 특정 생성점과 경로선을 기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여 그런 혼선을 미리 방지했다. 처음 책을 읽을 땐 경로선과 생성점이 무슨 소용이 있는걸까? 하며 의구심이 들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오히려 그런 포인트를 지정하지 않았더라면 현대 미술의 발전 과정을 이토록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 5가지를 써보았다. 명강사가 책을 쓰니 이렇게 이해가 쉬울 수 없다. 거기다 복잡하고 난해한 현대 미술을 이토록 쉽게 풀어낼 수 있다니. 듬직한 셰르파가 날 이끌어주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싶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책을 읽었다. 혹시 현대 미술의 역사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책을 집어들기를.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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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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