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디에고 리베라가 아닌 조지아 오키프에 주목했을 때 - 퀴어리즘

글 입력 2021.09.14 21:0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올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정치적·사회적 담론 중 하나는 단연 ‘차별금지법’이었다.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오던 차별금지법은 올해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청원에 10만 명이 동의하면서 필요와 당위가 수면 위로 드러났고, 지금까지도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의제가 되었다. 제정에 관한 요구가 제기될 때마다 국회에선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논의를 미뤘지만, 작년에 실시된 인권위 설문조사에서 약 90%에 달하는 인원이 차별금지법에 찬성한 것은 이미 차별과 혐오를 제재할 법적 체계가 존재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상당 부분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러나 무엇이 차별이고 혐오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 수준은 여전히 저조하다. 성 평등 교육을 실시하는 교사와 학교에는 학생에게 ‘특정 사상을 주입’한다는 항의가 제기되고 아동은 높아진 인터넷 접근성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확산하는 혐오 표현과 문화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혐오는 놀이가 되었고 정치계와 언론계는 여론의 강세를 따라 무비판적으로 상황을 방조한다. 차별금지법이 실현된 미래를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된 지금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차별이 있는 현재이다. 차별이 한국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며 작동하고 있는지, 어떤 것을 가리며 어떤 것을 드러내려고 하는지 그 기제에 대한 기민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인 문화예술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상관을 맺으며 발전한다. 문화예술을 현재의 시각으로 계속해서 재편하고 서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에 그것이 위치한 맥락과 현재의 맥락은 완전히 다르다. 과거에 하대 받던 작품이 지금에 와서야 프레임을 벗어나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치를 발휘한다. 예술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은 그래서 중요하다. 당시의 맥락에서 가려졌던 것을 드러내고 다른 것과 연결하는 편집의 과정에서 현재에 절실하게 필요한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판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퀴어리즘_표지입체.jpg

 

 

대중적 인지도,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 경매 거래 가격의 총량 등을 기준으로 최고가 작가 22인을 선정하여 그중 10인의 퀴어 작가의 삶을 다시 쓴 책 『퀴어리즘』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들의 ‘퀴어로서의 삶’에 주목한다. 작가 개인의 정체성과 지향성이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라는 매체를 통해 감동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누락하고 삭제했던 기존 헤테로섹슈얼 중심의 미술사적 통념에 반박하는 작업이다. 작품을 관람하고 해석할 때 작가 개인의 삶이 중요한 실마리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임의로 배제된 삶의 서술을 다시 붙이고 보다 넓은 시야로 통찰함으로써 분석의 깊이를 더하는 과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책은 퀴어를 향한 차별과 혐오의 역사를 서두에서 언급한 다음,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부터 인물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 된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까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교과서적인’ 작가를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기록과 함께 소개한다. 작가들의 성 소수자로서의 삶과 더불어 사회에서 배척되었던 혼외자, 흑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까지도 폭넓게 서술한 이 책은 그간 일부가 가려진 삶의 기록과 함께 회자되어 왔던 작품을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한다. 장이 끝나는 사이사이에 배치된 작가의 후일담이나, 저자와 ‘미포(미술 포기자)’라는 캐릭터가 나누는 가상 대담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한다.

 

 

CultRooms_Francis_Bacon-2000x1278.jpg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은 알아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퀴어였다는 증언과 기록이 파다하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많다. 미술 교재나 전시회에서 작가의 이성 연인과의 관계를 작품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인으로 다루는 것에 비해 동성 연인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자주 노출하지 않고 언급을 금기시하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억압에 의해 가려졌던 부분을 드러냈을 때 관객은 작품을 더욱 넓은 영역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프랜시스 베이컨의 거친 회화를 단순히 표현주의 사조의 예시로 볼 때와 퀴어라는 정체성 때문에 경험했던 폭력과 상처를 예술로 승화한 결과로 볼 때의 감상은 다를 수 있다. 성조기를 활용하여 오브제 자체를 캔버스로 만든 시도로 유명한 재스퍼 존스의 작품에 숨겨진 ‘허무맹랑한 꿈’이라는 의미의 관용구는, 그의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그가 억압적인 파시즘과 메카시즘에 대항했다는 분석의 주요한 근거가 된다.


책은 작가의 성적 지향성만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작가가 그것을 다루는 방식과 이를 통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분석한다. 다빈치처럼 성적 지향성을 드러내지 않고 작품을 통해서만 은유적으로 드러낸 작가가 있는가 하면 프란시스 베이컨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표현한 작가도 있다. 마르셀 뒤샹처럼 자신이 추구하는 여성의 자아를 사진을 통해 남긴 작가도 있고,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일정한 코드로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캔버스에 담아낸 작가도 있다. 책은 작가들이 퀴어로서 세상과 맺은 관계가 작품에 어떻게 반영이 되었는지 고찰하며 작가의 다양한 경험을 포착하고 더욱 입체적으로 작품을 대면하게 한다. 베이컨의 회화에서 아름답고 신비한 형식 너머 그가 세상과 마찰하며 긁힌 상처를 바라볼 때, 시대를 뛰어넘는 공통된 고통과 상처를 떠올리며 치유마저 경험하듯이 말이다.


물론,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에 주목하여 작가의 삶과 업적을 서술하는 방식은 자칫 굳어진 틀에 작가를 가두어 해석의 가능성을 제한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누락된 기록을 되살리며 작가를 바라보는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경계하고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은 여전히 차별과 혐오의 반동에 익숙한 사회이기에 그에 가려진 역사를 모색하고 상기하는 과정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다. 프리다 칼로는 고된 개인사와 그것을 극복하여 창조한 초현실주의 세계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가지만, 화가 조지아 오키프와의 로맨스에 가까웠던 각별한 관계는 끊임없이 외도를 했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의 관계보다도 덜 알려져 있다. 동성애의 가능성을 배제하느라 간과되었던 둘의 교류를 이 책이 서술하듯 주요하게 다룰 때, 관객은 프리다 칼로의 영감의 원천과 붓끝의 감정에 대해 더욱 확장된 시각으로 재고할 수 있게 된다.

 

 

데이비드호크니.png

 

 

저자는 팝 아트의 살아 있는 전설 데이비드 호크니의 회화에 담겨 있는 코드를 성적 지향과 수영장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조합’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 예술은 모두 작가의 ‘지극히 사적인’ 부분의 조합이며 지극히 사적인 감상에 의해 향유된다. 그러나 퀴어의 사적인 영역은 공적인 권력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와 표현이 억압받는 곳에서 쉽게 침범되고 방해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수많은 예술의 가능성은 제한되고 사라진다. 모두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 차별과 혐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안전해질 때 더 많이, 더 아름다운 예술이 탄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숨겨진 정체성을 꺼내준 친구 키타이가 호크니에게 했다는 조언이 인상적이다. “이봐 호크니, 뭘 그리 고민하냐? 넌 정치, 채식, 동성애자로서의 성적 지향 등 개인적인 관심사들이 그렇게 많이 있는데, 왜 그런 것들을 그리지 않고 생각에만 빠져 있는 거니? (355p)” 조언을 들은 후 호크니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메시지를 더욱 적극적이고 독창적으로 표현해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지극히 사적인, 그러나 공적인 힘으로 억압된 ‘관심사들’이 그려질 때 역사는 시작되었다. 차별과 혐오가 마땅한 힘을 발하지 못하는 곳에서 스펙트럼은 확장되고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많아진다. 여전한 듯 보여도 분명히 달라지고 있는 세상에서, 또 다른 역사의 출발을 기대한다.

 

 

 

컬쳐리스트.jpg

 

 

[조현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78772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10.21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205번길 54 824호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