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구에서 한아뿐 - 문학이 된 MZ세대는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9.1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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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사전의 검색 결과에 따르면, MZ세대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와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함께 부르는 말이다. 주요한 특징으로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한다는 점이 있다고 한다.

 

MZ세대는 소위 말하는 ‘요즘 젊은이들’이면서,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주 소비층으로 주목받는다. 이들이 이전 세대의 시각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들만의 특성을 갖는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많은 연구와 분석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MZ세대의 한가운데 서있는 사람으로서, 이 세대에 관한 관심은 특히 재미있고 신기하다. 오늘날 나와 나의 주변인들이 하는 생각이 누군가에게는 연구 대상이 된다는 것이 재미있다. 이들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만들어내는 수많은 트렌드 용어들이 신기하다.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소하다는 점은 당연한 일이면서 동시에 잘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살아보지 않은 시대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수많은 다른 시대에 관한 이야기들을 교과서에서 읽으며 자랐다. 그런 기억을 가진 나에게 <지구에서 한아뿐>이라는 소설은 조금 다른 감회를 주었다. 이 책은 나의 세대, 나와 내 주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서 그렇다. 흡사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보던 사회과 부도 교과서가 어느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누군가 ‘우리'를 생경하게 관찰하고 있는 것에 대한 상상과 전시장 안의 익숙한 물건을 어쩐지 낯설게 지켜보는 내 모습이 겹쳐졌다. 두 가지 상상은 혼재되어 이상한 기분을 만들어냈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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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MZ세대의 모습과 가치관을 닮았다. 주인공 한아는 재능 있는 디자이너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듯한 브랜드를 차려 높은 자리에 오르는 성공 대신, 자신만의 작은 가게를 선택한다. 그곳에서 오래되고 낡았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옷들을 새롭게 고치는 일을 한다. 그녀는 비건 레스토랑을 가고, 환경을 위해 크고 작은 실천을 일상에 가져온다. 결혼을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결국 하게 된 결혼식에서는 쓰레기와 허례허식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한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유난스럽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존중받기 시작한 것은 내가 체감하는 요즘의 큰 변화이다. 환경과 양심을 위해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개인적인 선택권을 가진다. 환경을 위해 텀블러와 다회용기를 챙겨 다니더라도, 사람들은 더는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정돈된 전체를 위해 무시되던 개인의 선택이, 지금 시대를 만나 다시 사회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다.

 

억지로 일반적인 선택을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약속의 분위기. 그 분위기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설명하는 중요한 묘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동시에 때로는 다른 세대와 이해되지 않는 벽을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우리의 바람대로 갈등이 주는 긴장 대신, 이해와 존중이 가득하다.

 

한아를 만나기 위해, 아니 결혼하기 위해 찾아온 것은 외계인이었다. 남자친구의 모습으로 찾아온 외계인은, 지구를 위해 양심을 실천하는 한아의 모습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외계인 남자친구의 등장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낯선 등장인물이 누구보다도 동시대의 관점을 이해하는 인물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외계인의 시선은 어쩌면 우리의 시선일 수도 있다. 개인의 용기와 양심적인 행동을 지지하고, 그래서 모나거나 특이해 보이는 면들을 사랑한다. 같은 세대의 존중과 이해에 대한 욕구를 외계인이 완벽히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등장인물 주영은 아폴로라는 가수의 팬클럽 회장이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가수를 위해 일상과 인간관계를 등지는 인물로 표현된다. 그러나 자기 행동의 무상함을 깨닫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뻔한 엔딩은 일어나지 않는다. 주영은 망설이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간다. 외계인의 도움을 받고 우주까지 나가서, 아폴로와 함께 영원히 충실한 팬이 되고 싶은 꿈을 이룬다. 그녀가 선택한 삶의 우선순위, 그것에 대한 확신은 존중받는다. 남들과 다른 방향이라고 해서 언젠가는 깨닫고 버려야 할 것으로 묘사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외계인까지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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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일반적인 생각에서 벗어난 엉뚱한 선택을 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자신이 바라던 행복을 맞이한다. 이상하지만 익숙한 동화책 같은 결말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왜 외계인과 우주까지 필요했을까. 답답한 현실에 대한 폭로와 도피라면, 내 생각엔 제법 어울리지 않는다.

 

이건 그렇게 진지한 시사 다큐멘터리보단, 푹 빠져서 볼 수 있는 주말 드라마 같다. 빳빳하지 않은 웃음으로 잠시 현실을 잊고 원하던 것이 있는 세계를 맘껏 상상하게 한다. 마음속 구김살을 쭉쭉 펴주는 다리미 같았다. 동시에 나와 내 주변 또래들의 목소리를 꼼꼼히 담아내는 일기장이었다. 우리가 도피하고 싶었던 우주가 아니라, 각자의 바람이 모여서 만들어낸 우주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정말로 절망이 없다. 소설이 그려낸 우주가,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는 점까지도 그렇다.

 

정세랑 작가의 판타지가 일상과 생뚱맞은 상상을 조합하면서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런 게 아닐까. 종이와 텍스트라는 딱딱한 설정에도 아무것도 가르치려 들지 않고 우리와 신나게 떠들려고 하는 책이다. 소설이 대단한 교훈을 목적으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와 내 친구들의 마음과 머리가 쉬어 갈 곳도 항상 필요해 왔으니까. 이 책을 아침저녁 출퇴근 길에 틈틈이 읽었는데, 그래서 웃음 코드가 더 맛이 났다. 쿡쿡대고 빙글빙글 웃으며 보내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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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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