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큐멘터리의 속살 [영화]

글 입력 2021.09.1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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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원시적 형태를 고려하면, 인간에게는 필시 '엿보고자 하는 욕구'가 내제되어 있는 것 같다.

 

타자의 은밀한 공간, 나와 유리된 누군가의 소우주, 무심코 지나쳤던 세계의 속살 등을 마주할 때 개개인의 세계는 물먹은 솜마냥 무게를 더해간다. 타인의 세계에 무의식적으로나마 나의 것을 중첩시키고 싶은 욕구는 영화 매체의 발달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관람자들의 사유 체계가 달라짐으로써 이제는 단순히 엿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게 되었다. 조금 더 긴밀하게 감각하고 싶은 마음에 응하는 것은 영화 기술과 연출 방식의 발달이다. 이후의 서사 매체들은 날것의 이미지들을 교묘히 편집하는 방식으로, 즉 사실보다 더욱 사실 같은 픽션으로 오히려 현실의 진리를 일깨우고 있다.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이 아닌 창조적인 재구성만이 관람자들의 일명 '감각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픽션 영화의 경우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와 같은 사실성이 큰 특징인 다큐멘터리 장르에도 역시 적용된다. 이를 인식할수록 영화 매체가 보여주는 현실과 픽션의 경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은 커져만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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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영화,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스틸컷

 

 

이 물음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최초의 상업용 장편 기록영화, <북극의 나누크(1922)>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안전성이 보장된 안온한 상영관에서 다양한 스펙터클을 그저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은 카메라의 발명이 세운 큰 업적이다. 인간은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삶의 안정성은 물론 간혹 그것이 가져오는 지루함을 타파해줄 스릴까지 동시에 보장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화의 발명은 얼마나 고무적인가. 빔프로젝터로 보여지는 이누이트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따듯한 차 한 잔과 푹신한 배게를 두고 관람한 나를 돌아보며 새삼 실감한 사실이다. 어쩌면 그것이 다큐멘터리의 매력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픽션의 탈을 쓴 이야기가 철저히 현실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더욱 생생한 전율을 안긴다. 어쩌면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이고 확실한 욕구 충족 방식이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북극의 나누크>, 다큐멘터리의 신화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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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이, 초기 영화들은 내러티브가 제외된 날것의 현실을 포착하는 형태였다. <북극의 나누크>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은 이유는 이러한 영화의 초기 형태를 계승했을 뿐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현실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했음에 있을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너무 축축하지도 ―이누이트족의 삶을 그저 미개하고 처절하기만 한 생존 경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너무 건조하지도 않게 ―철저히 이방인을 보는 관조적인 시선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작품을 끌고 갔다는 점이다.

 

간혹 다큐멘터리를 관람하다 보면 감독이 이미지를 매체로 하여 얼만큼, 또 어떤 방식으로 관람자를 설득할 수 있는가 핵심이자 난점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작품의 경우 이를 아주 지혜롭게 해결했다고 느낀다. 감독 로버트 플레허티가 촬영 대상인 이누이트족과 상당한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인데, 이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느꼈다. 또한 다큐멘터리의 효시로 회자되는 작품인 만큼 그만의 장르적 특징을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픽션과 다큐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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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나누크>는 나누크라는 뛰어난 사냥꾼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그의 일상을 통해 이누이트족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조명한다. 이 작품의 인상적인 점은 픽션 영화의 문법을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잘 녹여냈다는 사실이다. 1920년대는 할리우드의 주류 영화사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해나갔고, 덕분에 다양한 픽션 영화들이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영화 기술사적으로도 큰 업적을 이뤄 연출적으로도 도약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큐멘터리와의 장르적 비교는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먼저 주인공이자 히로인(Protagonist)인 나누크가 존재한다. 그리고 주인공 앞에는 적대자(Antagonist)에 해당하는 혹독한 자연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 나 이 적대자는 절대악이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데, 끝없는 설원의 평원은 아름다울뿐더러 주인공 나누크에게 삶을 영위할 만한 이유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비록 나누크와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심지어 시간적으로도 상당한 공백을 가진 현재의 우리라지만 '자연 앞에 선 인간의 투쟁'이라는 구도에는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 이들의 남다른 생존 방식에 순수한 경이를 터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실만한 픽션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사냥을 하고 집을 짓고 고기를 먹는 나누크의 일상은 픽션 영화의 네러티브처럼 흘러간다. 긴박하고 진중하다가도 때로는 익살스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통해 영화의 리듬 역시 조절해간다. 이는 다분히 시적인 운율이라고까지 표현할 만하다. <북극의 나누크>만이 가진 이미지 리듬 역시 이 영화가 수작으로 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가족들이 함께 이글루를 짓는 장면, 아이들이 복작대며 노는 장면, 딸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 등은 치열한 삶의 이면의 사랑스러움을 보여준다. 이는 일종의 휴머니즘마저 느끼게 하는 장치이다. 나누크 가족의 삶은 우리와 완전히 유리된 이국적인 그것이 아닌,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는 하나의 축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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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픽션의 문법들이 다큐멘터리에 얼마나 잘 녹아들었는지 여부를 떠나서, 많은 장면들이 감독의 의도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불편하게 다가온다. 앞서 말했듯이 다큐멘터리는 분명 현실성을 가장 큰 담보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관객과 감독 사이의 신뢰를 연결하는 끈이 바로 리얼리티 그 자체라는 의미이다.

 

<북극의 나누크>를 둘러싼 일명 '조작 논란'은 다소 배신감을 들게 한다는 의견까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당시 이누이트족은 이미 작살과 창이 아닌 총으로 사냥하는 것에 익숙할 정도로 문명과 접해 있었다고 한다. <북극의 나누크>하면 작살만으로 바다 코끼리 등을 사냥하는 긴박한 장면으로 유명한데 말이다. 이외에도 이글루에 거주하는 주거 방식은 그저 전통으로만 남아 있으나 감독의 의도로 인해 영화에 삽입되었다는 사실 등이 밝혀지기도 한다. 장면을 더욱 극적이고 이국적으로 만들기 위해 편집된 부분들도 다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영화사에 발자취를 남긴 까닭은 다큐멘터리의 근원과 그것이 장르적으로 규정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사항들에 대해 사유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기록영화라는 정체성에 입각해 보자면, 이누이트족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복건해 그것을 필름에 남겼다는 점은 이 영화의 사료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는 부분이다. 덧붙여 다큐멘터리로서 응당 보여주어야 하는 사실성이란 과연 네러티브를 완전히 배제한 형태일까에 대한 사유도 영화인들이 이어가야 할 과업이다.

 

*

 

모든 카메라는 누군가의 눈을 대변하기 마련이고, 다큐멘터리 역시 나름의 네러티브를 지니기 때문에 특정한 방향으로 관객의 사고가 갇힐 위험이 있다. 게다가 영화에는 편집을 비롯한 후반 작업 과정이 필수이다. 해서 주관이 개입할 요소는 더욱 다분하다 볼 수 있다.

 

이에 필자는 감독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발언함과 동시에 현실의 다변적인 측면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입체성을 다큐멘터리의 기본 요소로 삼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다소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결론을 내려보았다.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는 '사실성'이 미덕으로 인식되는 장르이다 보니 <북극의 나누크>의 진가에 대한 논란이 존재하지만, 다큐멘터리 역사의 시작점을 톺아보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작품임은 분명하다. 100년 전의 작품인데도 그 완성도가 높고, 다큐멘터리 내의 나레이터의 역할에 대해 재고해볼 수 있으며 흥미로운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는 점에서도 <북극의 나누크> 관람을 권해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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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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