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황홀함의 절정 -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공연]

글 입력 2021.09.1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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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누구와 만나든 밥-카페-(카페 2차) 순으로 약속을 잡는다. 이마저도 최대한 핑계로 무마하며 다음에 만나자고 둘러 노력하는데, 이도 이럴 것이 코로나의 위험에서 피하기 위함이다. 보통 약속 장소를 카페로 정하며 생긴 새로운 방식이 있다. 프렌차이즈보다는 개인 카페에 방문하는 것.


원래 스타벅스를 좋아했으나, 스타벅스의 수용인원이 많아 그 반대로 비교적 안전할듯한(?) 개인 카페로 향하곤 했다. 그러나 개인 카페를 처음으로 찾아가던 당시, 불편한 의자와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럴 바에는 넓고 적립 혜택이 있는 카페에 가는게 낫지 않을까.


오만한 편견을 깨준, 동네에 애정하는 카페가 있다. 개인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넓은 매장에, 편한 의자와 원두 선택도 가능하며, 심지어 전자 상의 적립 혜택까지 존재한다. 얼마나 갔을지 보기 위해 쿠폰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어제부로 쿠폰이 56개나 찍혔다. 이 곳에서 시작해 다른 개인 카페까지 방문하며, 그들의 매력을 알아가는 중이다. 유행하는 트렌디함부터, 원목 가구와 함께하는 따듯함까지 카페 사장님의 지향점이 있다. 사장님의 지향점과 나의 취향이 일치한다면, 카페에 한 번 더 방문하게 되고, 좋아하는 자리가 생긴다. 그러면 카페의 한 구석이 내 공간처럼 느껴진다. 카페 탐방기에서 나만의 공간을 얻는 중이다.


이 곳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는, 카페에 나오는 음악 때문이다. 영화 OST를 첼로나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가사 없는 연주곡이 흘러나온다. 항상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 내가 앉아있는 장소가 카페가 아닌, 연주회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들곤 한다. 플레이리스트를 알아낸 후로는 집에서 동일한 트랙을 틀어놓고 지내곤 한다. 마치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으며 이 곡을 실제로 듣는 날이 오길 소망하듯이 말이다.


이번 예술의전당에 향한 이유 역시, 이 카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오페라 곡을 들으며 좋아하는 구간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곤 했다. 스피커로 통해 들어도 아름다운 이 곡을,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선율로서는 어떨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활로 바이올린 위를 움직이며 내는 작은 음의 떨림, 스피커로는 느낄 수 없는 소름 돋는 아름다움을 몸소 만나보길 원했다.


기존에 뮤지컬은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으나, 오페라를 즐긴 경험은 없다. 이것은 개인 카페에 대한 내 편견과 비슷했는데, 오페라에 대한 기존의 편견은 어렵다는 것.


그러나 오페라를 처음 접했음에도 황홀함을 느꼈기에, 그러니 모두가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공연의 리뷰를 작성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느끼더라도 하나의 감상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페라에 갓 입문한 사람의 입장에서, 공연에 방문하지 않던 이들 역시 나처럼 오페라를 즐길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이다.




힉엣눙크!



[크기변환]포스터(최종)_람메르무어의루치아.jpg

 

 

힉엣눙크! (HIC ET NUNC!)는 2017년부터 기획한 음악 페스티벌이다. ‘힉엣눙크’는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뜻으로, 새로운 시도와 흐름을 국내에 선보이고, 고전을 새로운 맥락과 관점에서 제시하는 비전을 갖고 있다. 전체 음악제 일정 중, 콘서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감상했다.


전체 90분의 공연으로, 1부와 2부로 진행됐다. 1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현악기를 위주로 구성된 협주곡이었으며, 2부는 오케스트라와 아름다운 아리아의 선율이 함께 했다.


티켓을 받고 2층으로 올라가 앞에서 다섯 번째 줄에 앉았다. 관객석에서는 따듯한 빛을 받는 오케스트라 석이 보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프로그램 북을 살펴보며 시간을 보내던 중, 공연 시작을 안내하는 소리가 나오며 주위가 어두워졌다. 객석이 어두워지자 무대는 더 따듯하게 밝아졌으며, 연주자가 잠깐 악기와 악보를 가다듬은 후 연주를 시작했다.


1부는 ‘비발디,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라단조, RV. 514’로 막을 열었다. 바이올린의 협주곡으로, 알레그로 논 몰토, 아다지오, 알레그로 몰토로 이어지는 선율들의 대화를 들으며 기쁨과 슬픔, 즐거움, 그 어딘가의 중간 지점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단지 하나의 감정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으며, 다양한 감정을 어우르는 미지의 영역 같던 합주곡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진행된 곡은 ‘보테시니, 그랑 듀오 콘체르탄테’로 바이올린과 베이스가 함께 합주하는 곡이다. 특히 연주자의 엄청난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 북에 평한듯이 이 곡을 ‘거대한 현악기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베이스로 이렇게 경쾌하게 표현할 수 있음을, 또 바이올린으로 이렇게 빠른 음률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온전히 연주에 집중했다.

 

1부의 마지막 ‘골리호브, 마지막 라운드’는 마치 탱고의 빠른 리듬감으로 진행되었다. 베이스가 지휘를 하듯 중간에서 리드하며 리듬을 맞추고, 관객의 시선에서 왼쪽의 현악 파트가 먼저 시작하고, 오른쪽에 위치한 현악 파트가 이를 받는 듯한, 흡사 대결의 구도로 진행되었다. 탱고 춤을 추는 듯한 절도 있는 파트와, 쭉 뻗은 다리를 연상시키는 현악기의 높은 날카로운 소리는 아름다웠다.


2부는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로 보다 간소화된 악장을 제시한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줄거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배경은 17세기 말의 스코틀랜드 동부 연안. 람메르무어 가문의 영주 엔리코는 가문의 미래를 위한 결정을 앞에 두고 있다. 바로 자신의 여동생인 루치아를 명망 있는 가문의 영주 아르투로에게 시집보내는 것. 허나 자신의 가문과 대립 관계에 있던 에드가르도를 사랑하고 있던 루치아는 이러한 정략결혼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상황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향하게 되고, 결국 남은 것은 오해와 배신뿐. 이 모든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던 루치아는 결국 미쳐버리고 혼인 상대였던 남편 아르투로를 살해하려 하는데… - ‘힉엣눙크! 페스티벌’ 프로그램 북 중


 

2부는 에드가르도를 기다리며 부르는 루치아의 아리아로 시작된다. 에드가르도를 사랑하던 루치아를 아름다운 시선으로 비추지만, 하프의 매혹적이면서 고요한 선율과 슬픔이 함께하여 더욱 깊은 아름다움을 남겼다.


그다음은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3막 2장으로, 비극과 광란의 악장이 시작된다. 에드가르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광기에 어린 모습으로 노래한다. 입은 드레스 마저 백색의 깨끗한 드레스에 피가 묻은 듯한, 또는 장미가 뿌려진 듯한 모습이다. 광기에 어린 아름다운 루치아에게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약 90분간의 전체 공연을 마치고, 힘껏 박수를 치는 것으로 연주에 응했다. 90분간 황홀함에 빠졌다는 것. 이것이 오페라의 매력이었다. 악기가 낼 수 있는 소리 중 가장 아름다웠고,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 중 가장 황홀했다.


그리고 1부의 ‘보테시니, 그랑 듀오 콘체르탄테’ 에서 바이올린과 베이스 연주자가 연주가 끝난 후 껴안는 모습과 2부가 끝나고 성악가와 지휘자가 함께 손을 잡고 인사를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함께 합주를 하며, 서로에게 감사함을 담은 동작도 아름다웠다. 그들이 얼마나 노력했을까, 공연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았을 그들의 노력에 감사를 표하듯 나는 응답으로서 더 큰 박수를 보냈다.


이제 또 하나의 문화생활을 즐기게 될 예정이다. 아름다운 연주 뿐 아니라, 그들의 합주하는 모습과 공연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오페라를 보려 공연에 찾을 것이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면 나오는 오페라 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원만은 아니다. 누군가의 생생히 살아있는 연주가 깃든 선율이다.

 

 

[임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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