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넷플릭스 'D.P.' 2편 [문화 전반]

군대 이야기 2편, <D.P.> 그리고 나의 군생활
글 입력 2021.09.1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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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드라마 D.P.를 봤다. 여러 매체에서 뜨겁게 다루고 있기도 하고, 군대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감상평에 호기심이 생겨서 넷플릭스를 결제하고 감상했다. 나는 국내에서 군대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단 한편도 본 적이 없다. <태양의 후예>, <사랑의 불시착> 같은 부류의 드라마들은 군대라는 소재를 판타지로 다뤘다. 폐쇄적인 집단일수록, 상상력을 불어넣기 좋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60년 넘게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휴전국에서 군대라는 소재는 민감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실제 복무를 했던 예비역들과 현역병들과 일반 대중 사이의 균형을 잘 조절해야 할 텐데, 지금까지의 한국 드라마들은 대중성에 치우쳐 군대라는 집단을 ‘환상적인 공간’으로 묘사했다.


그런 점에서 D.P.는 적절한 균형을 갖춘 웰메이드 버디 무비다. 군대에 다녀온 이들에겐 복무 당시 목격했을 군대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림과 동시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추리물이란 장르의 매력도 잘 살렸다. 주인공 안준호(정해인 역)는 극의 중심에 있어 제3자의 시선으로 인물들을 바라봄과 동시에 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우직하게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인준호의 사수이자 파트너인 한호열(구교환 역)은 자칫 무겁게 가라앉을 수 있던 분위기를 과하지 않은 캐릭터 성으로 환기한다. 두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탈영병 에피소드는 안정적인 오락 추리물의 옴니버스 구성을 취하고 있다. D.P.를 화제의 중심으로 이끈 건 군대라는 배경 때문일 것이다.


 

 

군대라는 조직과 무력감


 

[크기변환]화면 캡처 2021-09-10 145218.png

넷플릭스, D.P.

 

 

D.P.는 첫 화부터 쉽사리 넘어가기 어려웠다. 안준호가 훈련소에 입소해 신병 훈련을 받는 짧은 장면들은 실제로 내가 사단 훈련소에 입소했던 때와 똑같았다. 조교들이 작중에 나오는 것처럼 폭언을 일삼진 않았지만, 적어도 간부 몇몇은 험한 말로 훈련병들을 다그쳤다. 침상에서 얼차려를 받는 다거나, 좁은 복도에 모두 집합해 단체 기합을 받는 장면은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황장수(신승호 역)가 후임들에게 가하는 부조리 행위 모두를 내가 목격하거나 겪은 것은 아니나, 내무반에 감도는 분위기와 당사자들이 느낄 위압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중대실세라 할 수 있는 선임들 앞에서 신병이 느끼는 건 무력감뿐이다. 그런 점에서 신승호가 연기한 황장수는 군 생활을 겪어본 사람들이 한 번쯤 마주해봤을 ‘악랄한 선임’을 잘 보여준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최준목 일병처럼, 코골이가 심한 동기는 꼭 한 명쯤 있었다. 아침 점호를 위해 연병장에 모일 때, 코골이가 심한 후임은 따로 불려서 한 소리 듣곤 했다.

 

군대는 다양한 청년들이 ‘병역의 의무’라는 이유 하나로 한곳에 모이는 곳이다. 하지만 그들을 모두 용인할 만큼 군대는 너그러운 집단은 못 된다. 군인이 개인의 특성을 억압된 채 나라에 봉사하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조석봉 일병(조현철 역)은 군 생활 하면서 한 번쯤 만나봤을 만한 선임이다. 착하고, 후임들 잘 챙기는 착한 선임. 하지만 군대라는 사회에서 착하기만 한 사람은 밉보이기에 십상이다. 군대에서 착한 건 얕보이기 쉽다는 거고, 군대 생활에 유연하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작은 군대 사회에서 비밀은 없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도 챙기기 힘들다. 나도 성격 좋던 선임이 시간이 지날수록 군 생활에 의욕을 잃고 중대에서 겉도는 걸 본 적 있다. 그렇기에 조석봉 일병의 변화는 충격적이다. 안준호를 살뜰히 챙기며, 나중엔 애들한테 잘해주자던 그가 후임들을 집합시켜 때리고, 탈영해 군생활 내내 자신을 학대하던 황장수 병장을 죽이려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개인이 군생활을 하면서 겪는 내면의 변화를 외연으로 표출한 것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유난히 나를 갈구던 선임을 폭력으로 보복하는 상상을 말이다.


 

 

수통과 방관자


 

[크기변환]화면 캡처 2021-09-10 145055.png

넷플릭스, D.P.

 

 

자수를 권유하는 한호열에게 조석봉은 이렇게 얘기한다. “저희 부대에 있는 수통 있지 않습니까. 거기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아십니까? '1953'. 6·25 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군대 내부의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걸 압축적으로 표현한 대사다. 그리고 D.P.를 본 군필자들이 대게 군생활을 하면서 느꼈을 감정일 것이다.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 군대에는 그런 무력감이 짙게 깔렸다. 안준호처럼 선임에게 반박하거나, 주먹질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요컨대 행위 정당성 여부를 떠나 군기를 해치는 하극상이기 때문에 선임과 전면으로 맞서는 일은 드물다. 애초에 악습을 행하는 이들도, 당하는 이들도 타의에 끌려온 징집병이기에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수도 있다. 그냥 ‘나중에 우리가 선임이 되면 그러지 말자.’라는 말을 되풀이할 뿐.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 막상 선임이 되면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악습을 빌릴 수밖에 없다. 일종의 보상심리일 수도 있겠다.

 

말년 즈음해서 휴대폰이 풀렸다. 국방부는 부조리와 악습이 사라진 ‘선진병영’의 대표로 ‘스마트폰의 자율화’를 주장한다. 당시 내가 목격한 선진병영의 모습은 개인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일종의 ‘거리두기’였다. 개인 스마트폰이 생기며 동기는 물론 선후임 간의 대화도 단절되고, 단결 활동도 줄어들었다. 부조리 대부분이 선후임간의 관계에서 나오는데 접촉이 줄어들었으니 ‘드라마에서 묘사된 수준의 병영환경과는 달라졌다’라는 국방부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내가 전역할 때까지도 수통은 그대로였다. 장교들이 신형 군복과 부츠, 모자를 신고 군대 시찰을 돌 때에도 병사들은 오래된 수통을 차고 훈련을 했다. ‘이제 베레모가 아니라 군모 쓴다던데.’라는 간부의 말에도 그게 무슨 대수냐고 말했던 적이 있다. 어차피 이 나라가 종전을 선언하지 않는 이상 젊은 청년들은 계속 군대에 끌려 올 것이고, 오래된 수통은 여전히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군대가 변하지 않을 것이란 무력감에 젖어 있었다.

 

번개탄으로 자살한 신우석의 누나 신혜연(이설 역)이 신우석의 납골당에 찾아온 안준호에게 ‘왜 보고만 있었냐’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를 되돌아봤다. 상병을 달 때쯤 군대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무사히 전역만 하면 된다는 무력감에 젖어 중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로부터 눈을 돌렸었다. 이따금 파견을 나가 타 부대 아저씨(같은 부대 소속이 아닌 병사들은 아저씨라 불렀다.)나 훈련소 동기를 만나 ‘동기 중 누군가 자살했다.’, ‘자살 시도를 했다가 수도병원에 후송됐다.’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게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내심 안도했다. 나는 군생활 내내 큰 트러블 없이 잘 지냈다. 중대 악습에 지칠 때쯤에는 작업병으로 차출되어 중대 내부보단 외부에서 더 많이 활동했다. 중대로 돌아왔을 땐 분대장을 맡아서 간부와 더 친하게 지냈다. 같은 분대 소속인 후임들을 제외하곤 딱히 후임과 친하게 지낸 기억도 없다. 말년엔 아예 중대 내부 사정에 신경을 끊었다. 분대에 관심 병사인 신병이 들어왔을 때에는 곧 전역을 앞둔 때였던지라 바로 아래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분대일에도 손을 땠다. D.P.의 마지막 에피소드명처럼, 난 철저한 방관자였다.


 

 

반짝이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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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D.P.

 

 

D.P.를 보는 동안 오프닝을 한 번도 넘기 적이 없다. 홈비디오 형식으로 촬영한 오프닝 영상은 한 아이가 태어나 유치원에 들어가고, 성인이 돼서 자유를 느끼다가 입소하기까지의 모습을 담았다. 군대에서 만난 인연들이 생각났다. 그들도 나만큼 한 가정의 소중한 아들이었을 텐데, 쉽게 재단하고 단순하게 치환해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그들도 나름 힘든 시간을 겪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나의 안위만을 생각했다. 그곳에서 크든 작든 다들 변했을 것이다. 나를 옭아매는 조직의 악습 속에서 체념을,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면서 ‘군대 갔다 오면 철든다더라’라는 말을 되뇌며 이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오프닝 마지막에 안준호 역의 정해인 배우는 마지막에 까까머리를 한 훈련병들 사이에서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응시한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너의 군 생활은 어땠어.’ ‘오늘로부터 얼마큼 멀리 왔니.’


전 편에서 군대에서 '반짝이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에 시달린다고 쓴 적이 있다. 이맘때가 되면 근원 모를 상실감에 휩싸인다. 날이 쌀쌀해지고, 가을이 온다는 게 느껴지면, 나는 여지없이 9월 18일의 입대날로 돌아간다. 나도 군대에 있을 땐 누굴 저렇게 증오했던 적이 있다. 탄약고 언덕에서 예초기를 들고 풀을 치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철조망 너머를 보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너무 힘든 일과를 마치고 사회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술 마시고 있어’라는 얘기를 들으면 담벼락을 뛰어넘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다. 내가 왜 여기에, 찬란한 시기에 왜 여기에 있어야 할까. 라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다. 계급장이 없으면 모두 똑같은 또래인데, 서로 불편하게 지내야 할까. 그런 고민이 끝도 없이 이어지다 보면 남는 건 결국 무력감이었다.


상황은 바뀌지 않고 바뀔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 남들에게 얕보이지 않게, 조금 나빠져도 괜찮다. 나만 무사히 전역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 사회로 돌아가면 이전처럼 재밌게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군 생활을 버텼다. 전역한 지 벌써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또 얼마큼 변했을까. 9월의 바람을 맞으며, 법원읍에서 소맥을 마시고, 전역 날 동기들과 헤어지던 그날로부터 나는 얼마큼 변했는지 가늠해봤다. 갑자기 스물둘, 스물셋의 내가 가여워졌다. 어린 나는 그곳에서, 파주에서 보낸 시간 동안 무엇 때문에 그렇게 무심한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을까. 전역 복을 입고 금촌역에서 열차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할 때, 누군가를 두고 온 느낌이 들었다. 아마 군대에서 시간을 죽인 20대 초반의 나였던 것 같다. 반짝이던 가능성을 품고 있던 어린 나, 9월이 되면 그때의 내가 안타까워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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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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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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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래하는곰
    •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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