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감정 전이: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공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아티스트들과 세종솔로이스츠의 만남
글 입력 2021.09.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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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지난 2일 2021 힉엣눙크 행사의 일환으로 콘서트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가 열렸다. 이번 공연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핵심 아티스트들과 세종솔로이스츠가 만나 선보이는 벨칸토 오페라이다.
 
사실 오페라는 거의 처음이라 잘 모르지만, 홀린 듯이 초대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메트오페라 악장 데이비드 챈(David Chan), 세종솔로이스츠와 현 뉴욕필 악장 프랭크 황(Frank Huang), 인디애나 음대 교수 더블베이시스트 커트 무로키(Kurt Muroki), 메트오페라 주역 캐슬린 김(Kathleen Kim) 조합이라니 아무래도 흔하지 않은 기회 같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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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1부는 비발디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라단조, RV.514’, 보테시니의 '그랑 듀오 콘체르탄테', 골리호브의 '마지막 라운드’ 순으로 펼쳐졌으며 2부에서는 오페라 <람메르무어 루치아> 중 '주위는 고요한 침묵속에 잠기고…불 같은 정열에 사로잡혀'와 '광란의 아리아' 두 곡이 진행되었다. 음악을 미리 들어보는 등의 예습은 하지 않았으며 모든 곡들을 당일 공연때 처음으로 마주하였다.

후기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필자는 평소 클래식에 문외한인지라 감상평이 그다지 심오하지 않다. 아는 게 많지 않기 때문에 공연을 듣는 동안 받았던 인상들 위주로 편안하게 풀어놓으려 한다. 우선 프랭크 황과 데이비드 챈의 바이올린 연주로 이루어진 비발디 곡은 심적으로 힘든 하루를 보낸 나를 위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알레그로 논 몰토, 아다지오, 알레그로 몰토로 이어지는 일련의 멜로디는 마냥 즐겁지도, 지나치게 슬프지도 않아서 좋았다. 우리는 어느 한 감정에 매몰될 때 정신적으로 버겁다 느끼는데, 이 음악은 나를 차분해지게끔 유도하는 듯 했다. 관조적인 자세로 내면의 소음을 잠시나마 꺼두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음으로 보테시니의 음악은 데이비드 챈의 바이올린 연주와 커트 무로키의 더블베이스 소리가 너무도 섬세하게 와 닿아서 신기했다. 물리적인 거리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음정이 곧장 내면에 침투되는 기분이었다. 이런게 라이브 공연의 묘미인걸까. 낯선 멜로디에 온마음 다해 귀기울이고 있는 스스로가 어색했지만, 이런 공연에 초대받을 수 있어 견딜 수 없이 감사했다. 그리고 문득 이 순간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골리호브의 마지막 라운드라는 곡은 전반적인 분위기가 야생미가 넘치면서도 응축된 에너지가 인상 깊었다. 한없이 격렬한 악기의 움직임이나 끝없는 들숨이 아니더라도 탱고에 내재된 열정이 충분히 표현되어 놀라웠다. 보통 잔잔하고 느린 템포의 음악만을 선호했지만 적어도 이 연주를 듣는 동안만큼은 내 취향이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모비도와 우르젠테의 정서가 전혀 거부감 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매일매일을 지금보다 더 힘차게 살아갈 활력을 전달받은 듯하여 기뻤다.

마지막으로 데이비드 챈이 편곡한 두 곡은 전적으로 캐슬린 김의 역량 덕분에 오롯이 스토리라인에 빠져들 수 있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17세기 말의 스코틀랜드 동부 연안. 람메르무어 가문의 영주 엔리코는 가문의 미래를 위한 결정을 앞에 두고 있다. 바로 자신의 여동생인 루치아를 명망 있는 가문의 영주 아르투로에게 시집보내는 것. 허나 자신의 가문과 대립관계에 있던 에드가르도를 사랑하고 있던 루치아는 이러한 정략결혼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상황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향하게 되고, 결국 남은 것은 오해와 배신뿐. 이 모든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던 루치아는 결국 미쳐버리고 혼인 상대였던 남편 아르투로를 살해하려 하는데… - 2021 힉엣눙크 리플렛 中

루치아의 염려를 담은 '주위는 고요한 침묵에 잠기고(Regnava nel Silenzio)'의 멜로디는 도니체티의 음악답게 상당히 아름다우며 심지어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세종솔로이스츠의 간주곡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오페라의 하이라이트인 3막 2장 부분으로 안내한다. ‘광란의 아리아’는 제목이 시사하듯 루치아 최후의 광기가 발현되는 노래이다. 음습하거나 악마적인 분위기는 아닐지라도 초고음역대의 음을 숨죽여 듣고 있으면 여주인공이 진정한 광기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사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나의 감상은 ‘소리가 정말 듣기 좋았다. 밀도 있게 행복했다.’ 뿐인데 구체적으로 리뷰를 작성해야 된다니. 근데 지금 시점에서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클래식에 대해 심층적인 지식은 없더라도, 공연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실은 그걸로 된 게 아닐까. 무대 위 연주자들이 왠지 상기된 표정이었는데 그 감정이 내게도 전이된 것일까. 감응하는 과정에서 내게 축적된 잔상이 부디 내 안에 오래 머무르며 금방 휘발되지 않기를.
 
사람들이 왜 이따금씩 오페라 공연을 찾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언젠가 망각될 게 아쉬울 정도의 추억을 만들어 준 공연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린다. 이날의 기억을 원동력으로 9월도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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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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