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만날 수 있는 잠적.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1.09.0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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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적 : 종적을 아주 숨김.


‘잠적’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단어였다. 그러나 최근 한 방송을 보면서 ‘잠적’이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잠적 – 김희애편’ 덕분이다. 9월 2일 목요일에 공개한 배우 김희애 편을 보고 한 눈에 반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화면에 가득 담긴 초록색의 풍경이었다. 초록색이 그토록 예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색인 줄은 몰랐다. 초록 초록한 모습 외에 시원하게 뻗은 길 위에 다니는 자동차 또는 한 인간의 모습도 무척 예뻤다. 전체적으로 영상미가 돋보였다.


내레이션은 귀를 쫑긋 세우게 했다. ‘잠적’은 예능보다는 다큐멘터리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이런 프로그램은 내레이션이 중요하다. 영상보다 더 돋보여서도 안 되고, 너무 묻혀서도 안 된다. 프로그램의 분위기나 감성과도 잘 맞아야한다.


이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은 따로 책으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길 정도로 하나의 ‘좋은 글’이었다. 부족하지 않은 내레이션이면서 너무 튀지도 않았다. 적절히 영상을 뒷받침해줬고, 프로그램만이 갖고 있는 감성, 분위기와 내레이션의 문체가 잘 어우러졌다.


BGM은 배우 김희애의 음악 플레이리스트였는데 뮤직비디오라고 해도 될 만큼 영상과 매우 잘 어울렸다. 음악들이 내 손을 잡고 ‘잠적’의 매력 속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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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틱 로드무비 ‘잠적’은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연예인이 아무도 없는 곳, 자신만을 위한 곳으로 잠적한 여정을 담았다. 불필요한 연락도 모두 차단하고 떠난 연예인은 3일 동안 잠적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자동차 한 대를 끌고 이 곳 저 곳을 누비면서 자신과의 추억을 만들고, 숙소에서 혼자만의 밤을 보낸다.


이 방송은 5월 27일에 공개했던 배우 김다미편이 첫 번째 시리즈였다고 한다. 그 때는 잠적의 장소가 거제도였다.


이번에는 제주도다. 제주도는 배우 김희애가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는 곳인데 그 곳을 잠적의 장소로 선택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잠적’은 혼자 여행을 의미한다. 또 여기서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녀는 자신이 오랫동안 거주한 지역을 골랐다.


그녀의 선택에 의아해 하고 있을 때,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그녀는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녀는 제주도에 오래 있었지만, 모르는 데가 너무 많다고 했다. 굉장히 넓고 모든 계절과 모든 도시가 다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렇게 그녀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에서 잠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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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제주도의 유명한 관광명소가 아닌 숨은 명소에 갔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았던 곳에서 진하게 남아있는 자연의 냄새와 풍경을 혼자서 즐겼다. 항상 매니저와 함께 하는 연예인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힘들다. 그녀 역시 늘 곁에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 밥을 먹고, 어딘가를 가는 것이 어색하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일을 했던 그녀는 못해 본 것이 많다. 그래서 혼자 여행하는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모든 게 처음인 그녀의 잠적 일상에는 처음이 주는 설렘이 가득했다.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잠적의 첫날밤을 보내는 순간까지 여전했다. 관찰자의 시점에서 보는 나도 설렘이 느껴졌다. 동시에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무엇보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처음인 그녀는 어색함을 쉬이 감추지 못한다. 어색함을 달래보려고 가본 적 있는 익숙한 어느 식당을 찾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혼자 밥 먹는 것이 어색하고, 혼자 맛있는 것을 먹는 게 미안한 그녀는 촬영감독에게 몇 번이고 같이 먹자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혼자 밥 먹는 것은 어떤 매력이 있는지 알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괜히 내가 흐뭇했다. 웃산 동굴에서 황홀한 풍경에 빠져있다가도 어색함에 촬영감독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카페에서도 여전히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에 어색해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에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에 더욱 재밌게 시청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숙소로 향하는 길에서 어색함에서 익숙함으로 바뀌는 순간을 잠깐 봤다. 숙소에서 요리를 할 때, 좋아하는 와인과 함께하는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여전히 어색함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다음날이면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진 그녀를 볼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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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녀가 잠적한 첫 날이 흘러갔다. 잠적 둘째 날 아침. 그녀에게 제일 익숙한 대본과 함께해서인지는 몰라도 내 예감대로 어느새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진 그녀를 볼 수 있었다.


한결 편안해진 그녀는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대본에 대한 생각과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날에는 어색함에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면 둘째 날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드는 생각이나 떠오르는 지난날을 자연스럽게 털어놓고 스스로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 보였다.


그녀는 점점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남은 기간 동안의 그녀의 잠적 일상은 9월 9일 목요일 10시 30분에 볼 수 있다는데, 매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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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보면서 대리만족도 되고, 두 번의 혼자 여행을 했던 그 때의 추억을 다시 꺼내볼 수 있었다.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지난날의 추억을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영상미와 내레이션, BGM 때문인 줄 알았는데 왜 서승한 PD가 힐링영상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혼자 여행한 추억이 아직 없는 사람들에게는 배우 김희애의 혼자만의 시간에 낯설어하면서도 설레는 모습, 조금씩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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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난 잠적이 참 좋다. 숨어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쉬고 내일을 채비하는 거니까.

 

- '잠적: 김희애 편'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는 타인과의 만남이 쉽지 않게 됐다. 사람들과 함께하던 시간은 혼자 있는 시간으로 바뀌게 됐다. 그 무료한 시간들을 달래기 위해 다양한 취미에 도전하기도 하고, 지인들 또는 가까운 사람들과 영상통화로 대화를 하고,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신다.


모두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른 방법을 제안해보고 싶다. 제주도처럼 근사한 곳은 아니라도, 배우 김희애처럼 자신의 거주지 근처에서 평소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걸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떨까? 아니면 혼자 드라이브 여행을 하는 건 어떨까?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건강하고 긍정적인 ‘잠적’을 해보자. 꽤 괜찮은 ‘나’라는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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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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