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박성빈] 간헐적 사랑

글 입력 2021.09.0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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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사귄 고사리는 내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사귀고 첫 데이트를 하기 전 날 그렇게 말하면서 찼다. 서로의 온도가 다르다는 말을 이었다. 그 말은 6일 사귄 이에게 좋아한다는 표현을 남용하는 내 마음이 잘 이해 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차이고 앓았다. 문제가 뭘까. 나는 뭐가 모자랄까. 좋아해서 좋아한다는 말을 잦게 하는 게 왜 문제란 거야. 그런 생각에 매몰되면서 나는 점점 구차해졌다. 전화를 해야 할까. 해서 뭐라고 하나. 마지막에 했던 문장을 좀 더 설명해 달라고 다짜고짜 전화 걸면 더 구차한 인간일까. 결국 하지 않았다. 진짜로 하면 인터넷 밈에 등장하는 구질구질한 전남친이랑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원래도 개 찌질한 찐따 박성빈은 연애감정이 개입되면 통제할 수 없는 찌질이가 돼 버린다.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회사 선배를 붙잡고도 물었다. 6일 사귀고 차였습니다. 제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선배는 어쩌라는 거냐는 눈동자로 응시하면서 내 기분에 맞춰줬다. 성빈님은 문제없어요... 근데 저 이 기사 마무리해야 하는데...

 

고사리를 사귀기 전에 20일 만났던 파랑은 나와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디서 언제 만날지 전날 까지 정하지 않아 전화를 걸었더니 안 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파랑은 해야할 일의 목록을 나열했다. 이걸 해야 하고, 저걸 해야 해서 못 만나겠다는 거였다. 진작 말해주던가.

 

이런 식이었다. 파랑은 만나기를 꺼려하는 것처럼 굴었다. 날짜를 미루거나 만나면 핸드폰을 붙들었다. 나는 구걸하는 기분이 들어 그만하자고 말했다. 사귀는 감각이 들지 않았다. 이건 연애하는 게 아니야.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어. 그만하자고 통보한 건 나지만 실상 이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서 귀찮은 기색을 드러낸 건 파랑이었다.

 

20일 사귀고 끝나고 6일 사귀고 차이고... 다음 연애는 반나절 아니냐? 성호르몬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분명 내게 문제가 있다고 주억거리면서 ‘왜’를 따져봐야겠다고 징징댔다. 성호르몬은 내게 금사빠 기질이 다분하다고 말했다. 호감표시를 드러낸 걸 진정한 사랑인 양 해석하면서 상대방에게 같은 끓는 점 이기를 강요한 거 아니에요?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성호르몬은 킬킬거렸다. X새끼. 지 일 아니라고 웃네. 성호르몬의 말이 맞는지 따져봤다. 딱히 내게 금사빠 기질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고사리와 파랑 사이의 구간은 1년이었다. 예쁜 사람이 말 걸어주면 설레고 망상을 펼치지만, 그 뿐이다. 그 사람과 무슨 관계가 돼야겠다는 의식이 들어도 이내 그건 그냥 내 상상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긴다.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행동을 실천할만큼 용기가 있지도 않다. 다만 상대가 나와 같은 끓는 점 이기를 바라지 않았냐는 말에는 주석을 달지 못했다. 그 말에 정곡이 찔렸다.

 

고사리와는 별 사이도 아니었다. 어쩌다 같은 시기에 대외활동을 한 이였다. 만나서 인사하고 말도 몇 차례 섞지 않았다. 나는 고사리가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외활동을 그만뒀기에 앞으로 볼 일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고사리는 내가 대외활동의 일환으로 쓴 글에 한 아름 피드백을 했다. 쓰기 힘든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자신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 있다는 식이었다. 나는 그 때부터 이미 고사리에게 반했다. 긴 답글 읽어줘서 고맙다는 답장으로 대화를 종료하고 싶지 않았다. 유장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유장한 관계를 이루고 싶었다. 나는 고사리에게 치근덕거렸다. 밥을 먹자고 영화를 보자고 했다. 치근덕거리고 싶다는 의도를 숨긴다고 숨겼지만 그런 감정은 어떻게든 새어나오기 마련이다. 고사리도 아마 알았을 거다. 나는 고사리가 치근덕거림을 치근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호감 표시라는 문장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치근덕거림은 당황스러움을 유발하는 찌질한 단어지만, 호감 표시는 정중하고 설레는 단어니까. 나는 고사리에게 치근덕거렸고 이제 고사리가 그 단어를 어떻게 풀이하냐에 따라 연인이 될지 말지 가름되는 셈이었다.

 

고사리는 호감표시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매일 안부를 주고받고 전화하는 사이가 됐다. 그러길 두 달이었다. 지지부진했다. 이 관계에 이름을 붙여야 했다. 그래서 용기를 냈는데 고사리는 그 용기가 좌초되지 않게 했다.

 

나는 설레발을 치고 다녔다. 편지를 쓰고 좋아한다는 표현을 종종 했다. 편지 내용은 가관이었다. 네가 피드백을 해줬을 때부터 반했다고. 무기력한 기분에 휩싸이는 순간이 많은데 네가 나타나 구원이자 위안이었다고... 그런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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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싫어서 비관적인 기분에 침몰되는 때였다. 회사에선 종일 눈치보고 치였다. 내가 유일하게 잘한다고 믿었던 일이 실은 잘하는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이 들었다. 별 것 아닌 재능에 도취해 있던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자문했다. 그 때 고사리가 나타나 눈이 돌아간 거였다. 나를 둘러싼 이들 중 괜찮다고 말하던 이는 고사리가 유일했으니까. 돌이켜보면 고사리를 좋아하는 마음엔 자기위안이 섞여 있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괜찮다. 내가 아직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가 있으니 괜찮다. 안도감과 자기위안이 뒤엉킨 감정을 사랑이라고 호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롯이 고사리를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연인이 구원이네 위안이네 거창한 문장을 남발한다면 무슨 기분일까. X됐다는 기분이 들까. 고사리는 당황스러웠을 거다. 이게 아닌데. 며칠됐다고 벌써부터 이 사달을 일으키는 걸까. 제정신인가. 내가 구원이라고? 네 엄마나 예수도 아닌데 뭘 구원한다는 거야.

 

내 문제였다. 고사리의 마음으로 이 관계를 복기해보니 그랬다. 한 발 앞서나가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만드는 내 감정이나 태도가 문제였다. 파랑에게도 비슷하게 굴었다. 그에게도 편지를 쓴 적 있었다. 내용도 비슷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자격을 따지는 나. 내가 이 사람과 어울리는 인간인가. 그런데 네가 웃으면 그런 생각이 사라지고 나는 너에게 반했어. 넌 내게 위안이야. 네 웃음에 반했어. 널 좋아해. 유치한 문장이 죽 대열을 이뤄 서 있었다. 연락이 좀 뜸하면 너랑 가장 친해지고 싶은 내 마음을 왜 이해하지 못하냐고 말했다. 그 때가 사귄지 일주일째였다. 관계를 물리고 싶어 하는 파랑의 태도가 그제서야 이해됐다.

 

내가 그들에게 위안이네 구원이네 지껄였던 건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면서 상대의 호의를 호감의 발로라고 착각했다. 이렇게 비겁한 나인데 이런 말을 해주다니. 이런 행동을 보여주다니.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못나지 않았던 건지도 몰라. 그런 마음이 고이고, 이를 상대방에게 투사했던 거였다. 나는 괜찮은 인간이라는 확신을 갖고 싶어 그들에게 매달린 건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기 전에, 나는 고사리와 파랑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고사리와 파랑에게서 이유를 찾았다. 그런 건 없었다. 나를 좋아하고 싶어서, 그리고 한시적인 정념이 발동해서였다. 임지은 작가는 ‘연중무휴의 사랑’에서 지금의 남자친구인 영훈과 사귄 일화를 썼다. 해가 넘기는 긴 연애를 이어간데 계기나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영훈은 그저 외모가 좀 자기취향인 남자였다. 어쩌다 보니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다였다. 그는 영훈을 잘 몰랐다. 영훈의 외모를 보고 한 순간 작동했던 정념이 사랑의 시작이었다. 임지은 작가에게 사랑은 충동으로 시작하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충동이 설명 가능한 사랑의 계기보다 훨씬 큰 계기로 작동하는 셈이었다. 작가의 일화처럼 어쩌면 모든 사랑이 순간 촉발하는 정념 때문이지 않을까. 물론 그것이 사랑의 시작일 수는 있어도 사랑을 유지하는 동인이 되진 않을 테다.

 

이 글을 성호르몬에게 보여줬다. 구원 어쩌고... 진짜 그랬어요? 소름 돋는 변태 같아요... 이러니 차이지... 나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성호르몬의 말이 맞다. 나는 소름 돋는 변태 새끼였다...

 

 


 

 

사랑은 위대해! 날 X되게 만들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나를 다시 웃게 해.

 

 

 

 

[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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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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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리스틱
    • 사랑할 때는 누구나 어느 정도 병신이 된다고 생각해요. 님의 그런 모습조차 함께 웃으며 지나보낼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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